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기금을 활용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한다. 정부는 내년 600조원 규모의 연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와 경영권 감시를 말한다.
정부는 내년에는 국민연금, 내후년에는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에 도입해 중장기적으로 모든 연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시행하게 할 계획이다. 재계는 정부의 연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정부의 경영 개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 연기금 적극적 의결권 행사
정부는 27일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 중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내후년까지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등 주요 연기금에도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할 계획이다.
스튜어드십코드의 '스튜어드(Steward)'는 집사 또는 여객기 남성 승무원이라는 뜻으로 기관투자자들에게 큰 저택에서 주인 대신 집안일을 맡아보는 집사와 같은 역할을 기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관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의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정부는 스튜어드십코드 활성화를 위해 연기금을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년 국내 증시의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에 도입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내외에서 운용하는 자금이 600조원을 넘고 지분 5% 이상을 보유해 경영 참여를 할 수 있는 국내 상장사만 270여 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이른바 '착한 투자'에 대대적으로 돌입하면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연기금을 활용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다.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준수한 기관투자가에게 투자 기업의 감사인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도 주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기업을 감사할 회계법인을 직접 고를 수 있게 된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 약 270 업체에 국민연금이 감사인 신청권을 행사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또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주주활동도 지원하기로 했다. 자본시장법상 5% 이상 보유 주주는 지분이 변동하면 5영업일 이내 보고해야 한다. 또 10% 이상 주주는 6개월 안에 발생한 매매차익은 반환해야 한다.
다만 '단순투자' 목적이면 약식 보고를 하고 단기차익 반환의무도 면제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주주제안 등을 하려면 보유목적이 '경영참여'로 변경돼 이런 특례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공적 연기금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적극적 주주활동을 하더라도 '경영참여'로 보지 않기로 했다.
◆ 재계 "정부로부터 독립성, 운용 전문성 필요"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세계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기금(GPIF)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초기에 채택해 다른 기관투자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 활성화를 견인했다. 일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214개의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코드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기관투자자의 활발한 주주활동에 대응해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늘리고 배당 등 주주환원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유입이 확대되는 등 스튜어드십코드가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연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되거나 운용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스튜어드십코드의 성공적인 정착이 어려울거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절대적 영향권에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정부에 의한 경영 간섭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도입은 내년 하반기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달 초 제7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공식 발표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도입 시기는 빨라야 내년 하반기"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