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호 한국무역협회회장이 24일 사의를 표명했다. 2015년 2월 취임한 김 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였다. 김 회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를 열고 최근 정부가 무엽협회 회장직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고 밝혔다. 무역협회 회장이 임기 중에 하차한 사례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회장을 역임한 구평회 회장 이후 처음이다.
김 회장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전반, 산업, 기업, 무역에 대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평소 내 생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협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왔다"며 "시간이 경과되면서 생각의 차이가 협회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사임을 권유한게 청와대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무역협회 회장 자리를 놓고 정부의 최고 책임자 모르게 결정한 적은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 정권이 아니라 정부를 위해 일해 왔고, 순수 민간 경제단체인 무엽혁회 회장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퇴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동안 (사임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며 "기회가 있으면 그만두고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정부가 회장직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전달해와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메시지를 압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 회장은 "내가 뭐가 겁나겠느냐"며 "종용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다. 난 압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무역협회라는 조직으로 봤을 때 정부와 긴밀히 일해야 하는데 가능할까 싶어서 사임하는 게 좋겠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협회의 회장 선출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점도 언급했다. 정부는 그동안 무역협회장 인선 과정에서 비공식적으로 유력 후보를 추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추천 인사는 회장단, 이사회, 총회 등 무역협회 내부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대부분 회장으로 임명돼 왔다.
그는 "역대 정부는 무역협회 회장의 선임과정에서 적정 인물을 추천해 왔고 이것이 실질적으로 회장 선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라며 "향후 회장 선임절차를 기존의 관행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회장 적임자를 영입하기 위한 제도와 절차를 발전시킬 것인지, 이 과정에서 정부와는 어떻게 협조할 것인지에 대해 회장단과 이사회를 포함한 협회가 앞으로 숙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경제를 중시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정통 경제관료 출신 인사다.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와 거리감이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 바 있다.
그는 현 정부가 시장과 많이 동 떨어져 있느냐에 대해서는 "현 정부 경제 정책에서 시장이라는 말이 나온 것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며 "가장 시장적인 것이 가장 능률적이고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시장을 언급하지 않는 경제, 기업의 경쟁력에 무관심한 경제, 기업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경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야 한국의 무역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며 "나보다 정부에 좀 더 설득력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회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정부 역할이 강화되면 강화할 수록, 억압이 거세질수록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다"라며 "시장 경제원리를 지켜나가야한다. 현 정부가 시장에 대한 고집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경환 의원과의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협회장 자리에 오른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과거 최 의원은 내 밑에서 일했던 비서로 서로 협의할 관계가 아니다"며 "날 존경하고 따랐기 때문에 선배로서 능력있는 사람을 키워줬을 뿐이다. 무역협회장 자리는 경제부총리가 정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사임은 내년 2월 열리는 무역협회 총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신임 무역협회장 취임 전까지 회장단 중 최선임인 한준호 삼천리 대표이사가 회장직을 대신한다. 김 회장은 50분가량 진행된 간담회 후 기자들과 악수한 후 "내가 사임하니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사임한 중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며 자리를 떠났다.
경제기획원 차관보, 대외경제조정실장 등을 거친 김 회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 후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 1997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고 이후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위원회 민간위원장,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