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66)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둘러싸고 금융 당국과 하나금융 간에 치열한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하나금융은 법적 하자가 없다는 점을 들어 김 회장의 연임 시도를 강행하고 있고, 금융 당국은 김 회장의 연임에 계속 제동을 거는 분위기이다.

하나금융은 16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열어 김 회장과 최범수 전 한국크레딧뷰로(KCB) 대표, 김한조 전 외환은행장 등 최종 후보 3명을 선정했다. 금융 당국이 하나금융의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 1호' 기업 특혜 대출 의혹 등에 대한 검사를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12일 회장 선출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하나금융은 예정대로 회장 선출 절차를 진행한 것이다. 정부에서 '면허'를 받아 영업하는 금융회사가 당국의 직접적인 요구를 거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청와대가 '민간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무리한 관치(官治)를 시도했다가 체면만 구겼다는 평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김 회장의 3연임에 제동을 걸기 위해 칼을 뽑았다가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한 채 칼만 부러진 셈"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 회장 선출 절차 강행… 체면 구긴 금융 당국

하나금융 회장은 총자산 363조원(2017년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규모 금융지주회사의 수장(首長)으로 KEB하나은행 등 계열사 직원만 2만명이 넘는다. 2005년 12월 지주 출범 이후 김승유 초대 회장이 3연임을 했고, 김정태 회장이 뒤를 이어 2012년 3월 연임에 성공해 재직 중이다.

금융 당국은 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비판적인 입장을 잇따라 밝혀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작년 11월 말 "금융사 최고 경영자가 경쟁자를 없애고 연임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책무 유기"라고 말을 꺼냈다. 보름 뒤엔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지주 회장 후보군 구성에 경영진이 과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거들었다. 회장 연임 절차를 코앞에 두고 있는 하나금융을 지목한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금융 당국 내부에선 "김정태 회장이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사외이사로 앉히고, 주요 계열사 CEO에 약체인 인물을 내세우면서 본인 연임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있다. 욕심이 과한 거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또 금융지주 회장들이 지주 전체의 인사와 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제왕적 경영을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런 지배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 게 사실이다.

당국과 하나금융의 갈등은 15일 정면 충돌로 번졌다. 최 금융위원장은 "'금융은 특별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고 어떤 경우도 간섭받아서는 안 된다'는 식의 잘못된 우월 의식에 젖은 금융인은 빨리 생각을 고치라"고 했다. 하나금융 김 회장을 정조준한 발언이었다. 금감원은 이날 하나금융에 회장 선출 일정 연기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하나금융은 이날 일정에 따라 후보자 면접을 진행했다.

당국의 분위기는 이날 오후 청와대가 "민간 금융사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히면서 확 달라졌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하나금융이 진행한 회장 선출 절차를 멈출 수단이 당국에는 없다"며 한 발 뺐다. 16일 오전 최 금감원장은 임원회의에서 "당국이 하나금융 인선에 개입하는 게 없다"고 역시 뒤로 물러섰다. "현재 진행 중인 검사가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는 주문도 했다. 자신감을 얻은 하나금융은 이날 저녁 차기 회장 후보 3명을 발표했다.

◇김정태 회장, 3연임 확정적이지만…

16일 김 회장을 포함한 차기 회장 후보가 발표되자 금융권 안팎에선 "김 회장이 3연임을 위한 고비를 거의 넘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나금융에 정부 지분이 없고, 김 회장에게 법률적 문제가 없어 당국이 더 이상 견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22일 열리는 회추위에서 김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에 '미운털'이 박히면 언젠가 화(禍)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금감원에서 진행하는 검사에서 김 회장에게 문제 될 만한 사안이 적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국정 농단 사태 장본인 최순실의 자금 유출을 도운 하나은행 이모 본부장을 특혜 승진시켰다는 의혹을 받은 만큼 '적폐'로 재거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정권이 바뀐 뒤 '문재인 대통령과 경남고 동기'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문도 돌았다.

당국에 밉보인 민간 금융사 CEO가 밀려난 사례는 과거 수차례 있었다. 지난 2010년 3월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4연임에 성공했다가 그해 10월 금감원으로부터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한 중징계 방침을 통보받자 회장 자리를 떠났다. 지난 2009년 KB금융 회장에 내정된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금감원이 차량 운행 일지까지 뒤지는 강도 높은 검사를 하자 결국 사퇴했다. 강 행장은 사퇴 이후에도 해외 투자 실패를 이유로 중징계 결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