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 라이프, 1인코노미, 가성비 열풍, 불신이 만든 ‘체크슈머’….’ 1인가구 증가 등 인구통계학적 특성과 내수 침체, 중국의 사드(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등 경제 환경, 살충제 달걀과 생리대 유해성 논란 등 사회 환경이 맞물리면서 2017년 소비시장에서 나타난 다양한 트렌드다. 2017년 10대 유통업계 트렌드 및 뉴스를 정리해 봤다.

① 지금 이순간 '욜로(YOLO)라이프'

2017년 대한민국은 ‘한 번 사는 인생, 즐기고 도전하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라이프에 흠뻑 빠졌다. 여행업계에는 나 홀로 편히 여행을 즐기는 ‘혼행족’에 이어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떠나는 ‘즉행족’이 부상했다. 이들을 겨냥한 항공, 숙박 타임커머스 시장도 급성장했다. 또 셋 집이라도 폼나게 꾸미려는 욕구에 홈퍼니싱(인테리어 소품으로 집안을 꾸미는 것) 바람이 불면서 가구와 홈 인테리어 분야의 매출이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생활전문관 전경

식품업계에는 밥값은 줄여도 디저트는 호화롭게 즐기려는 ‘디저트족’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신제품이 쏟아졌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는 ‘혼디족(혼자 디저트 먹는 사람)’을 위해 1인용 디저트 케이크 10종과 떠먹는 케이크 등을 내놨다. 아워홈은 프리미엄 디저트 브랜드 ‘디저트 살롱’을 선보였다. 편의점에서 고급 수제 맥주를 즐기는 ‘편맥족(편의점 맥주족)’도 늘었다. CU는 업계 최초로 호주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의 수제 맥주 3종을 출시했고, 세븐일레븐은 수제 맥주 매출 1위 브랜드 플래티넘의 에일 맥주 2종을 내놨다.

'1코노미'족 확산…1인용 가정간편식과 극소포장 상품 인기

혼자만의 소비를 즐기는 ‘1코노미(1conomy)’가 확산하면서 편의점 음식의 대표 주자였던 1~2인용 가정간편식(HMR)이 급성장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간한 ‘2017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간편식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조3000억원으로 전년대비 34.8% 증가했다. 올해는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CJ제일제당의 ‘고메 상온 간편식’.

유통업계는 가정간편식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CJ제일제당은 햇반, 비비고, 고메 등을 중심으로 HMR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냉동·냉장 위주의 간편식을 선보이던 이마트의 피코크는 곤드레 된장 국밥, 고사리 육개장 국밥 등 상온 간편식으로 상품을 확대했다. 한국야쿠르트는 강점인 야쿠르트 아줌마의 배송 시스템을 기반으로 가정간편식 ‘잇츠온’을 내놨다.

‘극소포장’이란 개념도 등장했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은 기존의 소포장 상품보다 더 적은 양인 딱 한 끼 분량의 상품을 판매하는 ‘한끼밥상’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한끼밥상은 시범운영 기간 하루 평균 160여명이 이용했고, 한 달 뒤 이용객이 240여명으로 약 50% 늘었다.

③ ‘평창 롱패딩’부터 PB 경쟁까지…가성비 열풍

장기 불황의 여파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 11월 전국을 강타한 ‘평창 롱패딩’ 열풍도 가성비 갑(甲) 제품으로 입소문이 난 것이 주효했다. 롯데백화점이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기념품으로 선보인 평창 롱패딩은 거위 털 점퍼를 14만원대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팔아 호응을 얻었다. 롱패딩은 이전에도 있었던 상품이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에 3만 장 한정판이라 이점이 더해지면서 그 가치가 높아졌다.

