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이폰의 성능을 몰래 떨어뜨린 것으로 드러난 미국 애플이 소비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아이폰 배터리 교체 비용을 50달러 깎아주겠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28일(이하 현지 시각)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구형 배터리가 탑재된 아이폰의 성능 처리 방법과 이를 전달한 방식에 대한 고객들의 의견을 들었다"면서 "여러분 가운데 일부가 애플에 실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과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플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집단소송이 전 세계 곳곳에서 제기되는 등 소비자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던 애플이 고객을 기만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사과하면서도 '오해'라는 애플

애플은 2014년 출시한 아이폰6와 2015년 출시한 아이폰6S에서 갑자기 꺼지는 현상이 잇따라 나타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실시했다. 이후 소비자 사이에서는 "아이폰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애플이 신제품 판매를 위해 구형 아이폰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리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애플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난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파크의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필 실러 애플 수석부사장이 신제품 아이폰X(텐)과 아이폰8 시리즈를 이전 제품과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일 미국의 한 네티즌이 자신의 아이폰 성능 시험을 통해 애플이 일부러 구형 아이폰 성능을 떨어뜨렸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 네티즌은 2년간 사용한 아이폰6S의 구동 속도를 전문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측정한 뒤 배터리만 새것으로 교체해 다시 측정했다. 성능 평가 점수는 2512점과 4456점으로 현격한 차이가 났다. 이어 18일 IT(정보기술) 전문 사이트인 '긱벤치'도 비슷한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자 애플은 지난 20일 공식 성명을 내고 "구형 아이폰이 갑자기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 소비 전력량을 낮추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실시했다"고 인정했다. 아이폰에 탑재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500회 이상 충전하면 성능이 80% 이하로 떨어지는데, 이런 경우 갑자기 꺼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예방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아이폰의 중앙처리장치 작동 속도를 떨어뜨려 배터리가 천천히 소모되도록 하는 식이다.

이런 애플의 태도에 대해 소비자들이 분노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성능 저하보다 은폐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애플은 28일 다시 성명서를 내고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애플은 이번에도 "이 문제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다"면서 소비자들을 위한 조치였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천문학적 금전 손실 불가피… 브랜드 이미지도 타격

애플은 배터리 교체 비용 등 엄청난 금전적 손실과 충성 고객의 이탈에 직면하게 됐다. 애플은 사과와 함께 소비자들에 대한 보상으로 내년 1월부터 1년간 보증 기간이 끝난 아이폰의 배터리 교체 비용을 79달러에서 29달러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대상은 아이폰6 이후 출시된 제품 중 배터리 교체가 필요한 모든 스마트폰이다. 애플이 연간 2억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4억7000만대가 배터리 교체 대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까지 손실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애플 주가도 26일 하루 동안에만 2.5% 떨어지며 시가총액이 25조원 가까이 날아갔다. 소셜미디어 텀블러 공동 창업자인 마르코 아멘트는 이날 트위터에 "이번 사건의 여파는 수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집단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7일 캘리포니아 법원에 9999억달러(약 1068조원)의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9건의 소송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집단소송 참여자 모집에는 이틀 만에 6만 명이 넘는 국내 아이폰 이용자가 참여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이 불거지자 곧바로 사과하고 제품을 회수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했지만 애플은 비밀주의를 고수하다가 더 큰 타격을 받았다"면서 "금전적인 손실보다도 브랜드 가치가 손상된 것을 더 뼈아프게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