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모씨(46)는 일주일에 한번 방문판매원이 찾아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화장품부터 가정간편식까지 다양한 제품을 집에서 직접 써보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먹는 건강기능식품에 입문한 것도 수시로 샘플 제품과 유익한 정보를 전해주는 방문판매원의 영향이 컸다. 김씨는 “방문판매원이 추천해주는 제품과 상담을 통해 가족들의 건강도 함께 챙기고 있다”며 “얼마 전에는 전기레인지같은 가전제품도 추천받아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방문판매가 여전히 매력적인 판매채널로 자리잡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방문판매시장 매출액은 3조341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6%(4611억원) 증가했다. 방문판매시장 매출액은 2013년 2조321억원, 2014년 2조8283억원, 2015년 2조8806억원, 2016년 3조3417억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고용창출 역할도 톡톡히 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방문판매원 수는 37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34% 증가했다.

2015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한 ‘쥬단학 아줌마’. 쥬단학 아줌마는 1980년대 유행했던 한국화장품 브랜드 ‘쥬단학’ 방문판매원을 지칭했던 말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아날로그 방식의 방문판매가 성장세를 타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바일, 인공지능(AI) 등을 이용한 온라인 쇼핑이 쉽고 편할지는 몰라도 방문판매 특유의 ‘스킨십’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대우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점도 방문판매의 인기 요소 중 하나다. 정보 홍수 시대에 결정 장애에 시달리는 소비자에게 전문가가 직접 맞춤형 제품을 골라주는 대면 영업이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팀은 올해 주요 트렌드로 ‘영업의 시대’를 제시하며 인적 영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재은 성균관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방문판매는 제품을 직접 써본 사람이 ‘이 제품이 좋다’고 하면 해당 제품에 대한 구매 의사가 높아지는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에 잘 맞는 판매 형태”라며 “역으로 자신이 써본 제품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면서 소소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방문판매업에 나서는 구매자들도 많아, 이 또한 방문판매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이유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록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 ‘쥬단학 아줌마·아모레 언니’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방문판매는 앞으로도 마케팅 업계의 큰 축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들어 방문판매는 새 시대에 맞춰 제품군을 넓히고 디지털도 접목하는 등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 요구르트부터 전기레인지까지…방문판매원 네트워크 기반으로 영역 확장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해 요구르트 제품 ‘야쿠르트’를 국민 제품으로 키워낸 한국야쿠르트는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로 재단장했다. 지난해 커피음료 ‘콜드브루 by 바빈스키’와 치즈크림제품 ‘끼리치즈’ 등으로 취급 품목을 늘린데 이어 지난 7월에는 가정간편식(HMR) 서비스 ‘잇츠온’을 내놨다. 올 초엔 과일과 야채 추출물을 첨가한 ‘하루야채 마스크팩’으로 뷰티 시장에도 발을 내디뎠다.

‘콜드브루 by 바빈스키’는 출시 18개월 만에 누적판매량 2200만개, 매출 450억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다. 끼리치즈도 1년간 판매량 250만개, 매출 120억원을 기록해 야쿠르트 아줌마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1971년 서울 종로 지역에서 47명으로 출발했다. 현재 1만3000여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이 하루에 만나는 고정 소비자만 1인당 평균 170~180명이다.

한국야쿠르트의 ‘야쿠르트 아줌마’(왼쪽)와 풀무원건강생활의 ‘헬스어드바이저’.

풀무원건강생활의 방문판매브랜드 ‘풀무원로하스’는 기존의 건강기능식품 등 헬스케어 제품을 넘어 최근 기초 화장품, 주방용품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지난 2015년 ‘로하스 키친’ 사업을 시작하며 주방가전 제품을 출시한데 이어 지난해 8월과 지난 6월엔 각각 전기레인지와 수면 관리 전문 브랜드 ‘자미즈’를 선보였다. 이달 들어서는 아기 전용 스킨케어 ‘러브 베이비’ 2종을 내놨다.

풀무원건강생활 관계자는 “‘헬스어드바이저’는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영양 및 피부관리, 생활습관 등을 상담해준다”며 “풀무원로하스의 영역 확장은 이들이 구축한 충성도 높은 소비자 네트워크가 주효했다”고 말했다. 풀무원로하스의 방문판매원인 헬스어드바이저는 연간 300시간 이상의 헬스케어 교육을 받는다.

◆ 아날로그 감성에 디지털을 더한다…모바일·SNS 이용한 방문판매도 등장

방문판매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화장품업체들은 ‘방판 아줌마’의 상징이었던 커다란 화장품 가방을 벗어던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방문판매 매출은 1조797억원으로 전년(1조238억원) 대비 5.5% 증가했다. 국내 화장품 2위 기업인 LG생활건강의 지난해 방문판매 매출은 6631억원을 기록해 전년(5298억원)대비 25% 늘어났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15년 선보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뷰티Q’를 활용해 방문판매 분야의 디지털 혁신에 나섰다. 뷰티Q는 이용자들에게 미용 정보와 특정 제품 사전 예약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또 ‘카운셀러 찾기 서비스’를 통해 신규 이용자가 쉽게 방문판매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난 10월말 기준 뷰티Q의 누적 다운로드수는 100만회를 돌파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카운셀러’가 ‘뷰티Q 100만 돌파 예상 기념 이벤트’를 소개하고 있다.

소비자 반응도 뜨겁다. 방문판매 이용자 중 37%가 뷰티Q를 사용하고 있다. 뷰티Q를 통한 구매 결제도 전체에서 18%를 차지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현재 방문판매 채널의 이용객 수는 약 250만명”이라며 “1996년 아모레 카운셀러에 직급제도를 도입한 이후 카운셀러의 성과에 따라 직급 과정별 다양한 정규·특화 교육 제도를 운용해 세일즈 역량 및 뷰티 전문성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1964년부터 방문판매를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3만6000명에 이르는 ‘카운셀러’를 통해 ‘설화수’ 등 9개 브랜드를 방문판매하고 있다.

웅진은 지난해 5월 화장품 브랜드 ‘릴리에뜨’를 선보이면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홍보와 방문판매 판촉을 결합한 ‘소셜 네트워크 직접판매’라는 포맷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 소비자가 SNS를 통해 다른 소비자에게 제품을 소개하면 가상화폐의 형태로 수수료를 받는 형식이다. 미국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이 초창기에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친구 한 명을 소개할 때마다 10달러씩 지급한 것을 본뜬 것이다. 실제로 방문해 판매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온라인 방문판매라고 할 수 있다.

LG생활건강도 방문판매원을 뷰티 전문가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 자체 모바일 및 온라인 교육시스템인 ‘엘-레몬’ 앱을 개발해 방문판매원의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문판매 특성상 우수 판매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은 2002년 방문판매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오휘’, ‘후’ 등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와 건강기능식품, 미용기기 등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는 색조 브랜드 ‘VDL’의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LG생활건강의 ‘카운슬러’는 지난해 1만9000여명으로 전년보다 약 3000명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