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스캔들 논란으로 러시아 선수들이 결국 평창 올림픽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국가 차원의 도핑 조작 스캔들로 물의를 빚은 러시아에 대해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금지라는 최고 수준의 징계를 내린 것이다 동계 스포츠 강국 러시아의 평창 올림픽 출전 금지로 평창 올림픽 흥행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내년 2월 9일 개막하는 평창 올림픽을 두 달 앞둔 8일 국내 유일 도핑 분석 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DCC)의 권오승 센터장은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국가 주도의 도핑 스캔들이 문제가 된 후 리우 올림픽부터 도핑 규정이 굉장히 엄격해졌다"고 말했다.

권 센터장에 따르면 WADA는 소치올림픽 도핑 스캔들 이후 WADA 자체적으로 수사권을 지닌 조사 부서 및 내부 고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올림픽 기간 WADA 직원이 도핑 분석 실험실에 상주한다. WADA는 도핑 센터에 ‘스파이 시료’ 5~6개를 분석 대상 시료와 함께 보내 분석 능력을 시험할 정도다.

권오승 KIST 도핑컨트롤센터장이 최근 도핑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 센터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100여종에 불과했던 금지 약물 목록이 내년 2월 평창올림픽에서는 약 400여종에 달한다”며 “2010년대부터는 선수들의 생리학적 지표를 연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생체여권제도’도 도입됐다”고 말했다.

KIST의 DCC는 아직 국제반도핑기구(WADA)로부터 평창 올림픽 도핑 공인 센터로 인증받지는 않았다. 권 센터장은 “내년 1월 공인 센터로 인증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평창 올림픽은 단백질 약물과의 전쟁...약물 복용 사실 감추는 약물도 분석

도핑은 원래 ‘도프(dope)’라는 술 이름에서 유래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수렵민족인 ‘카필족’이 알코올이 많이 포함된 도프라는 술을 마시고 사냥을 한 것에서 도핑이라는 말이 나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경기전 혈액 수혈은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일시적으로 혈액 내 적혈구를 늘리면 조직에 산소 공급도 많아져 운동량을 늘릴 수 있다. 현재 혈액 수혈이나 근육을 강화하는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 복용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늘려 근육량을 강화하는 약물도 금지 약물이다.

평창 올림픽의 반도핑 약물에는 성장호르몬이나 적혈구생성인자(EPO) 등 체내에 단백질을 주입하는 바이오 약물이 대거 포함됐다.

권오승 센터장은 “최근 들어 성장호르몬이나 근육 향상 관련 단백질 의약품들 도핑이 늘어났는데, 단백질 의약품들은 인체 내 존재하는 단백질과 유사하고 체내에서 대사되는 양이 적어 분석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평창 올림픽은 단백질 약물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단백질 의약품 도핑을 분석하는 방법으로는 ‘항체 기반 질량분석 기법’을 활용한다. 이는 소변 시료와 항체가 결합한 자성을 가진 물질을 혼합시킨 뒤 항체가 표적 단백질 의약품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현상을 이용해 단백질 의약품을 정제하는 방식이다.

권 센터장은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최근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세계 30여개 반도핑 분석 기관 중 한국을 포함한 5개 기관만 통과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처음부터 도핑 테스트를 피하기 위해 설계한 약물도 나오고 있다. 이뇨제나 은폐제가 대표적이다. 이뇨제는 소변량을 늘려 약물이 빠르게 체내에서 배출될 수 있도록 돕는 작용을 하고 은폐제는 특정 단백질이나 호르몬을 희석하는 역할을 한다.

KIST 도핑컨트롤센터 연구원이 시료를 실험하고 있다.

선수들의 혈액이나 소변 시료에는 극히 미량으로 남아있지만 2~3개월 동안 효과가 지속되는 약물 분석도 강화되고 있다. 스테로이드 계열인 ‘메탄디에논(metandienone)’이 대표적이다. 권 센터장은 “이같은 약물은 2~3달 동안 모니터링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며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정교하게 측정해야 하는 판별약물 수도 2배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 시료 승인 절차부터 보고서 제출까지 ‘원스톱’...진화하는 장비

평창 올림픽의 도핑 적발 관련 기술 중 다른 올림픽과 차별되는 부분은 ‘도핑랩 정보관리 시스템(LIMS)’ 도입이 본격화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도핑 시료 하나당 분석결과 데이터가 A4 용지로 수백장이 나올 정도로 번거롭고 복잡했지만, LIMS의 도입으로 시료 승인 절차부터 WADA에 보고서 제출까지 ‘종이 없는(paperless)’ 시스템이 가능해졌다.

시료가 들어오면 시료 샘플이 어떤 종목의 어떤 선수의 것인지 자동으로 승인 절차를 거친다. 실수로 시료가 바뀔 경우 한 선수의 인생이 망가질 정도로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보안은 철저하게 유지된다. 샘플이 승인되면 어떤 과정으로 분석할지 자동으로 요청하고 샘플을 분배한 뒤, 분석 장비에 넣기 전 소변이나 혈액에 일반적으로 함유된 물질을 어느 정도 제거하는 전처리 작업이 진행된다.

전처리가 끝나면 분석을 거쳐 분석 결과가 LIMS로 자동 이동하고 의심 물질이 검출됐을 경우 물질 이름과 농도 등도 자동으로 확인되는 시스템이다.

권 센터장은 “평창올림픽에서 반도핑 분석의 핵심역할을 하게되는 KIST 도핑컨트롤센터에는 LIMS가 갖춰졌다”며 “가장 고가의 최신 장비인 ‘Altis(신속하게 의심물질을 스크리닝하는 장비)’와 ‘Exactive Plus(의심 물질 스캔 속도는 낮지만 의심물질 확인 정확도가 매우 높은 장비)’도 들여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