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존 입장대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대신 국내 업체의 원전 수출 및 해체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원전업계에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수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도 안 쓰는 원전을 써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인데, 경쟁 업체가 이 부분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날 정부는 시민참여단의 결정에 따라 원자력 발전소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기로 했으며, 원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을 확정했다. 로드맵에 따라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고 현재 재가동 중인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로 했다. 또 신규 원전 건설을 취소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가 발표난 이달 2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

◆ 원전 수출·해체 시장 지원한다지만…업계는 “글쎄”

정부가 발표한 탈원전 로드맵에 따르면 국내 원전은 올해 24기에서 2022년 28기로 늘어난 다음 2031년 18기, 2038년 14기 등으로 줄게 된다. 새로 지을 예정이었던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등 원전 6기를 백지화하고 고리 2~4호기, 월성 2~4호기, 한빛 1~4호기, 한울 1~4호기 등 노후 원전 14기는 설계 수명이 끝나면 연장이 금지된다.

정부는 원전 산업이 붕괴하지 않도록 해외 수출 및 해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해외 원전 해체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동남권 원전해체연구소 설립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하고, 신규 원전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영국 등과 정상회담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업계는 정부의 원전 해체·수출시장 진출 지원 계획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추정한 원전 해체시장 규모는 2050년까지 약 1000조원 규모다. 시장은 크지만, 국내 업체의 원전 해체 기술력은 선진국의 60~70% 수준에 불과해 시장 진입이 쉽지 않다. 또 국내 업체는 지금까지 원전을 해체해본 경험이 없다. 지난 6월에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가 첫 해체 대상이다. 정부는 고리 1호기를 해체하면서 축적한 기술, 경험으로 향후 수출에 나설 계획이다.

원전 건설 기술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수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원전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위험해서 안 쓰지만, 너희는 쓰라’고 했을 때, 과연 살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남 영광군 백수읍 일대에 있는 태양열 집열판과 풍력 발전기.

◆ LNG, 태양광 업체는 반사이익 기대

정부는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을 줄이는 대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재 7%에서 2030년까지 20%로 늘리기로 했다. 또 현재 20% 안팎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도 2030년에 37%까지 늘어나게 된다.

재생에너지 및 LNG 발전 업체는 정부 방침에 기대감을 표시하면서도 당장 큰 수혜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LNG의 경우 발전 단가가 원전이나 석탄보다 비싸기 때문에 당장 가동률을 늘릴 수 없고 태양광이나 풍력도 부지 마련, 환경 평가, 주민 동의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다.

에너지 업계는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이 국민의 원전 사고 불안감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손실을 야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수원은 운영허가 만료일이 2022년 11월 20일인 월성 1호기를 내년 1월에 정지할 경우 약 1조4991억원의 전력 판매 기회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2030년에 원전 발전 비중이 현재 30% 수준에서 18%로 줄고 발전 단가가 비싼 LNG·태양광·풍력 등의 비중이 늘면 전기요금도 오르게 된다. 정부는 내년에 산업용 전기요금, 2019년 이후에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할 방침이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신고리공론화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경제적 비용까지 시민참여단에 자세히 설명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 비용은 향후 20년간 230조원 이상이고, 이를 부담하기 위해 2024년에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금보다 21.84%, 주택용은 19.26% 오를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