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기반 프로세서 시장의 '숨은 강자' 캐비엄
"모바일서 서버로 생태계 확대 중인 ARM에 긍정적 효과"

지난해부터 세계 반도체 시장을 뜨겁게 달군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 광풍이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23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기업 마벨(marvell)이 또다른 반도체 기업 캐비엄(Cavium)을 6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하고 구체적인 조건을 합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의 합병은 인텔의 x86 아키텍처 기반의 프로세서가 거의 모든 생태계를 장악한 서버 시장에 ARM 기반 프로세서가 운신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마벨은 미국의 반도체 기업으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탑재되는 컨트롤러 제품을 비롯해 스위치 등의 네트워크용 반도체, 와이파이(Wi-Fi) 및 블루투스 시스템온칩(SoC) 등 무선연결칩을 판매하는 회사다. 매출 기준 세계 33위를 차지하고 있다. 캐비엄은 ARM 기반의 데이터센터용 프로세서, 네트워크용 반도체와 보안칩 등을 판매한다. 일부 영역에서 두 회사의 제품군이 겹치기도 하지만 규모는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마벨 반도체의 본사 전경.

최근 ARM은 지난해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이후 텃밭이었던 모바일 분야에서 서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캐비엄의 경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텔이 세계 시장의 90% 수준을 장악하는 서버용 프로세서 분야에서 ARM 기반의 프로세서로 주목을 받으며 잇달아 대형 수주를 따내고 있는 회사다. 마벨과 캐비엄의 합병이 ARM이 서버 분야에서 생태계를 확장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캐비엄이 만드는 '썬더X2(ThunderX2)' 프로세서는 퀄컴이 최근 발표한 센트리크(Centriq)와 함께 가장 비용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등 대형 서버 업체들이 도입을 시작했다. 인텔이 독점하고 있던 정부 공공기관의 슈퍼컴퓨터 프로젝트가 인텔이 자랑하는 제온 대신 캐비엄의 썬더X2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캐비엄의 썬더X2가 지닌 최대 장점은 높은 성능의 컴퓨팅을 발휘하면서도 동시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서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싱글, 듀얼 소켓을 모두 지원하는 고성능 커스텀 코어(custom cores)에 고대역폭메모리(HBM)까지 탑재해 기존 인텔 기반의 데이터센터 서버보다 원활하게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마벨과 캐비엄이 인텔이나 삼성, 브로드컴처럼 공룡급 반도체 기업은 아니지만 두 회사의 기술 경쟁력이 M&A를 통해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서버 시장의 빠른 확장, ARM 기반의 서버 프로세서가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한 최근 시점에서 ARM 생태계를 지원하는 새로운 종합반도체 기업의 탄생에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두 회사의 M&A는 서버용 반도체 분야에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과 함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서버 시장에서 두 회사가 합병에 성공하면 프로세서, 스위치, 무선연결칩, 메모리 컨트롤러 등 서버 구축 및 운용의 핵심적인 반도체를 상당 부분 직접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마벨은 캐비엄을 주당 80달러로 산정했다. 이달 초 인수 가능성이 처음으로 보도되기 직전의 거래가보다 최소한 17%의 프리미엄을 얹어준 셈이다. 마벨이 인수액의 50%는 현금으로, 나머지 50%는 자사주를 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