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필드카운티=김덕한 특파원

지난 8일(현지 시각) 미국 남부 오클라호마주 가필드카운티 헌터. 오클라호마 주도(州都)인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북쪽으로 130㎞가량 떨어진 이곳에는 SK이노베이션 셰일(shale) 광구(鑛區)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시추에 성공, 본격 생산에 들어간 7개 유정(油井·well)이 흩어져 있고, 하루 300배럴(4만7670L) 규모 원유·가스가 파이프라인을 타고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는 곳도 있다. 유가가 배럴당 60달러에 육박하는 요즘 이 정도면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알짜 유정'으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회사 개발 사업에 지분 참여만 한 게 아니라 우리 자본으로 광구를 사들이고, 운영하면서 우리 기술 인력 주도로 유정을 시추, 개발에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로 현지에서 광구를 운영하는 SK플리머스의 시추 엔지니어 안형진 부장은 "당장 이익도 이익이지만 우리가 세계 석유시장에서 새로운 주요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셰일유전에 대해 독자적인 시추·개발 능력을 확보했다는 게 더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오클라호마 셰일 시추기 - 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SK이노베이션 셰일 광구의 시추기. 지하 퇴적암층 암석 사이에 있는 원유·가스를 찾는 장비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에서 직접 셰일 광구를 사들여 운영하면서 원유·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다.

가필드카운티 셰일광산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허허벌판 곳곳 새 유정을 개발하는 시추기와 개발된 유정에서 원유·가스를 뿜어 올리는 펌핑유닛(pumping unit)이 눈에 띄었다. SK가 운영하는 광구만도 5만6000에이커(2억2662만㎡·약 6867만평), 서울시 전체 면적의 38%에 해당한다. SK는 이곳에서 108개 유정을 개발, 하루 2700배럴에 해당하는 원유·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메이드 바이 한국' 미국산 원유·가스

최동수 SK이노베이션 E&P 사업 대표는 본지 인터뷰에서 “북미에서 셰일 원유·가스 유력 사업자가 된 뒤에는 중국 등에도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세계 원유·가스 시장은 중동이 주도하는 전통방식(conventional) 생산에 미국이 주도하는 비전통방식(unconventional) 생산이 강력히 도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통방식은 원유·가스가 대량으로 묻힌 지하 웅덩이 같은 사암층에 수직으로 시추공을 박아 넣어 개발한다. 아직까지 가장 경제적인 채굴방식임은 분명하지만 시추에 실패할 위험이 높고, 쉽게 시추할 수 있는 곳은 이미 개발이 다 이뤄져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평가다.

비전통방식은 지하 퇴적암층(셰일이나 석회암층) 암석 사이에 갇혀 있는 원유·가스를 개발하기 위해 시추공을 퇴적암층까지 수직으로 내린 후 수평으로 시추공을 밀어 넣어(수평채굴) 원유·가스를 머금은 암석에 모래와 물을 쏘아 넣어(수압파쇄·fracking) 원유·가스를 뽑아내는 방식이다. 생산비용은 전통방식보다 많이 들지만 실패 확률이 낮고 여러 곳에서 소규모 개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가가 생산비보다 낮을 경우엔 생산을 멈췄다가 유가가 회복되면 또 생산할 수 있는 융통성도 장점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배럴당 20달러 내외까지 내려갔던 초저유가 시대에도 셰일산업은 위축되긴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움직이는 중동 국가들이 공세를 펼치며 미국 셰일산업 기반을 붕괴시키려 했지만 셰일산업은 생명력을 과시하면서 살아남았다.

미국 텍사스주 프리포트에 있는 LNG(액화천연가스) 하역 시설. SK그룹의 도시가스·발전 분야 계열사인 SK E&S는 지난 2013년 프리포트에 있는 천연가스 액화 설비를 장기 사용하는 계약을 맺었다. 텍사스주 셰일 광구에서 생산한 가스는 액체 상태로 변환돼 국내로 운송될 계획이다.

SK도 셰일 생산자 입장에서 이 초저유가 시대를 견뎌냈다. SK는 세계 원유시장 공급 다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14년 6월, 3871억원을 투자해 미국 오클라호마주 셰일 광구 두 곳을 사들이며 미국 셰일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셰일광구 운영권을 사들일 땐 배럴당 100달러가 넘던 유가가 그해 말부터 폭락해 수업료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안형진 부장은 "그때 큰 고생을 했지만 셰일 개발업자들 생존방식과 지구력까지 함께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에너지 개발부문 본사 휴스턴 이전

SK그룹의 미국 내 에너지 개발 도전은 1997년 SK이노베이션의 탐사·개발 사업부문인 SK E&P의 미국 현지법인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석유개발을 제대로 하려면 본고장인 미국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최태원 그룹 회장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그해 직접 탐사활동을 벌인 건 아니지만 2400만달러를 투자, 5개 생산광구에 대한 지분을 매입하면서 '에너지 아메리칸 드림'은 손쉽게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2005년 루이지애나주에서 시작한 독자 탐사작업이 실패로 돌아가 먹구름이 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독자적인 미국 셰일 개발생산회사로 우뚝 서게 됐다. 지난 2일 발표한 3분기 SK이노베이션 실적에서 석유개발사업은 447억원 영업이익, 3분기까지 누적 1372억원 영업이익을 이미 2015년과 2016년 연간이익을 넘어섰다.

올해 초엔 SK E&P 본사를 서울에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옮겼다. 새롭게 떠오르는 에너지 공급원인 미국에서 좀 더 적극적인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한 것이다. 최동수 SK이노베이션 E&P사업 대표는 "기존 셰일광구에서 추가 유정개발과 함께 새로운 광구 M&A(인수합병)를 추진하고 있다"라며 "북미에서 셰일 원유·가스 유력 사업자(top player)가 된 다음 중국 등 다른 지역에 선도적으로 진출하겠다" 고 말했다.

☞셰일(Shale)가스·원유

수평의 퇴적암(셰일)층의 미세한 틈에 갇혀 있는 천연가스와 원유. 일반적인 가스·원유보다 더 깊은 지하 2~4km에 위치하며 암석층을 고압의 모래, 물로 파쇄해 채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