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래’를 최근 20여년간 급성장한 ‘새우’가 집어삼키게 됐다.

시공능력평가 13위 호반건설이 3위 대우건설 매각 본입찰에 단독으로 뛰어들면서 사실상 대우건설의 새로운 주인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르면 다음 주 호반건설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 4월쯤 주식매매계약 체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호반건설은 19일 산업은행이 진행한 대우건설 매각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가했다. 애초 호반건설과 경쟁 관계였던 중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언홀딩스는 본입찰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인수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어찌됐든 대우건설이 새 주인을 맞을 가능성은 커졌다.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매물로 대우건설을 내놓은 이후 9년여만이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올해 초 열린 신년 전략회의에서 인수합병(M&A)를 통해 미래 비전을 찾겠다고 말했다.

호반건설은 애초 대우건설 예비입찰에서 인수액으로 1조4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의 기대 금액(2조원)을 크게 밑돌아 이번에도 호반건설이 진정성 없이 인수전에 발만 담그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이후 호반건설은 대우건설 지분 분할 매각 방안을 산업은행에 제안하며 대우건설 인수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호반건설은 대우건설 인수가로 약 1조6200억원가량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이 사모펀드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대우건설 지분 50.75% 모두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중 40%만 우선 사들이고 나머지는 3년 후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경영에 손을 떼며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산은도 호반건설의 제안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산은은 대우건설의 매각 최저가를 1조5600억원으로 잡았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호반건설이 대우건설을 품는다면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수준급의 경쟁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로 우뚝 서게 된다. 호반건설은 그동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를 사들여 시행·시공을 겸하며 공동주택을 공급해왔는데,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토목·건축·플랜트 등의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명실상부한 대형 종합 건설사로 거듭나게 되는 셈이다.

특히 대우건설이 수십년간 축적해온 해외 플랜트 사업 노하우와 영업망을 고스란히 품을 수 있다는 점은 호반건설 사업 다각화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시공능력평가액도 훌쩍 늘어난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8조3012억원, 호반건설은 2조4521억원의 시공능력평가액을 기록했는데, 두 회사를 합치면 11조원 정도로 현대건설(13조7106억원)을 위협할 정도가 된다.

대우건설과 호반건설의 경우 국내에서 모두 주택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두 건설사 사업은 별도로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호반건설은 ‘베르디움’이라는 자체 주택 브랜드를 갖고 있고, 대우건설도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와 고급 아파트 브랜드인 ‘푸르지오써밋’을 갖고 있다. 업계는 베르디움은 지방이나 임대주택 사업에, 푸르지오는 수도권 사업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이원화에 나설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해외사업의 경우 호반건설이 가진 기술·계약·관리 노하우가 전혀 없기 때문에 대우건설 위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대우건설의 경험에 해외 사업을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부 관리직을 제외하면 대우건설의 독자적인 경영을 최대한 보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