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암호화폐)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시가총액 1위 코인인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올해 들어 코인들의 가격이 급등락을 나타내면서 가상화폐는 전 세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각국 정부와 금융당국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 시장 규제 문제까지 골머리를 앓는 모습이다.

가상화폐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시각도 엇갈린다. 저명한 월가 경제학자들도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는 가상화폐의 급등세에 대해 ‘거품’이며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가상화폐의 지속적인 상승을 예측하면서 실제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상품거래소인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이달부터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시작했다. 이는 가상화폐가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 아직 가상화폐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강하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공개(ICO), 가상화폐 선물 거래,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 등을 금지하기로 했고, 투자금액 상한제와 투자 자격제 등의 규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안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이런 상황에 대해 안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들의 투기적 행태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하면서도 “암호화폐 투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무조건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안 연구원은 지난 7일 발표한 ‘CME와 CBOE의 비트코인 선물 상장’ 리포트를 통해 비트코인을 화폐가 아닌 ‘디지털 금’, 즉 상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트코인을 자산배분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장기 적립식 투자를 할 것을 제안했다.

카이스트(KAIST) 공학도 출신의 안 연구원은 프로그래밍에도 관심이 많아 블록체인 기술을 직접 다룬 경험이 있다. 그는 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 10월 ‘제 4차 산업혁명시대, 비트코인에 투자하라’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본사에서 안혁 연구원을 만나 가상화폐 시장의 현황에 대한 생각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리포트에서 ‘가상화폐’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암호화폐’로 썼다.

“흔히 암호화폐를 ‘가상화폐’라고 많이 부르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국제적으로도 크립토머니, 또는 크립토커런시라고 부르지 않나.

암호를 뜻하는 ‘크립토그래프(cryptograph)’와 통화를 의미하는 ‘커런시(currency)’를 합쳐 ‘크립토커런시(cryptocurrency)’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상화폐가 아닌 암호화폐로 부르는 것이 맞다.

사실 가상화폐라는 단어 자체가 별로 좋지 않는 어감을 준다. ‘게임머니’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이 용어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리포트에서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 즉 상품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제한되어 있어 금과 같은 희소성을 갖는다. 즉,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 헤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송금 수수료가 낮아 개인간의 해외 송금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기반한 비트코인은 잘못된 거래를 되돌릴 수 있는 중앙관리자가 없기 때문에 정부와 회사 같은 기관의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송금을 잘못했다고 치자. 은행에서는 이를 다시 찾을 수 있지만, 비트코인은 한번 잘못 송금하면 기술적으로 찾을 길이 없다. 이러한 결제 위험 때문에 정부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발행량이 제한되어 있고 법정화폐가 될 수 없다는 특성 때문에 비트코인은 금본위제 폐지 이후 ‘상품’으로서 금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단,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트코인=디지털 금’으로 정의하고 비트코인을 분석해야 한다. 또한 비트코인을 상품으로 본다면 비트코인이 화폐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은 애초에 의미가 없다.”

-비트코인 송금자를 찾을 수 없는 기술적 특성이 범죄에 이용되기 좋다는 우려도 많다.

“비트코인이 화폐로 쓰이지 않는데 비트코인만 갖고 있을 수 있나. 결국 이를 은행을 통해 현금화해야 한다. 비트코인을 현금화하기 위해 은행계좌와 연결되는 순간부터는 추적이 가능하다. 실제 미국에서 마약상들이 그들의 자금 이동을 위해 비트코인을 많이 사용했는데, 현금화하는 순간 다 꼬리가 잡혔다.

다만, 정부가 거래소의 입출금 내용만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전제가 붙는다. 만약 거래소가 입출금 내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면 이는 미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래소에 대한 규제는 꼭 필요하다.”

-비트코인 외에 다른 코인들은 어떤가. 요즘은 다른 코인들이 더 주목 받는 분위기다.

“비트코인 이외의 코인들을 알트코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모두 비트코인에서 하드포크(Hard Fork·기존 버전과 호환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된 코인들이다. 쉽게 말해 같은 모터를 가지고 다양한 모델의 자동차를 생산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모터 위에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비트코인 캐시 등의 이름을 붙인 새로운 코인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가장 완벽한 초기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비트코인에 비해 이 초기 기술을 변형시켜 만든 다른 코인들은 안전성이 낮을 수 있다.”

