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이 격변기를 맞았다. 화석연료 대신 전기로만 달리는 차의 비중이 늘고 있고 궁극적으로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율주행 기술은 시범운행 단계까지 왔다.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해 다양한 사물과 소통하는 커넥티드카는 인간의 삶을 빠르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차를 소유 대신 공유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전략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자동차 산업의 변방에 있던 부품과 전장, ICT 기업들이 중심부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패러다임 변화기에 놓인 자동차 산업을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장면1. 은퇴한 전직 은행지점장 김모씨(65)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외출에 나섰다. 김씨가 탑승한 자동차는 스티어링휠이 없는 대신 TV 크기의 모니터, 컴퓨터와 비슷한 형태의 키보드가 배치된 자율주행차다. 차 안에서 아내와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영화를 감상하던 김씨는 갑자기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평소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던 김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탑승자의 맥박과 혈압, 체온 등에 변화가 감지되자 차량 스스로 도시 내 스마트시스템을 활용해 인근의 병원을 탐색한 뒤 비상등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다. 신속히 응급실로 달려온 자율주행차 덕분에 김씨는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장면2. 서울에 사는 박모씨(50)는 출퇴근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다양한 거래처를 다녀야 하는 소규모 사업자인 그는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 차를 운전하는 일이 많았다. 고속도로 위의 소음과 매연, 정체는 극심한 스트레스였고, 매달 쌓이는 기름값도 큰 부담이 됐다. 그러나 자율주행 차량공유서비스를 이용하는 지금은 이같은 고통에서 해방됐다. 스마트폰으로 부른 자율주행차는 가장 빠른 길을 스스로 찾아내고 같은 목적지로 가는 동승자들을 박씨의 동의 아래 함께 태우고 달린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7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현대모비스가 시연한 미래 자율주행·커넥티드카 기술 시뮬레이터

더 이상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삶이 아니다. 2020년 이후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모습들이다. 머잖은 미래에 ▲더 이상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달리는 자율주행차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커넥티드카 ▲소유 대신 공유하는 차(카셰어링) ▲순수 전기차 등 4가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우리의 생활패턴을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변화의 물결은 자동차 산업의 판도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내연기관 기술개발에만 치중했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선 생존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올해 초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17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 회장은 “지금껏 완성차 업체들이 누려온 전통적인 수익모델이 무너지고 있다”며 “다가올 5년간의 변화는 지난 50년 동안 겪었던 변화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각변동' 車산업 4가지 새 트렌드…"2020년 이후 신세계가 열린다"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차량공유, 순수 전기차 등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지각변동을 이끌 4가지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동차는 물론 정보통신기술(ICT)과 차량공유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가장 뜨거운 기술개발 경쟁이 벌어지는 분야는 자율주행차다. 메르세데스-벤츠와 GM 등 완성차업체는 물론 차량용 인공지능(AI) 선두주자인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와 세계적인 IT기업 구글 등은 사람의 손이 필요없는 레벨5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차가 이르면 2020년쯤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구글의 자율주행차 개발 자회사인 웨이모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완전자율주행차 시범주행에 나섰다. 웨이모 자율주행차는 실제 도시와 똑같이 조성된 신호등과 횡단보도, 교차로 등을 10여분간 완벽하게 주행했다. 웨이모는 혼다와 손잡고 도쿄 하계 올림픽이 열릴 2020년부터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지난달 엔비디아도 차량용 AI 컴퓨터 솔루션인 ‘드라이브 PX 페가수스’를 탑재한 자율주행 택시를 2020년부터 운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택시 개발에는 벤츠와 아우디, 도요타, 포드 등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BMW는 인텔, 모빌아이와 연합군을 형성해 현재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아이넥스트’를 2021년 출시할 계획이다. 도요타도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세운 연구소인 TRI에 2020년까지 10억달러를 투자해 차량용 AI 개발 등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열린 ‘GTC 유럽’에서 엔비디아가 공개한 자율주행 경주용 차량 ‘로보레이스 로보카’.

IC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커넥티드카 분야의 기술 경쟁도 치열하다. 차가 스스로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주행하기 위해서는 주위 차량은 물론 도시, 국가의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점에서 커넥티드카는 자율주행기술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BMW는 SK텔레콤과 함께 5세대 무선통신 기반 커넥티드카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벤츠는 지난 9월 KT와 손잡고 개발한 프리미엄 커넥티드카 서비스인 ‘메르세데스 미 커넥트’를 탑재한 더 뉴 S클래스를 국내에 출시해 맞불을 놨다.

차량공유서비스에 대한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GM은 자율주행과 차량공유로 경영전략의 중심을 바꾸고 생산과 판매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GM은 지난 3월 유럽 사업을 담당해 온 자회사 오펠을 PSA 그룹에 매각했고 인도와 남아공, 호주 시장에서도 철수했다.

