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0위 신세계그룹이 내년 1월부터 근로시간을 단축해 주 35시간 근무제로 전환한다. 현재 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으로, 일부 IT 기업 등을 제외하고 대기업이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신세계는 "'과로(過勞) 사회'로 대표되는 근로 문화를 혁신해 임직원에게 '휴식이 있는 삶'과 '일과 삶의 균형'을 제공하겠다"고 8일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간 근로시간 조사(2016년 기준)에서 한국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2255시간)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2위에 올랐다. 신세계의 근로시간 단축 결정에 대해 산업계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근로시간을 줄이면 당장 생산에 타격을 입는 기업이 대부분인 만큼 다른 업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인 투 파이브' 하루 7시간 근무

신세계 16개 계열사 임직원들은 내년 1월부터 하루 7시간 근무하고, 이전보다 1시간 일찍 퇴근한다. 오전 9시에 출근, 오후 5시에 퇴근하는 이른바 '나인 투 파이브'(9-to-5)를 기준으로 업무 특성에 따라 '오전 8시~오후 4시' '오전 10시~오후 6시' 등 유연 근무제도 시행한다. 전국 이마트 매장 140여곳 중 현재 자정에 문을 닫는 69곳의 폐점 시각은 오후 11시로 1시간 앞당겨진다. 나머지도 더 앞당길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백화점은 상권 특성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다만 생산 라인을 운영하는 신세계푸드나 미국 본사와 합작 운영하는 스타벅스 직원 등 8000여명은 이번 근로시간 단축 대상에서 제외한다.

신세계는 "임금은 현 수준을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점포 문을 일찍 닫기 때문에 연장 근무에 따른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며 "생산성을 높이는 근무 문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 지시로 2015년 말 관련 TF를 만들어 2년여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무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단축은 단계적… 고용 유연성 선결"

신세계의 이날 발표에 대해 산업계는 "취지는 환영하지만, 노사와 정치권이 첨예하게 맞서는 근로시간 단축 이슈와는 거리가 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 핵심 내용은 최장 근로시간을 현재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노사가 협의한 경우, 주 40시간 법정 근로시간 이외에 1주에 12시간 연장 근로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기업들은 "라인을 가동하는 제조업은 근로시간을 줄이면 곧바로 생산량 감소와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부담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치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최근 국회를 찾아 "산업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은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동훈 서강대 교수(경영학)는 "신세계의 근로시간 단축이 근로자들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제도로 정착하는지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을 점진적으로 추진해 왔다. 일본은 1987년 법정 근로시간을 주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였지만 실제 사업장에서는 1999년부터 시행했다. 2000년부터 주 35시간 근로제를 시행하는 프랑스는 근로시간이 줄었지만 초과 근무 수당이 늘면서 최근 정책을 손질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기업이나 업종마다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획일적 적용은 어렵다"며 "고용 유연성을 높여나가는 작업을 선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