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 총수 지배력 강화 이용
공정위 "1~2단계 실태조사 할 것"
자료 제출과 자발적인 협조 요청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간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을 만난 자리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재계에서 공익법인 조사가 월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점에 대해 "공정거래법과 행정조사기본법에 근거해 최소 범위 내에서 조사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 총수 지배력 강화 공익법인 이용 점검

공정위는 20일 대기업의 공익법인 운영실태 파악을 위해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게 특수관계인 현황 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대기업의 공익법인은 공정거래법상 동일인관련자의 비영리법인으로 분류된다.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은 특정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 또는 법인을 의미한다. 공정위가 조사할 대기업 공익법인은 동일인 또는 동일인관련자가 공익법인 총 출연금액의 30% 이상을 출연하면서 최다출연자가 되거나 이들이 공익법인을 직접 설립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곳이다.

현행법에 따라 대기업의 공익법인은 특정 기업의 총 주식을 5% 내에서 보유할 경우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고 있다. 5% 주식을 기부로 보는 것이다. 공익법인 중 외부회계감사, 결산 서류 공시 등 투명성 요건이 인정되는 성실공익법인의 경우에는 특정 기업 총 주식의 10%까지 세금을 내지 않고 기부 받을 수 있다. 다만 최근 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지정된 성실공익법인의 경우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과 특수 관계가 있을 경우 기업 총 주식의 5%까지만 세금을 면제 받을 수 있다.

공익법인 비과세 혜택은 기부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들은 공익법인의 비과세 혜택을 계열사 우회 지배 수단으로 이용해 문제가 되고 있다. 재벌 계열사 주식 공익법인 기부➝상속·증여세 면제➝의결권 행사➝총수 지배력 유지·강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재벌닷컴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20대 그룹, 40개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 상장사의 지분 가치는 무려 6조7000억원이다. 그룹별로 삼성그룹의 3개 공익법인은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SDI·삼성화재 등 핵심 상장 계열사 지분을 2조9874억원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정몽구재단은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지분 3934억원, LG연암문화재단과 LG연암학원도 LG그룹 상장 계열사 지분 3518억원을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아산나눔재단과 아산사회복지재단이 보유한 상장 계열사 주식은 5281억원, 롯데그룹의 롯데문화·롯데삼동복지·롯데장학 등 3개 공익법인은 롯데칠성·롯데케미칼·롯데쇼핑·롯데제과 등 4180억원 가량의 상장사 주식을 보유 중이다.

재벌들의 대표적인 공익법인 악용 사례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지난해 2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신규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물산 주식 200만주를 사들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이다. 우호주주격인 재단의 지분 매입으로 이 부회장의 실질적 지분율은 16.5%에서 17.2%로 늘어났다. 한진 계열사의 증여로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한 정석인하학원 등의 사례도 공익법인 악용 사례로 꼽힌다.

이런 측면에서 공정위가 재벌들의 공익 법인이 당초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고 있는지 전수 조사에 나선 것이다. 공익 법인들이 세금 혜택을 받으며 총수들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점검에 들어간 셈이다.

공정위는 57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비영리법인에 대해 목록과 동일인관련자 해당 여부, 상증세법상 공익법인 해당여부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조사과정에서 그간 신고가 누락된 비영리법인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 향후 대기업 집단 지정시 계열편입, 내부지분율 산정 등에 반영할 예정이다.또 과거 공정위로부터 동일인관련자에서 제외 처분을 받았다고 신고한 비영리법인에 대해서도 제외 사유 존속 여부도 확인할 방침이다.

출처=최운열 의원실

◆ 월권 지적에 "공정거래법, 행정조사기본법 근거"

공정위는 57개 기업집단으로부터 자료를 제출 받은 후 내년 1월 2단계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공정위의 공익법인 전수조사에 절차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을 해왔다. 월권이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대기업 공익법인 전수조사가 공정거래법 제14조와 행정조사기본법 제5조에 근거한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법 제14조 제4항은 공정위가 기업집단의 지정을 위해 회사의 일반 현황, 회사의 주주 및 임원 구성, 특수관계인 현황, 주식소유 현황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또 행정조사기본법 제5조에는 행정기관은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만 행정조사를 실시할 수 있지만, 대상자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으면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따라서 공정위는 1단계 실태조사는 공정거래법에 근거해 자료를 받고, 2단계는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라 기업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공정위의 막강한 힘을 감안할 때 자발적인 협조가 '강제적인 요청'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공정위는 싵태조사가 끝난 후 대기업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공익법인이 보유한 특정 기업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법안들이 제출돼 있다. 재벌 총수 등과 특수 관계가 있는 공익법인은 관련 총수가 지배하는 회사의 국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경우 의결권을 없애는 것이다. 공익법인이 가진 주식이 총수의 지배력 강화에 사용되지 못하게 차단하는 셈이다.

공익 법인이 기부 받는 일부 주식에 세금을 면제해주는 '5% 룰'에 대해서도 수정안이 추진되고 있다. 기부 활성화 목적을 위해 현행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특정 기업 총 주식의 5%를 20%까지 늘리되 해당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막아 악용을 차단하는 것이다. 해당 방안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미국식 의무 지출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국회에 공익법인 의무지출을 강화하는 방안을 보고한 바 있다. 미국은 공익법인이 업무 수행을 위해 사용하는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 자산을 모두 '투자 자산'으로 분류하고 5% 이상은 반드시 공익 목적에 지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공익법인이 출연 받은 자산(주식 포함)이 배당 등 수익을 내지 않아도 강제 지출을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