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사는 회사원 김선오(32)씨는 지난달 백화점에서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로봇 알투디투(R2D2) 캐릭터를 형상화한 로봇 청소기를 구매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청소를 해야 하는데, 원룸에 혼자 살다 보니 청소를 미루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김씨는 "알아서 청소를 해주는 데다 영화 속 알투디투와 같은 작동음을 내는 것이 재밌어서 샀다"고 했다. 그는 지난가을에는 옷에 밴 냄새를 빼주고 구김을 펴주는 가전용품 '스타일러'도 장만했다. 매일 정장과 셔츠를 입어야 하는데, 수시로 옷을 빨고 다리기 불편해서다. 유통업계에서는 김씨 같은 소비자를 '일렉트로테인먼트(가전제품과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 고객'이라고 부르고 있다.
◇생활 가전 고객 4명 중 1명은 '2030 남성'
20~30대 남성이 생활 가전제품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오디오·카메라·노트북 같은 전자제품 시장에서 남성 구매 비중은 원래 높은 편이었지만, 생활 가전 시장에서 20~30대 남성층의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1인 가구가 늘고 기혼 가정의 경우도 남성들의 가사 참여가 점차 늘고 있다. '엄마와 아내의 몫'으로 여겼던 가사를 젊은 남성이 직접 챙기게 되면서 가전제품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이 가전제품 매출을 성별·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2015년 20~30대 남성의 매출 비중은 전체의 11%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엔 17%, 올해는 25%로 급증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가전 매출에서 남녀 비율은 40:60이었지만, 20~30대 층만 놓고 보면 69:31로 오히려 남성이 많다"고 했다.
온라인 유통업체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SK플래닛 11번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20~30대의 '스마트 가전' 매출 남녀비는 60:40이었지만, 올해는 74:26으로 남성 비중이 높아졌다.
젊은 남성층이 선호하는 제품은 '편하고 재밌는' 가전이다. 로봇 청소기, 식기세척기, 스팀 다리미, 스타일러 등 사람이 손을 최소한 덜 쓰게 해주는 제품들이다. 로봇 청소기의 경우 흡입력만 우수한 제품보단 스마트폰으로 청소를 마친 구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이 더 잘 팔린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알아서 집안일을 해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원격 조종이 가능한 사물인터넷(IoT) 가전제품을 특히 선호한다"며 "내년 중 '스마트 가전'을 한곳에 모아 판매하는 'IoT 전문관'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가전제품 옆에서 맥주·캠핑용품 팔며 남심 잡기 나선 유통업계
쇼핑에 소극적이던 젊은 남성층이 생활 가전을 사기 위해 백화점·마트 등을 찾자 유통업체들도 남심(男心) 잡기에 나서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 2015년 가전제품 전문 편집숍 일렉트로마트를 열었다. 기존 가전 매장처럼 각종 전자제품을 판매하면서도 3D프린터나 드론 같은 젊은 남성층이 선호하는 제품을 현장에서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전자제품 매대 옆에는 수입맥주·와인 매장과 캠핑용품 매장에 스크린야구장까지 갖췄다. 이마트 관계자는 "이마트에서 20~30대 남성의 매출 비중은 9%에 불과하지만, 일렉트로마트에선 20%에 이른다"며 "스마트폰과 연동해 전화·문자 기능은 물론 운동 보조 기능을 갖춘 '웨어러블 스마트워치'나 맥주 전용 냉장고의 경우 고객 대부분이 20~30대 남성"이라고 했다. 홈쇼핑 업계도 생활 가전 등을 앞세워 젊은 남성층 공략에 나서고 있다. CJ오쇼핑은 지난 5월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 가게'를 표방하는 온라인 쇼핑몰 '펀샵(FUNSHOP)'의 지분 70%를 인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