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셀러 미니’에 쓰인 열전 모듈

냉장고에서 컴프레서(compressor·압축기)는 '자동차의 엔진'에 비유되는 핵심 부품이다. 냉장고는 액체가 기체로 변할 때 주위 열을 빼앗아 온도를 낮추는 원리를 이용한 제품이다. 몸에 바른 알코올이 마르면서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냉장고에서는 알코올보다 기체로 훨씬 잘 바뀌는 냉매를 활용한다. 냉장고 내부에 있는 압축기가 높은 압력으로 기체를 액체로 만들면 이 냉매는 냉장고 뒤편 응축기를 돌며 내부의 열을 흡수하고 냉기를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기화한 냉매는 다시 압축기에서 압축되며 열교환을 반복한다. 내부 온도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게 냉장고의 핵심 기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압축기 없는 냉장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엔진 없는 자동차'처럼 '컴프레서 없는 냉장고'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전기차에서 엔진을 대신해 모터가 바퀴를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새로운 부품이 압축기 역할을 대신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부품의 이름은 바로 '반도체 열전소자'(열전소자)다.

LG전자 제공

과거 냉장고의 냉장 원리를 뒤바꾼 신기술 반도체 열전소자

현재 대부분의 냉장고에 쓰이는 컴프레서는 부피가 크고 소음이 많은 게 단점이다. 대체재로 등장한 열전소자는 기체를 압축하는 것과 같은 기계적인 작동이 없다. 기본적으로 전류의 흐름에 따른 열(熱) 변화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열전소자는 전자(음전하)를 많이 보유한 N형 반도체와 정공(양전하)이 많은 P형 반도체를 붙여 놓은 부품이다. 180여 년 전 발견한 음극과 양극의 양단에 직류 전압을 가했을 때 한쪽 면에서는 열을 흡수하고, 반대편에서는 열을 발산하는 '펠티에(Peltier)' 현상을 활용했다. 열전소자에서는 전류가 흐르면 N형 반도체와 P형 반도체가 동시에 양전하와 음전하를 모두 당겨오면서 반대쪽 한편은 전하 자체가 희박해지며 열을 흡수하는 '펠티에' 현상이 생긴다. 냉장고에서는 전기를 흘려주면 열전소자의 한쪽 면이 열기를 흡수하면서 내부를 시원하게 한다.

열전소자는 다른 부품과 함께 열전 모듈(부품 덩어리) 형태로 냉장고 내부에 장착된다. 열전소자의 차가운 면은 냉장고 안쪽을 시원하게 하고, 외부 방향으로는 열을 내보내는 구조다. 열전소자는 열 손실을 막기 위해 스티로폼(EPS·발포 폴리스타이렌)에 싸여 있다. PE(polyethylene·폴리에틸렌)폼은 열전소자의 위치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전자와 정공이 쏠려 뜨거워지는 면이 향하는 바깥쪽 방열부(열을 방출하는 부분)에는 방열판과 방열 팬이 있어 이를 식히는 역할을 한다.

이종민 LG이노텍 책임연구원은 "전류가 흐르면 N형 반도체의 전자와 P형 반도체의 정공이 같은 쪽으로 쏠리면서 열이 나고, 전하가 비는 반대쪽은 차가워진다"며 "마치 공항 카운터의 대기 줄처럼, 뱀처럼 연결된 N형과 P형 반도체의 한쪽 면이 일제히 차가워지면서 냉장고 안을 차갑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원리는 쉽지만 실제 제품에 구현하기는 쉽지 않다"며 "만약 방열판이 없다면 뜨거워진 열이 열전소자 내부에서 차가운 쪽으로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르고 5분 이상 지난 뒤에는 열전소자가 작동을 멈추게 된다"고 말했다. 방열판과 방열 팬으로 뜨거워진 면의 열을 계속 빼주면서 냉장고 안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LG전자는 올 4월 열전소자를 적용해 소형화에 성공한 와인 냉장고 ‘와인셀러 미니’를 출시했다.

마우스보다 작은 크기로 냉장고의 냉기를 만드는 기술

열전소자는 크기가 작아 제품을 작게 만들기 좋고, 가볍게도 제작할 수 있다. LG전자가 지난 4월 열전소자를 적용해 내놓은 와인 냉장고 '와인셀러 미니'는 N형 반도체 127개, P형 반도체 127개가 들어 있는 가로 4㎝·세로 4㎝ 크기 열전소자가 사용됐다. LG전자 관계자는 "열전소자 덕에 와인 냉장고를 와인 8병만 넣는 소형으로 만들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나온 다른 와인 냉장고는 최저 온도가 섭씨 10도였지만, 이 신제품은 8도까지 낮출 수 있어 최적온도가 최저 6도인 스파클링 와인, 최저 8도인 화이트 와인까지 문제없이 보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음이 작은 것도 장점이다. '와인셀러 미니'의 앞쪽 소음은 21㏈(데시벨), 뒤쪽은 25㏈이다. 앞쪽은 나뭇잎 스치는 소리(20㏈) 수준이고, 뒤쪽은 속삭이는 소리(30㏈)보다 작다. LG전자 관계자는 "열전소자는 압축기 냉각 방식과 달리 모터가 없어 진동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열전소자는 자동차 온도 조절 시트, 화장품 냉장고, 냉온 정수기뿐 아니라 앞으로 유아용 카시트 등으로 쓰임새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