이러한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한 자금과 인력은 자율주행기술 개발과 차량공유서비스 확대에 투자하고 있다. GM은 지난해 차량공유서비스업체인 리프트에 5억달러를 투자했다. 올해 초에는 별도로 차량공유서비스업체인 메이븐을 설립해 지난 5월부터 뉴욕 등 일부 도시에서 차량공유서비스에 들어갔다.

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순수 전기차 개발 열기도 뜨겁다. 지난달 포드는 2022년까지 내연기관차 개발비용을 현재 투입 규모의 3분의 1인 5억달러 수준으로 절감하고, 순수 전기차(EV)를 포함한 친환경차 개발에 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전기차 전문 제조사인 테슬라에 맞서기 위해 ‘팀 에디슨’이라는 명칭의 순수 전기차(EV) 개발팀을 출범했고 전기차 전용 라인업 확대에도 나서기로 했다.

지난 2014년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파문, 이른바 ‘디젤 게이트’로 홍역을 치렀던 독일 자동차 업계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아우디는 2025년까지 신차의 3분의 1을 전기차로 출시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지난달부터 벨기에 브뤼셀 공장에서 전기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을 시작했다. 아우디는 브뤼셀에 이어 멕시코, 헝가리를 포함한 전 세계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아우디의 모회사인 폴크스바겐그룹은 2025년까지 80개의 새로운 전기차를 내놓기로 했다. BMW도 같은 기간 25개의 전기차 모델을 투입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9월 열린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선보인 전기차 브랜드 ‘EQ’의 콘셉트카를 기반으로 소형 전기차 양산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 저무는 내연기관 완성차 대량생산 시대…불붙은 '4대 자동차 新기술' 시장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4가지 미래 신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지난 100여년간 지속돼 온 내연기관 중심의 완성차 시장이 이미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이 각국 자동차협회 발표를 종합해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연평균 9.3% 증가한 미국 자동차 생산량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연평균 0.6%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중국의 경우 6.1%에서 5.9%로, 동남아시아는 4.6%에서 4.2%로 각각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4대 자동차 신기술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소유에서 공유로, 내연기관 중심에서 친환경차로 빠르게 이동하는 가운데 4가지 기술이 서로 밀접하게 연계돼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1위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는 차량 내 장착된 센서들이 주차 공간의 크기를 탐색하고 디지털 지도에서 전송되는 정보를 통해 빈 주차 공간을 찾을 수 있는 ’커뮤니티 기반 주차’ 기술을 개발 중이다.

골드만삭스는 2015년 30억달러였던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2025년에는 960억달러로 10년만에 3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2035년이 되면 자율주행차 시장은 완성차와 ICT, 전장부품, 차량공유서비스 업체 등으로 구성돼 약 2900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2015년 2400만대 수준이던 글로벌 커넥티드카 시장은 2023년 3배인 7250만대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5월 골드만삭스는 우버와 리프트, 중국 디디추싱 등을 중심으로 한 차량공유서비스 시장 규모가 올해 360억달러에서 2030년에는 2850억달러로 8배 성장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잇따라 순수 전기차 판매만 허용하는 시점을 못박기 시작하면서 전기차 시장이 큰 폭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네덜란드는 2030년부터 각각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2040년을 내연기관차 판매의 종료 시점으로 정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5위 시장인 인도도 최근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시점을 정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 '한발 늦은' 현대차…"엔비디아 등과 협업 속도 높여야"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최근 몇 년간 앞다퉈 ICT, 차량공유서비스, 전장 업체와 합종연횡에 나서는 동안 현대·기아차는 다소 지지부진한 움직임을 보였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 신기술 개발에서 협업 대신 자체 개발에 주력한 것이다.

독자 노선을 고집하던 현대·기아차는 최근 협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글로벌 기업과 기술제휴에 한발 늦게 뛰어들었다. 지난해 미국의 IT 솔루션 업체인 시스코와 커넥티드카 기술 개발에 공동으로 나서기로 합의했다. 올해 7월에는 카카오와 함께 개발한 서버형 음성인식 기술을 제네시스 G70에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최대 인터넷서비스업체 바이두와도 커넥티드카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경쟁사들과 비교하면 현대·기아차의 기술 협업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경쟁사들은 타 업종에 속한 기업들과 ‘동맹군’ 수준으로 연합해 공동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2일 이스라엘에 내년 중 ‘오픈 이노베이션센터’를 건립해 인공지능과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2020년을 목표로 완전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선 글로벌 경쟁업체들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 상태다.

2017 CES 전시관에 마련된 DJI 부스에서 드론 시연을 관람하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이날 정 부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회동을 가졌지만, 이후 구체적인 협업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차량용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지닌 엔비디아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엔비디아는 아우디를 비롯해 벤츠, 도요타, 포드, 테슬라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완전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완벽한 자율주행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딥러닝에 필요한 무한대 수준의 연산 과정이 필요하다”며 “정상급의 인공지능 기술을 보유한 엔비디아와의 협업은 완전자율주행차 경쟁에서 한 걸음 앞서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완성차 업체가 단독으로 복잡한 인공지능 기술을 완벽하게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현대·기아차가 앞선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와의 연합전선 구축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