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특혜채용 의혹 사건을 계기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후임 행장을 선임해야 하는 단계다. 우리은행 내부 한일-상업 출신의 갈등은 조직 발전을 저해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정부 지분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이미 민영화된 은행이다. 정부도 경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지금 문제는 과점주주들(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키움증권, 동양생명, IMM PE 등)이 이사회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주주들이 선임할 새 은행장이 우리은행의 복마전 같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며, 우리은행의 문제가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복마전(伏魔殿)은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근거지를 의미한다. [편집자 주]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의혹은 내부 파벌 싸움과 더불어 정치권-경영진-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후진적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공공기관인 은행을 사적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결국 채용비리와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최고경영자(CEO) 선출 때마다 유력 후보들은 정치권에서 연줄을 찾아 이를 배경으로 삼으려 하고, CEO에 선출되면 결국 자신을 지원했던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현재 차기 우리은행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내외부 인사들 중 상당수도 정치권 인맥을 갖추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노조 역시 조합원 전체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보단 노조 간부들이 권력을 누리는 식으로 ‘정치조직화(化)’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일·상업은행 출신이 번갈아 CEO를 맡는 관행 때문에 새 CEO들은 전임자가 임명한 임원들을 대거 숙청하기도 한다.

은행 경영진 뿐 아니라 노조 간부들도 정치권과 이런저런 끈을 가지고 있어 우리은행은 정치권과 관련한 루머도 많이 나온다.

사진 = 블룸버그

◆ 역대 CEO, 정치권과 깊은 인연...능력 위주 인사보다 인맥 위주 인사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은 정치권과 인연이 깊은 인사들로 채워져왔다. 채용비리 의혹을 책임지고 사퇴 의사를 밝힌 이광구 현 행장도 서금회(서강대 금융인 모임) 회원으로 친박(친박근혜) 인사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전임 이순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역시 전 정권 인사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우리투자증권 사장직에서 조직을 떠난 지 4년만에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과의 인맥을 업고 우리금융 회장으로 돌아왔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타고 온 줄(정치권 인맥)이 달라 서로 반목하고 갈등을 빚으면서 분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 회장이나 행장, 부행장에 오른 임원 가운데 정치권에 줄이 없는 사람이 없다”며 “고향, 출신 학교, 집안까지 찾아서 정치권에 줄을 댄다”고 했다.

경영진들과 정치권의 결탁이 빈번하다 보니 능력 위주의 인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인맥 네트워크, 즉 뒷배경이 있는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다른 은행들도 인사 청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은행처럼 적나라하지는 않다. 인사 청탁 뿐 아니라 대출 청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최근 우리은행의 채용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치권과 관련한 의혹도 확산되고 있다.

심상정 의원이 지난달 국감에서 공개한 채용비리 문건에는 금융감독원, 국가정보원, 전·현직 우리은행 임직원, 병원 이사장, 지자체 인사, 거액을 은행에 예치한 자산가 등의 자녀들 명단이 적시돼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국회의원들이 청탁한 사람들도 대거 포함돼 있었는데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국회의원들 명단을 뺐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유력 인사들로부터 각종 민원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에 나오게 된 의혹이겠지만, 우리은행 인사들이 그만큼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 한일·상업 세력 다툼이 만든 정치권 줄대기…노조 간부들도 사내 정치

우리은행의 고질적인 ‘정치권 줄대기’는 한일·상업은행 출신이 번갈아 CEO를 맡는 관행과 깊은 연관이 있다. 내부 파벌 싸움이 심하니 결국 외부에 ‘힘있는 인사’와 결탁해 상대측을 찍어누르는 것이다.

이런 관행이 만든 또다른 악습은 전임 CEO가 임명한 임직원들의 숙청이다. 우리은행의 역대 신임 CEO들은 어김없이 첫 정규 인사때 전임자가 선임한 임직원들을 퇴사시커나, 비선호 부서로 좌천시켰다. 경영의 연속성보다는 ‘전임 CEO 지우기’와 ‘내 사람 심기’에 혈안이 된다. 은행의 한 직원은 “누구 라인으로 찍히면 관리자급이 아닌 직원도 인사 때 심한 불이익을 당한다”며 “과거에는 CEO가 교체되고 영업조직 전체가 한번에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이런 조직 문화가 고착화되면서 노조 역시 경영진과 권력 나눠먹기를 한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은행 일각에서는 노조가 승진 대상자들을 일부 선정해 경영진에 추천하고 경영진이 이를 받아들이는 불투명한 승진관행이 지속됐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조가 은행장에게 인사철마다 승진을 원하는 직원 20~30명 가량의 명단을 전달했고 경영진은 이들 대다수에 대해 승진 발령을 내는 문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퇴임을 앞둔 은행장이 이런 명단에 대해 승진을 허용해주고 가기도 하는 등 상당히 오랜 관행으로 이런 인사조치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내에는 노조가 인사에 개입한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어떤 방식으로 개입이 되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인사 개입은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고위 관계자는 “조합을 통해 승진 누락자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노사파트를 통해 1~2명 정도에 대해 건의가 오고가는 경우는 있다”면서도 조직적인 승진 리스트 작성이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노조 선거에서 옛 한일·상업은행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도 반복되고 있다. 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로 출마한 직원들이 ‘이번에는 한일은행이 집권을 해야 한다’거나 ‘상업은행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식의 캐치프레이즈를 조장하면서 양쪽 은행 출신의 갈등을 이용한다는 얘기다.

은행 관계자는 “노조 선거에서 아직도 이런 행태가 나오는 것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고위 임직원들과 노조 간부 등 일부 고위직들만의 리그가 승진 등 인사과정이나 노조 선거에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