평창 롱패딩

가성비를 앞세운 유통업체의 PB(Private Brand·자체브랜드) 상품의 개발 및 판매도 급증했다. 이마트의 노브랜드는 식품과 생활 소품에 주력하던 것에서 대형 가전으로 영역을 넓혔다. 노브랜드는 지난 9월 32인치 TV와 에어프라이어 등을 출시했다. 롯데마트는 자체 브랜드 온리프라이스를 론칭했다. 1000원 물티슈, 3000원 1등급 우유 등 균일가 상품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이커머스와 홈쇼핑, 백화점 등도 PB 개발에 한창이다. 티몬은 지난 3월 생활용품 PB 236:)을 론칭했다. 온라인 최저가보다 최대 10% 저렴하게 판매해 상품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쿠팡도 7월 생활용품 PB 탐사를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은 캐시미어 브랜드 델라라나, 웨딩 주얼리 브랜드 아디르, 란제리 브랜드 언컷 등 프리미엄 PB를 선보여 차별화를 시도했다.

④ 살충제 달걀, 생리대 파동…불신이 만든 ‘체크슈머’

올해 살충제 달걀과 생리대 유해성 논란 등 먹거리와 생필품 관련 사건 사고가 불거지면서 푸드포비아(음식 공포증)와 케미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가 확산됐다. 식약처 시험 결과마저 믿을 수 없다며 제품의 성분과 원재료를 꼼꼼히 확인하는 '체크슈머(Check+Consumer)’도 등장했다.

이들은 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제품의 성분과 위험도를 점검한다. 관련 앱은 화장품 성분 분석 앱 ‘화해’, 식품의 원재료와 성분, 첨가물 등을 검색할 수 있는 ‘엄선’, 기저귀, 물티슈, 세대 등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는 ‘케미’ 등이 대표적이다.

유통업계는 체크슈머를 사로잡기 위해 제품의 유해성 등급과 국가 인증마크 등 상세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식자재와 식료품을 판매하는 모바일 프리미엄 마트 마켓컬리는 상품 상세페이지 내 ‘컬리’s 체크포인트’를 통해 상품의 원산지, 성분, 인증 여부, 생산, 유통과정 등 주요 정보를 제공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이버거래소의 쇼핑몰 eaT마트는 친환경 농산물과 지역특산물에 유기농, 저탄소 인증 등 국가 인증 마크를 표기한다. 또 홈페이지 한쪽에 친환경 인증조회, 농산물 이력추적, 쇠고기 이력추적 등의 서비스를 연동해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⑤ 체류형 몰·그로서란트 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 혁신

온라인 시장의 성장에 맞서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고객들이 매장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체험 콘텐츠로 생존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신세계가 개장한 스타필드 고양은 체류형 쇼핑몰을 표방했다. 스포츠몬스터, 아쿠아필드 등 대규모의 체험형 콘텐츠와 하우디, 라이프컨테이너 등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콘텐츠를 강화해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강화했다. 스타필드 코엑스몰은 지난 5월 초대형 도서관을 조성해 주목받았다. 코엑스몰 측은 별마당도서관을 도입한 후 6개월간 코엑스몰의 방문객이 1000만명을 넘어섰고, 코엑스몰 기둥 영상 광고도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스타필드 코엑스몰에 조성된 별마당도서관이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으면서 코엑스몰 상권 전체가 활기를 띠고 있다.

마트업계는 식재료를 사서 즉석에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그로서란트(grocerant·식료품을 뜻하는 그로서리와 레스토랑의 합성어)를 도입했다. 롯데마트 서초점은 그로서란트를 도입한 지 한 달 만에 25만 여명의 고객을 불러모았다. 이마트도 스타필드 하남과 고양에 그로서란트 ‘PK마트’를 선보여 집객 효과를 누렸다.

⑥ 알바 없는 매장, ‘무인(無人) 시대’ 개막

내년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맞물려 오프라인 매장의 무인화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지난 5월 국내 최초의 무인편의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를 연 데 이어, 편의점 CU도 상품 스캔과 결제를 지원하는 모바일 결제 앱 CU바이셀프(Buy-Self)를 개발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24는 전국 4개 매장을 사람 없는 무인점포로 운영 중이다.

패스트푸드와 주유소에도 기계를 통해 주문하는 방식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은 매장에 키오스크를 설치해 터치스크린으로 메뉴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주문은 기계가, 제작은 바리스타가 해주는 커피숍도 등장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위치한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올해 국내 유통가에 무인화 바람이 불면서 세븐일레븐은 지난 5월 업계 최초로 무인편의점을 선보였다.

