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효성(004800), 태광(023160)그룹 등 재계 순위 50위권 이내의 기업들이 잇따라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재계에 '김상조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작년 6월 14일 취임하고 나서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쓰겠다. 연말까지가 데드라인이다"라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최근 지배구조를 개편한 롯데, 효성, 태광그룹은 공교롭게도 총수 일가가 재판을 받거나 검찰 수사를 받는 곳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들 기업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주요 그룹 중에서 현대차(005380)는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작년 10월 서울 잠실 시그니엘서울에서 열린 롯데지주 출범식에서 롯데지주 사기를 흔들고 있다.

◆ 총수 영향력 줄이고 지배구조 단순화하는 기업들

태광그룹은 지난달 26일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하는 계열사 7개를 1개로 줄이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았다. 한국도서보급이 티시스에서 인적분할하는 투자사업 부문과 쇼핑엔티를 올해 4월 1일 흡수합병하는 것이다. 합병이 완료되면 이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하는 회사는 한국도서보급, 티시스, 동림건설 등 7개에서 한국도서보급 1개로 줄어든다. 전체 계열사도 26개에서 22개가 된다.

태광은 그동안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합병이 완료되면 계열사를 둘러싼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14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작년 4월 징역 3년 6개월에 벌금 6억원을 받은 바 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지난달 22일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지 약 10일 뒤인 이달 2일 롯데지주가 6개 비상장 계열사의 투자사업부문을 합병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안을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롯데지주가 작년 10월 출범하는 과정에서 신규 순환출자(A →B→C→A 식의 연결 고리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와 상호출자(상대 회사의 주식을 서로 보유하는 것)가 발생했는데, 합병이 완료되면 이 구조가 해소된다.

롯데는 앞으로도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신동빈 회장은 2015년 8월 "순환출자를 완전 해소하고, 복잡한 구조를 정리해 투명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석래 명예회장, 조현준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는 효성은 20년 만에 지배구조 체제를 바꿔 지주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효성은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효성 안에 있는 사업부가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첨단소재㈜, 효성화학㈜등 4개 사업회사로 나뉘는 것이다. 효성은 사업부가 법인으로 분할되면 독립 경영 체제가 구축돼 기업 가치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14년 1월 2일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 현대차, 순환출자 해소·경영권 승계 숙제

재계 순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감감무소식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현대차 지배구조에 대해 언급하며 압박했다. 재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공정위가 정한 데드라인(작년 말)에 맞춰 순환출자 해소 방안을 내놓을 것이란 전망이 있었으나,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끊어내면서 승계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할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 관계자는 "현재까지 현대차그룹에서 순환출자 해소 방법과 관련해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현대차 내부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012330)→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현대모비스가 대주주다.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16.8%)을 매수해야 하는데, 4조5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승계 비용이 걸림돌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현대차 지주사 전환 가능성' 보고서를 내고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3개 회사가 각각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한 후 3개 지주사를 합병하는 방식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계열사를 쪼개고, 붙이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의 중론이다. 계열사별로 특별결의 주총을 열어야 하고 이 같은 방식이 주주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지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현대차 지분 8.12%, 현대모비스 9.84%, 현대글로비스 10.04%, 기아차 지분 6.96% 등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작년에 삼성물산(028260)합병으로 홍역을 치른 국민연금이 이런 방식의 지배구조 개선에 찬성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 지분 5.2%와 현대모비스 지분 6.96%를 보유하고 있으며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차 지분을 각각 2.3%, 1.7% 보유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권을 승계받으면서, 주주가치도 높아져 주총을 통과할 수 있는 고차원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며 "또 지주사 설립시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현대차그룹 내 현대캐피탈 등 금융 계열사 지분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도 문제"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현재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