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블록체인협회 초대 협회장에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65·사진)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블록체인협회의 수장을 맡게 되면서 규제 일변도의 정부 주도 정책에 변화가 예상된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초대 블록체인협회장 자리를 놓고 경합 중인 3명 가운데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이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블록체인협회는 빗썸·코빗·코인원·코인플러그 등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모여 구성한 단체로, 이용자 보호 등의 내용을 담은 업권의 자율규제안을 마련하고 있는 주체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14일 조선비즈와의 전화통화에서 “가상화폐 관련 문제가 요즘 상당히 논란이 되고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협회에서 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대표.

진대제 전 장관은 2003~2006년 참여정부에서 정통부 장관을 맡았다. 당시 ‘IT 839(8대 신규 서비스·3대 인프라·9대 신성장동력)’ 정책을 추진해 인터넷 강국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통부 장관 취임 전에는 1985~2000년까지 삼성전자에서 근무했고 사장을 역임한 후 퇴임했다.

이후 2006년 말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하고 현재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주립대 석사,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후보들 가운데 한 분이며 현재 진 전 장관이 블록체인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장관 출신이 협회장으로 오게 되면 블록체인협회의 위상과 무게감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강경한 규제 중심의 정부 정책이 좀더 유연한 방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초 가상화폐 관련 정책은 금융당국의 규제와 블록체인협회의 자율규제안이 주축을 이뤘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들이는 데 부정적인 입장이었기에 업계가 중심이 돼 협회를 구성하고 자율규제안을 만들어 시장에서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가 강력하게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부처간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 전면금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금융위는 유사수신으로 불법으로 다루되 투자자보호 등의 장치를 마련하면 예외적으로 허용해주겠다는 기조다.

그러던 것이 급작스레 ‘일부 금지’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13일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경찰청 등은 긴급 차관회의를 열고 미성년자, 외국인 등의 가상화폐 계좌 개설 및 거래를 전면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은행 거래자금 입출금 과정에서 본인 인증을 의무화하고 금융기관의 가상화폐 보유와 매입, 담보 취득, 지분 투자도 전면 금지한다는 계획이다.

투자자 보호와 거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가상화폐 거래소에 한해서만 거래할 수 있도록 입법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가상화폐 거래소는 앞으로 고객 자산의 별도 예치, 설명 의무 이행, 이용자 실명 확인, 암호 키 분산 보관, 가상통화 매도 매수 호가·주문량 공개가 의무화된다.

이 같은 내용은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안에 담길 예정이었으나 정부 규제 정책에 포함되면서 블록체인협회의 입지가 줄었다. 자율규제안을 준수하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한해 은행의 가상계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점점 무산되고 있다.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KDB산업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대부분의 은행들이 잇따라 정부의 규제 기조에 맞춰 가상계좌를 일절 제공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가상계좌 제공 여부는 은행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안을 통해 가상계좌를 제공하겠다는 곳은 5~6곳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진 전 장관이 시장 중심의 자율규제로 중심을 옮겨올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을 정부가 강력한 규제로 제압하고자 하지만 제도의 실효성이나 산업 전체의 이익 측면에서 적절한 대응인지 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영향력 있는 인사가 협회장 자리에 온다면 거래소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고 동시에 가상화폐 시장 발전을 위해 더 의미있는 정책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