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1시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성내전통시장. 아파트·오피스텔이 밀집한 주거 단지 한복판에 있는 시장에서는 이날 1000원어치씩 포장한 먹을거리를 파는 '군것질데이' 행사가 열렸다. 200여 명의 손님은 시장 내 20여 개 점포에서 한컵 도넛, 한컵 닭강정, 미니 바나나 등 1000원짜리 상품을 샀다. 이 시장에는 소량(800g)의 LA 갈비, 작은 병에 담은 2000~3000원짜리 참기름, 1~5㎏ 단위로 포장된 쌀·잡곡 등 1~2인 가구를 위한 상품들이 점포마다 진열돼 있었다. 컵에 담긴 1000원짜리 홍어무침을 2개 구매한 김현경(65)씨는 "남편과 둘이서 저녁 반찬으로 먹기에 딱 알맞은 양"이라며 "예전에는 홍어무침을 사고 싶어도, 1만원 단위로 팔아 양이 부담스러워 포기했었다"고 말했다.

도심의 주택단지에 있는 전통시장들이 1~2인용 소포장 상품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과거 '싼값에 많은 양'의 식재료와 물품을 팔았던 전통시장들이 1~2인 가구를 겨냥해 퇴근길에 하루치의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사는 곳으로 변신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경기도 부천의 역곡상상시장, 대구광역시의 신매시장 등 올해 들어 전국 20여 개 시장이 소포장 상품을 내놓으며 도심형 골목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0원이면 홍어무침 2컵… 아이디어 소포장 상품 내놓는 전통시장들

서울 성내전통시장은 천호역 인근의 200m 정도 이어진 기다란 골목에 83개 점포가 몰려 있는 골목형 시장이다. 주변에 거주 인구가 많아 점포당 매출이 꽤 좋은 도심의 전통시장이었지만 2000년대 초 500m 거리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침체기에 빠졌다. 지난해부터 시장 상인 전체가 힘을 합쳐 1~2인용 소포장 상품을 한꺼번에 내놓으면서 주변 손님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황동혁(30)씨는 "이번 추석에는 8000원짜리 LA갈비 소포장 상품 예약이 80개나 들어왔다"며 "근처 아파트에 사는 맞벌이 부부들이 단골손님"이라고 말했다. 이 점포는 이런 소포장 상품 판매로만 한 달에 평균 12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서울시 강동구 성내전통시장 상인들이 11일 작은 컵에 담아 파는 먹을거리 상품을 들고 있는 모습(위 큰 사진). 이 시장은 모듬견과(아래 왼쪽)·홍어무침과 돼지껍질(아래 오른쪽)·빵·떡 등 소포장 먹을거리를 1000원에 팔아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도시 속 전통시장들은 시장마다 특색을 가진 소포장 상품을 개발·판매하면서 활로를 찾고 있다.

부천 역곡상상시장은 3년 전에 소포장 전략을 도입했다. 두부 판매 점포에서는 2000~3000원어치 두부조림을 팔고, 생선가게는 토막 생선을 튀겨서 파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도입한 덕분에 점포 매출이 10~20%씩 뛰었다. 이 시장의 남일우 상인회장은 "시장 인근 빌라·아파트에 젊은 2인 가구가 많은 것에 초점을 맞춰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했다"며 "시장 내 떡집은 이번 추석에 차례상에 올릴 만큼만 떡을 포장해 팔아 3일 동안 매출 2000여만원을 올렸다"고 말했다.

대구 신매시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소포장 판매 방식을 활용해, '1인용 도시락' 상품을 팔고 있다. 4000~5000원을 내고 도시락 용기를 받은 뒤, 각 점포에 들려 소량의 반찬과 먹을거리를 골라 담는 방식이다.

1~2인 가구 시대에 맞춘 전통시장의 변신

소포장 판매는 1~2인 도시 가구 증가에 따른 소비 트렌드 변화를 감안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2인 가구는 벌써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다. 1인 가구가 540만 가구, 2인 가구가 507만 가구에 달한다. 이 가구들은 주말에 대형마트에서 여러 물품을 대량 구매하지만 소량은 걸어서 갈 수 있는 인근 골목시장을 더 선호한다.

우리보다 앞서 1~2인 가구 급증 현상이 나타난 일본에서도 도심에 있는 골목 상점들이 거의 예외 없이 사과 1개, 귤 2~3개 등 작은 포장으로 묶어 판매하고 자신들의 점포 브랜드를 부착한 포장지를 쓰기도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3년 전부터 골목형 시장들을 특화된 소량 판매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포장 용기, 소량 상품 기획, 시장 브랜드 개발 등을 지원하고 있다.

조재연 중소벤처기업부 시장상권과장은 "소포장 상품도 아이디어와 기술이 필요하다"면서 "상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영세 상인들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추가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