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조선업 혁신성장 추진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내년 6월에 끝나는 조선업의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기간 연장 검토, 2021년까지 총 9척의 LNG 연료추진선 전환발주 등 조선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할 주요 정책과제의 구체적인 그림을 내놓는 것이다. 또 1조원 규모의 구조조정 펀드를 조성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조선 관련 업체에 대한 구조조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조선업황이 꺾이기 시작했던 2015년부터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계획했고 작년 10월 구조조정 방안을 담은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놨다. 설비·인력 등 과잉 공급능력을 해소하면서 핵심사업 역량을 키우고 공공선박 발주를 늘려 ‘수주 절벽’에 어려움을 겪는 조선사들을 지원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조선사들은 일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경쟁력 강화방안은 중장기 과제가 대부분이어서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금 감면 등 파격적인 지원에 나선 중국 등 경쟁국의 정책과 대조된다. 부실 조선사 구조조정 문제도 정치 논리에 밀리는 등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채권은행이 어디인가에 따라 지원이 달라져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불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9월 경남 거제도의 한 조선소. 일감이 줄어 한산한 모습이다.

◆ 당장 일감 부족한데 ‘중장기과제’ 내놓는 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은 작년에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11조2000억원 규모로 선박 250척 이상을 발주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7조4862억원의 예산으로 2018년까지 공공선박 63척 이상을 조기에 발주하고 3조7000억원의 선박펀드를 활용해 2020년까지 75척 이상의 발주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또 연안 화물선이나 여객선을 신규로 건조할 때 대출 상환기간을 늘려주고 대출 이자 중 일부를 지원해 2020년까지 115척 이상의 배가 발주되도록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이 중에서 이달 초까지 실제로 발주된 선박은 4조원 규모의 공공선박 58척과 선박펀드를 통해 발주된 10척 등 총 68척이다. 공공선박 58척은 작년 말 추가경정 예산을 통해 발주된 것이어서 올해 새로 발주된 선박은 10척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 조선업체가 올해 들어 이달 초까지 수주한 161척의 6.2% 수준이다.

조선업계는 정부가 선박 발주 시기를 앞당겨 주길 바라고 있다. 내년 발주 물량이 올해보다 늘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예년 평균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내년이 조선업계가 마지막 진통을 겪는 시기가 될 것 같다”면서 “조선업은 수주 외에는 살아날 길이 없어 정부가 조기에 선박을 발주하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또 조선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며 5년간 민·관이 연구개발(R&D)에 75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집행된 내용은 거의 없다. 또 신시장 개척을 위해 3만톤 이상 선박 수리조선소를 현재 1개에서 3개로 확대하고, 플랜트 설계전문회사를 설립해 고급인력을 양성하겠다고 했으나 진행된 게 없다. 이 외에도 해양플랜트 유지·보수 기술개발, 조선소 건설·운영 컨설팅 등도 ‘중장기과제’로 분류돼 있다.

정부는 내년 초 혁신성장 추진방안을 통해 선박 발주를 지원하고 중장기 과제로 기술 및 원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이지만 업계에선 시큰둥한 표정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과거에 나온 대책과 다를 게 없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스마트선박 기술력을 강화하고 선박 건조 일변도의 조선산업(Ship Building Industry)을 서비스까지 포함한 선박산업(Ship Industry)으로 바꾸겠다는 정부 정책은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지금 당장 정부가 조선업체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큰 기대는 안하고 있다”고 했다.

중견 조선사들은 정부 대책에서 소외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중견 조선사 관계자는 “정부가 발주를 늘린다고 하지만, 관공선이나 연안여객선과 같은 소형 선박은 중소 조선사인 대선조선 등이 가져가고 군함은 대우조선해양이나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형사가 가져가 중견 조선사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저가수주를 막겠다며 수주 심사도 강화해 중견 조선사는 (수주를 못해) 고사(枯死)하기 직전”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쟁국인 중국이나 일본은 보조금 지원, 세금 감면 등으로 자국 조선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노후선박을 신형으로 교체하면 총 톤수(GT·Gross Tonnage)당 1500위안(약 25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수출증치세(부가가치세) 17%를 환급해 준다. 한국보다 먼저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진행한 일본은 베트남 등 신흥국에 생산거점을 구축해 인건비를 낮추고 친환경 선박에 집중해 부활을 꾀하고 있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한국은 중국과 달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라 현실적으로 중국과 같은 보조금 지원이 어렵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중국 업체에 모두 (수주를)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나 일본 해운사도 가격만 보고 발주하지 않는다. 한국 해운사가 한국 조선업체에 발주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올해 9월 경남 거제도의 한 조선소 외벽에 ‘공장 매매’ 현수막이 걸려있다.

◆ 1년여 사이에 실사·컨설팅 4번…정치 논리에 밀리는 부실 조선사 구조조정

정부는 2015년부터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지역 사회 눈치를 보느라 결정이 늦어져 오히려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은 얼마전 회계법인 실사 결과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게 나왔지만, 정부는 연말에 다시 추가 컨설팅을 실시해 내년에 청산이나 존속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금융 논리로만 결정하지 않고 산업 측면을 고려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일각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결정을 미룬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당초 이들 회사에 대한 처리 방안은 지난달에 결정하기로 돼 있었다.

한 중견 조선사 관계자는 “정부가 결정을 늦추면서 해당 기업들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명확한 방향이 없으니 은행은 선수금 발급보증(RG·Refund Guarantee)을 꺼리고 선주들도 불확실성이 있으니 배를 맡기기 어려워한다. 계속 실사만 하고 결정을 안 내리니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어느쪽이든 결정을 빨리 내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STX조선해양은 작년부터 최근까지 3차례 실사를 받았고, 추가 컨설팅까지 받으면 1년 남짓한 기간에 4차례 실사·컨설팅을 받게 된다. 성동조선해양도 작년과 올해 각각 실사를 받은 바 있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는 “정부가 없는 수요를 만들면 기업이 살아날 수 있다고하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조선산업이 환골탈태하려면 읍참마속이 필요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를 위해 실업급여나 직업훈련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 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객관성, 형평성을 확보해야 구조조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