-리포트에서 비트코인을 장기 적립식으로 투자하라고 했다.

“비트코인이 금과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투자목적은 안전자산 확보에 있다. 이 투자목적에 적합한 투자전략은 장기 적립식 투자전략이다. 실제로 유럽 재정위기와 같은 주요 위기 상황에서 비트코인의 가치는 금 가격과 같이 상승했다.”

-가상화폐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가 많다.

조선DB

“사실 이는 비트코인 자체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근본으로 하는 일종의 은행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중앙은행의 중앙 서버에 비해 안전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한 블록체인 안에 있는 장부를 여러 블록체인이 나눠갖기, 즉 복사·붙여넣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 복사·붙여넣기를 해서 새로운 블록체인을 만드는 이들이 채굴자이고, 채굴자가 새로운 블록체인을 만들어내면 장부의 안전성이 더욱 강화된다. 이에 채굴자는 그 댓가로 1비트코인을 받게 된다.

거래소는 채굴자들이 얻은 비트코인을 개인 투자자들과 연결하는 곳이다. 이들은 그 댓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사실 모든 사고는 여기서 터진다고 보면 된다. 비트코인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거래소의 보안, 도덕성 등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국내도 마찬가지고.

“앞서 말했듯 거래소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다. 최근 터진 해킹 문제나 서버 정지 사태 등 대부분 사고는 거래소의 문제였다.”

-가상화폐 가격의 급격한 변동성도 문제가 되지 않나.

“가격은 결국 개인과 개인의 수급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등락폭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잃어도 누군가는 돈을 버는 제로섬(승패를 모두 합하면 제로가 되는 것)이다. 개인 간의 투자로만 남겨두면 결국 본인의 책임인 것 뿐이다.”

-국내 금융당국은 ICO(가상화폐 공개), 선물거래를 금지했고, 또 투자금액 상한제와 투자자격제 등 도입도 검토 중인데. 이러한 규제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미국은 선물 거래를 시작했지 않나. 비트코인 선물 상장을 비트코인 탄생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판단한다. 선물 상장을 통해 그 동안 높은 결제 리스크 때문에 투자를 할 수 없었던 기관투자자들의 참여가 크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들의 참여는 시장의 유동성 증가와 더불어 그 동안 개인의 투기심리에 의존했던 비트코인의 변동성을 낮춰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관투자자들의 참여는 비트코인의 적정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가격)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를 시장에 이끌어 진정한 투자자산의 위치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투자금액 상한이나 투자자격제 같은 규제는 사실 지금 상황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정부가 거래소를 컨트롤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예를 들어 거래소에서 출금을 할 때 세금을 물리는 방법 등이 더 적당할 것 같다.

ICO에 대해서도 투자자들 본인의 책임이다. 사실 ICO를 발행하는 업체가 시장 대출이나 증시 상장이 어려운 기업 아니겠나.”

-비트코인의 적정 밸류에이션을 어떻게 따질 수 있나.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보고 가치를 저장할 수 있는 안전자산으로 본다면, 비트코인의 적정 시가총액을 금과 비교해 판단할 수 있다.

6조달러(6600조원)에 해당하는 전 세계 50억 온스의 금 시가총액을 비트코인이 대체할 경우 2140년까지 2100만개가 발행될 수 있다. 이 경우 비트코인의 적정 가격은 현재의 24배인 약 28만5000달러(약 3억원)가 돼야 한다.

보수적으로 금의 가치저장 역할을 10%만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비트코인의 가격은 현재보다 1.5배인 2만8500달러에 거래돼야 한다.”

-본인의 가상화폐 투자 전략을 정리하면.

“지금 상황에서는 단기 수익을 원한다면 알트코인에 투자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10년 뒤를 본다면 비트코인을 권한다. 현재 1300개가 넘는 알트코인들이 만들어진 상태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안전한 비트코인만 살아남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은 다른 암호화폐 대비 소유자가 분산되어 있어 네트워크 효과의 장점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선물 상장으로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예상되면서 비트코인의 상대적인 투자매력은 다른 알트코인에 비해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고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도난과 같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인 비트코인 지갑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물론, 거래소가 암호화폐 거래에 용이하기 때문에 일부 자금은 넣어두더라도 암호화폐 자체는 지갑에 보관하면 블록체인으로 보호되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