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협상팀 총괄반 반장 최중경 공인회계사회장
"소규모 개방경제, 대외 균형 경시하면 위험해"

1997년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되자 전문가들과 정책 실무자들은 ‘원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개방경제로 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 협상팀에서 총괄반장(재정경제부 금융협력담당관)을 맡았던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외환위기가 ‘대외 균형’을 경시한 엄청난 정책적 실수의 결과라고 강조하는 사람 중 하나다. 최 회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하며 소규모 개방경제가 된 한국이 물가와 소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내 균형에만 집중한채 경상 수지와 환율을 외면한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최 회장은 이후 2003년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일할 때 환율 급락을 막고자 외환 시장에 적극 개입해 ‘최틀러’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지난달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 회장은 “여전히 정부가 소규모 개방경제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매섭게 비판했다. 최근 거시 경제 지표가 좋지만, 대외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외환 위기는 또 온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최중경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외환위기 후 20년이 지났다. 당시를 되돌아본다면.

“IMF도, 당시 한국 협상팀도 놓친게 있다. 그 당시 외환위기 원인이 고비용, 저효율 경제라는 말이 나왔다. 기업들은 너도 나도 자동차, 반도체 등 중복으로 투자를 했고 노동 시장에서는 인건비가 올라갔다. 중복 투자와 급격하게 올라가는 임금 탓에 고비용, 저효율 경제가 됐다는 것이다.

IMF는 당시 고금리와 재정 긴축이라는 처방전을 내놨다. 외환위기 원인이 고비용, 저효율 경제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맞는 처방이다. 총 수요가 총 공급을 초과해 외채가 쌓인다고 보면 총 수요를 줄이기 위해 재정을 긴축하고 고금리를 유지하는게 맞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외환 위기의 원인은 두 개였다.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지 못했다는 걸 당시에는 놓쳤다. 그 때 당시 나도 몰랐다. OECD에 가입하면서 우리 나라 경제는 폐쇄경제에서 소규모 개방경제로 바뀌었다. 소규모 개방경제가 되면서 거시 경제 정책 중심을 대내 균형에서 대외 균형으로 옮겨야 했다. 물가와 소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경상수지와 환율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1996~1997년 경제 정책들은 ‘국민 소득 만불 달성, 물가 5% 관리’ 등 대내 균형에만 치중한 것들이었다. 실수를 한 것이다. IMF도 두 개의 원인 중 하나를 놓치고 처방을 내렸다. 당시 관료들도 외환 위기에 대해 완벽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의 약점은 무엇인가.

“소규모 개방경제가 되면 금리 정책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스스로 금리를 결정할 수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OECD에 가입하면서 정책 패러다임을 바꿨어야 했다. 한국은 단기외채를 그대로 방치했다. 물가와 소득만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경상 수지와 환율 등의 문제를 경시했다.

돈이 흐르는 방향이 갑자기 바뀌는게 외환 위기다. 당시 아시아에 들어온 돈이 갑자기 빠져나가니 문제가 생겼다. 돈이 빠져나가는 걸 막는게 환율 정책과 외채 정리다. 단기에 돈이 많이 들어오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걸 막을 수 없다. 돈이 많이 들어올 때 조심해야 한다.”

지난달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최중경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아직도 정부는 소규모 개방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거시 경제 지표가 좋다고 하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득, 물가 등 관련 경제 지표가 좋아도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대외 경제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외환 위기가 온다. 정부가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외환 보유액은 아직도 부족하다. 외환 보유액는 IMF 기준이 있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이 있는데, BIS기준은 포트폴리오 투자 일부가 빠져나갈 것도 반영한다. 그 기준이 맞다. 그 기준으로 보면 외환 보유액은 여전히 부족하다. 통화 스와프도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배추 조각 던지고 금싸라기(달러)를 갖게 되는 것을 왜 안하는 것인가.

소규모 개방 경제의 본질을 이해하면 외환을 보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지난 2005년 파생 시장에서 사놓은 달러 매수권이 있었다. 원화로 주면 자동으로 달러를 살 수 있는 권리다. 이것도 제 2선 외환 보유액이다. 그게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 효과를 봤다. 그걸로 시간을 벌고, 통화스와프로 위기를 벗어났다.”

-환율 정책은 어떤가.

“우리 나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는 밖을 볼 수 밖에 없다. 내수 경제가 수출 경제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모든 정책을 추진할 때 산업의 국제 경쟁력 측면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항상 명심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 수출이 안되면서 적자가 쌓이고, 적자가 외채로 변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반도체’ 다음 주력 산업이 없다.

지금 산업 위기가 온 배경에는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영향도 있다. 아베노믹스라는게 결국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안보 논리다. 일본을 재무장하기 위한 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환율을 조정하는 국제적으로 비신사적인 일을 했다. 그런데 우리 원화는 절상됐다. 산업이 견딜 수 있었겠나. 자동차, 조선, 기계 등 관련 기업들이 이익이 줄어들자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R&D)나 설비 투자를 할 여력이 없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환율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원화가 절상되는 걸 방치한 건 정책적 실수다. 시장을 너무 무시해도 안되지만, 시장을 너무 믿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우리 음악이 없이 남이 연주 하는 나팔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지난달 17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최중경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군사 대국이고 경제 대국이다. 또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것을 무시하면 안된다. 미국하고 잘 지내는게 모든 외교 정책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잘 못하고 있다. 한미 방위조약하고 조중 공동방위조약이 대치하면 당연히 한미 방위조약을 선택하는게 맞는 것 아닌가. 남한 주도 통일을 중국이 용인할 거라고 착각한 것 부터 잘못이다. 한국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게 중국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배치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결정권이 있는 것 처럼 생각하고 처신한 건 잘못한 것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강자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같은 약자가 강자 사이에서 그런 걸 하면 박쥐 밖에 더 되겠나. 어정쩡한 중립은 파멸을 부른다. 이러한 우리 나라의 위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현재 한미, 한중, 한일 모두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어느 한 국가와는 외교가 잘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잘못된 외교로 인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여전히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미국을 달랠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한 생각은.

“우리 나라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만 사는 세상이면 좋겠으나 경쟁을 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냉정해야 한다. 노동개혁과 재벌개혁 다 해야 한다. 특히 경직된 노동시장은 유연해져야 고용이 늘어난다. 노동시장 개혁은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서 다른 개혁을 말하는 건 맞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개혁을 일부만 하고 멈춘게 큰 문제다. 개혁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

바이칼 호수의 독수리는 보통 알을 두 개 낳는다고 한다. 일주일 시차로 알을 두개 낳는다. 그러면 태어난 새끼들이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다. 먹이가 부족해지면 큰 새끼 독수리가 작은 새끼 독수리의 머리를 쫀다. 먹이가 부족하면 두 새끼 독수리 모두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책은 냉정해야 한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일리는 있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정책의 효과가 없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론 하나만 추진하면 안된다. 산업 경쟁력이 죽는다. 나눠 먹을 파이를 만들고 분배를 해야 한다. 혁신 성장이 소득주도 성장 보다 우선 순위에 있어야 한다. 소득 주도 성장은 인내심을 갖고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