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스를 한 번 들여놔 봤지만 비싼 가격에 재고만 남아 제가 다 마셨어요. 수입맥주는 할인행사 없인 안 나가요.”

지난 18일 저녁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 야심한 밤 맥주와 안주를 구매하는 ‘혼맥족’의 발길이 이어졌다. 맥주 냉장고를 별도로 마련한 이곳 편의점엔 30여가지 수입맥주가 비치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출시된 일본 프리미엄 맥주 ‘에비스’는 보이지 않았다. “에비스 맥주는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편의점주는 “4개 묶음 1만원에 판매하는 수입 맥주가 허다한데 굳이 개당 4700원인 에비스를 찾는 소비자가 있겠느냐”며 “매대도 부족해 한 번 들여놓은 이후엔 발주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등 일본 프리미엄 맥주가 ‘4개 만원’ 할인 판매되고 있다.

‘프리미엄 맥주’를 기치로 내걸며 지난달 초 국내에 출시된 일본 에비스 맥주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을 위해 내세운 고가 정책이 통하지 않고 있다. 유통업계 일각에선 에비스가 조만간 할인 행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개당 4700원 고가 정책 독 됐나…”판매량 동급 일본 맥주 대비 10% 수준”

에비스는 1890년 탄생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다. 해외에 공식 판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출시 당시 SNS를 중심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인기 캐릭터가 즐겨 마시는 맥주로도 유명하다.

에비스 맥주를 수입 유통·판매하는 엠즈베버리지의 이종완 대표이사는 출시 당시 “판매량으로 승부하기보다는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고가 정책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다. ‘수입맥주 4캔 만원’ 할인행사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에비스는 350ml 기준 3900원, 500ml 기준 47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수입맥주 판매가 주로 이뤄지는 편의점에서 에비스를 찾기는 쉽지 않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한 수입맥주도 할인행사에서 제외하면 판매량이 확연히 줄어든다”며 “편의점 업주들이 재고를 우려해 할인행사 제외 품목은 발주를 꺼린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상황도 비슷하다. 유통업체들은 특정 제품의 매출이나 판매량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진 않지만, 에비스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지 않다는 공통된 반응을 내놨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가장 수요가 많은 500ml 기준으로 동급의 일본 맥주에 비해 판매량이 10% 수준”이라며 “할인 행사에 포함되지 않는 제품들과 비교해도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 할인 행사 기반으로 성장한 국내 수입맥주 시장…에비스 할인 동참 가능성도

수입 맥주는 최근 공격적인 할인 행사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 편의점 맥주 판매량 중 수입맥주 비중은 2013년 20%를 밑돌았지만 올해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15년 국내 최초로 4캔 구매시 1만원 행사를 상시화한 세븐일레븐의 수입맥주 매출 증가율은 2015년 77.6%, 2016년 44.1%, 올해들어 9월까지 43.6%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산맥주 매출은 각각 4.4%, 3.9%, 4%씩 신장하는데 그쳤다. 편의점 업계 1, 2위 업체인 CU(씨유)와 GS25의 수입맥주 매출 신장세 또한 최근 3년간 40%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에비스 맥주.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맥주 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엔 ‘4캔 만원’으로 대표되는 대형마트·편의점 할인 행사가 있었다”며 “에비스가 프리미엄 맥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맥주들과 가격차이가 크진 않은데 국내에서 지나친 고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에비스의 일본 현지 가격은 500ml 기준 260엔(2600원) 수준이다.

유통업계 일각에선 에비스가 고가 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에비스 최초 발매시 할인 판매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무기한 고가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며 “당초 예상보다 시장 반응이 차가운 만큼 빠르면 올해 말, 늦으면 내년 초엔 할인 행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고 전했다.

에비스를 수입 판매하는 엠즈베버리지 관계자는 “아직 출시 한달여밖에 되지 않아 시장 반응을 속단하긴 이르다”며 “가격 인하를 검토하고 있진 않지만, 할인을 제외한 각종 프로모션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엠즈베버리지는 최근 대형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에 에비스 납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