유통업계에서 무인화가 빠르게 진행된 데는 인건비 등 비용 절감, 즉각적인 만족, 대인관계의 피로감 등이 배경이 됐다. 특히 사람과의 접촉을 대신하는 언택트(Untact·비대면) 기술이 부상하면서 유통업계의 무인화 바람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고용 축소와 직원 해고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⑦ 춘추전국시대 맞은 온라인 쇼핑 시장, ‘유통 공룡’ 네이버 합류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 및 모바일 쇼핑 거래액은 2014년 45조3025억원에서 2015년 53조8883억원(전년대비 증가율 19%), 2016년 64조9134억원(20.5%)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8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쇼핑 시장은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과 포털 등이 합류하면서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특히 포털의 커머스 사업 확장은 온라인 유통 업계의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데다 간편결제 서비스까지 탑재하고 있어 새로운 ‘유통공룡’으로 거론된다.

네이버는 지난 5월 자사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스토어팜’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비즈니스 상품 계정인 ‘플러스 친구’를 활용한 쇼핑 플랫폼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쇼핑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온라인 쇼핑몰 일부는 도태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를 제외한 11번가, 쿠팡, 위메프, 티몬 등 대부분 온라인 쇼핑 업체가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온라인 쇼핑 업계 전체의 연간 적자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⑧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유통업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유통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로봇 등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쇼핑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면서 쇼핑 편의성이 증대되고 있다.

롯데는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언제 어디서나 같은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옴니채널'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는 앞으로 5년 안에 유통을 포함한 모든 그룹사에 AI 기반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IBM AI 왓슨을 활용한 챗봇(Chat Bot) ‘로사’도 이달 21일 공개했다. 최근엔 롯데닷컴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음성으로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다고 밝혔다.

엘롯데 앱은 인공지능 챗봇 '로사'를 통해 고객들의 스마트한 쇼핑을 지원한다

신세계백화점은 모바일 앱에 AI 고객 분석 시스템 'S마인드'를 탑재했다. 롱패딩을 구매한 고객에게는 아웃도어 기획전을, 이불을 구매한 고객에게는 생활 소품 정보를 제공하는 식으로 개인화된 맞춤형 쇼핑 정보를 제공한다.

상품 안내와 통역 서비스 등을 지원하는 로봇도 등장했다. 롯데백화점은 ‘엘봇’을, 현대백화점 ‘쇼핑봇’을, 이마트 '나오’와 ‘페퍼’를 각각 선보였다.

⑨ 중국 사드 보복 장기화…탈(脫)중국 가속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현지에 진출한 유통업체들이 막대한 피해를 봤다. 특히 롯데는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보복을 당했다. 중국 정부는 소방법 위반을 이유로 중국 내 롯데마트 87곳의 영업을 중단시켰다. 결국 롯데마트는 중국 내 112개 매장 전체를 매각에 착수했다. 신세계그룹도 중국 내 이마트 매장을 철수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여행을 금지하면서 유커에 의존했던 면세점과 화장품 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아모레퍼시픽의 올해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각각 6.1%, 30.2%를 감소했다.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도 각각 8.0%, 30.4% 떨어졌다.

유통업계는 ‘탈중국’에 가속도를 붙였다. 롯데면세점은 태국 방콕,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베트남 다낭 등에 매장을 열었다. 중국 철수를 추진 중인 롯데마트도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점포 수를 2020년까지 현재의 3배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마트도 몽골에 신규 점포를 내는 등 신규 시장 개척에 힘쓰고 있다.

⑩ 프랜차이즈 갑질 논란

프랜차이즈 업계는 갑질 논란과 오너 성추행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는 한해를 보냈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그룹은 유령회사를 만들어 치즈 통행세를 챙겼다. 또 이에 반발해 가맹계약을 해지한 점포 근처에 직영점을 차리는 보복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호식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은 본사 여직원을 강제로 호텔에 끌고 가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최근에는 바르다김선생, 가마로강정 등이 무리하게 물품 구매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공분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