1970년대부터 세계 자동차 업계를 분석해 온 자동차 산업 분석가 메리앤 켈러는 전기차 시장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메리앤 켈러는 'GM제국의 붕괴'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는 1989년 출간한 이 책에서 당시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던 GM의 몰락을 일찌감치 예측하고 그 원인을 짚었다. 그의 분석력은 월스트리스트에서 유명했다. 월스트리스트 최초의 '여성' 자동차 산업 분석가였던 그의 발언 한 마디에 자동차 회사 주가는 요동을 쳤다. 금융 전문잡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가 그를 최고의 자동차 산업 분석가로 선정할 정도였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건 자동차 컨설팅 그룹 메리앤 켈러 앤드 어소시에이츠에서 대표직을 맡고있다.

40년 동안 자동차 산업을 지켜봐 온 그는 전기차를 자동차 제조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했다. 그는 전기차가 아직도 정부의 보조 없이는 금방이라도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전기차 시장의 전망에 대한 그녀의 의견을 들어봤다.

"전기차 시대가 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부의 세제 혜택과 같은 소비자 우대 제도가 없다면 아직 전기차에 대한 수요는 그리 많지 않다. 노르웨이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최상의 우대 조건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일시적으로 혜택을 유예하자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한 적이 있다. 북미 시장에서 전기차는 위협으로 작용하기는커녕 기회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보조금 외에는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할 유인이 없다. 휘발유 가격이 떨어지고 내연기관 엔진의 연비가 향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전기차에 돈을 쓸 이유가 없다. 캘리포니아나 (캐나다) 퀘벡 같은 특정 주에서는 일정량의 전기차 판매를 강제하는 의무 판매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의무 판매제나 보조금이 없으면 전기차는 소비자에게 큰 매력이 없다."

"그렇다. 실제로 자동차 업계는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수요가 낮아지거나, 세제 혜택이 폐지되거나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세제 혜택이 있을 때도 전기차 제조 업체들의 수익성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었다. 테슬라를 포함한 모든 자동차 업체들이 세제 혜택을 감안해 전기차 판매 가격을 높게 매겼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자동차 업계의 움직임이 조심스러운 편이다. 볼보나 폴크스바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자동차 업체들이 실제 그들이 발표한 전기차 생산 계획보다 한발 늦게 행동하고 있다. 전기차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지만, 자동차 업체들은 우선 소비자 반응을 살펴본 후에 천천히 전기차 생산 체제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주행 거리, 비용, 충전 시간, 인프라 부족 등 제약이 아직 너무 많다. 특히 비용 문제가 크다. 전기차는 배터리 가격 때문에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비싸다. 내연기관과 배터리를 혼합한 하이브리드차조차 높은 가격 때문에 인기가 없는 편이다. 그나마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에서 전기차에 많은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정부의 세제 혜택이 없었다면 전기차 수요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테슬라도 예외는 아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전기차를 반기지 않는다. 배터리로 에너지를 얻는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감가상각 속도가 빠르다. 이로 인해 전기차의 생애 총소유비용은 휘발유차보다 여전히 높은 편이다."

"중국은 전기차 100%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기 오염 문제가 심각한 것이 그 이유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신기술인 전기차 개발에 집중해 시장을 선점하려는 야심이 있을 수도 있다. 현재 중국 자동차 제조 업체들은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중국이 전기차로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꾸려 한다면 배터리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전기차의 높은 초기 비용과 짧은 수명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유럽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전기차를 보급하고 지원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 경유차 비중은 많이 떨어지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디젤 스캔들' 영향이 크다. 파리나 런던 같은 주요 도시에서 디젤 미세먼지로 인한 매연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도 요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와는 다른 분위기이기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서 모든 생산라인을 전기차에 주력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다."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3'. 생산 차질로 공급이 지연되면서 소비자들의 주문 취소가 이어졌다.

"현재 전망으로 테슬라는 수익이 나지 않는 '실리콘밸리 스타'에 머물 것이다. 투자자들로부터 더 많은 자금을 조달받고 다른 자동차 업체들에 탄소배출권을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테슬라는 최근 전기차 트럭 '세미'를 공개했다. 트럭 생산을 위해 곧 자금 조달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기차 트럭 '세미'는 장거리 운전자들을 위한 수면 공간이 트럭 내부에 마련돼 있지 않아 전망이 밝지 않다. 테슬라는 과대평가됐다. 일론 머스크의 명성을 무기로 마케팅을 영리하게 펼쳐 부유층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었을 뿐 생산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10만 대 이하를 생산한 테슬라가 그렇게 낮은 생산성으로 내년에 50만 대를 생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터리 제조 업체 파나소닉과 문제가 있었고,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있는 상황에서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동차 제조 업체들은 배터리 생산을 아웃소싱할 것이다. 배터리 생산 기술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서 업체들은 하나의 배터리 제조사에만 묶여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테슬라가 파나소닉이 생산하는 셀을 배터리로 조립하고는 있지만, 직접 셀을 만들지는 않는 이유다. 배터리 기술이 진화하고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 현재 기술 경쟁력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당분간 업체들이 배터리를 자체 생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