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혁명이 인류를 ‘신세계(新世界)’로 안내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가 모든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5세대 통신이 현실과 가상현실(VR)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인간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도 진화를 거듭한다. 200억개가 넘는 사물의 연결, 급속한 클라우드화, 일상화된 인공지능, 가상화폐와 가상현실의 보편화 등이 특징인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조선비즈 특별취재팀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4차 산업 혁명이 이끄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 이른바 ‘매트릭스(matrix)’로 불리는 세계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진화의 방향을 알면 우리의 대응 방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 참고로 이번 기사는 ‘로그인 투 매트릭스’ 시리즈의 8번째 연재 기사이며 제2부 ‘극단의 사회 분리'편의 4번째 연재 기사다. 독자들이 이전 기사와 연결해 볼 수 있도록 숫자 ⑧을 붙였다.

⑧ ‘신(新) 러다이트’를 막아라...실리콘밸리가 앞장서는 기본소득

“누구나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동이나 비평가가 되지 않더라도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물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가축을 기르고,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는 비평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1840년대에 그의 저서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에서 이같은 구절을 써넣었다. 177년이 흐른 지금 마르스크의 메시지는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미국, 그 중에서도 첨단 기술로 전 세계를 호령하는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 등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면서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UBI)’ 실험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3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로보월드 2017에서 로보티즈(ROBOTIS)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전신돼 있다.

기본소득이란 정부가 국민에게 매달 조건 없이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 충분한 돈을 지급하는 제도다. 수입이 많든 적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인공지능(AI)과 로봇, 컴퓨터의 급속한 발전 등이 일자리를 위협하자 부(富)를 재분배하자는 차원에서 기본 소득을 논의하고 있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기본소득(특히 무상현금지원)을 두고 “공산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이라고 일컬었다.

◆ 실리콘밸리의 기본 소득 실험

에어비앤비(Airbnb), 드롭박스(DropBox)를 발굴한 실리콘밸리 창업 지원기업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샘 올트먼(Sam Altman)이 설립한 오클랜드의 비영리 단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시에서 100가구를 선정해 기본소득 실험을 하고 있다. 3~5년간 1000명의 저소득층과 중도층의 실험 집단에게는 1000달러를 주고, 2000명의 통제 집단에게는 50달러를 제공해 비교하는 것이다.

샘 알트먼 Y콤비네이터 CEO

올트먼은 개인적인 실험도 진행 중이다. 그는 지난해 1월 ‘경제보장프로젝트(Economic Security Project)’에 착수했다. 경제학자, 정책 전문가, 테크 리더 등이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기본소득 실험과 연구에 2년간 1000만달러(112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스탠퍼드대학도 기본소득실험실(Basic Income Lab)을 만드는 등 그의 아이디어에 동참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기본 소득 실험은 AI와 자동화로 인간이 대량 실직 상태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올트먼은 지난 5월 “일자리는 점점 사라질 것”이라며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집이나 음식을 구하기 위한 기본적인 비용을 걱정하지 않도록 기본소득제도가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머스크는 지난 2월 두바이에서 열린 '월드거버먼트서밋(World Government Summit)'에서 "로봇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지 못하는 과제는 점점 더 줄어든다”면서 “정부가 국민에게 임금을 주는 기본 소득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다만 AI와 자동화로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7월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알래스카의 정부 보조금(Alaska’s basic income the Permanent Fund Dividend)을 높게 평가한다는 글을 남겼다. 알래스카주는 석유 판매 수익 중 일부를 연말에 주민에게 지급한다. 지난해 연말에는 1022달러(약 110만원)를 지급했다.

저커버그는 “알래스카의 사회적 안전망 프로그램이 미국 다른 주에도 좋은 교훈을 제공한다(Alaska's social safety net programs are in a way that provides some good lessons for the rest of our country)”고 썼다. 미국 CNBC 등 주요 외신은 그의 발언을 놓고 저커버그가 기본소득제를 옹호한다고 풀이했다.

◆ ‘신(新) 러다이트 운동을 막아라’ 실리콘밸리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

원래 기본 소득 아이디어는 효과적으로 빈곤을 퇴치할 수 없을까, 빈곤층에게 자립심을 심어줄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나왔다. 2008년 우간다 정부의 실험, 2009년 영국 런던의 노숙자 실험이 대표적이다.

2008년 우간다 정부는 16~35세 1만2000여명에게 약 400달러씩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수혜자들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됐다. 5년이 지난 후 수혜자들은 자신의 교육과 창업에 정부지원금을 투자해 자신들의 소득을 약 50%가량 증가시켰다.

2009년 영국 런던에서는 퇴역 군인 노숙자 13명에게 연 3000만 파운드를 기본 소득으로 제공했다.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면 이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 노숙자는 상당히 검소해서 1년 동안 소비한 금액은 평균 800만파운드에 불과했다. 보통 노숙자 13명에게 들어가는 경찰 동원 경비, 법정 비용, 무료 급식 사회복지 서비스 등 비용(약 40만 파운드 추정)을 크게 감소시킨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기본 소득 실험도 빈곤층 퇴치를 위한 기본 소득 개념과 맞닿아 있다. ‘테크노 엘리트'들이 기술 발전에 따른 대량 실직 사태와 빈곤층의 확대에 염두에 두고 신(新)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을 방지하기 위해 기본 소득 실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교한 기본소득 정책이 기술을 개발해 이윤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 기업가와 기계와 로봇의 발전으로 직장을 잃게 될 비숙련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는 ‘완충 지대’를 만들 것으로 본다.

러다이트 운동이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영국의 공장지대에서 일어난 노동자에 의한 기계파괴운동으로, 노동자들은 현대식 대형기계와 임금을 저하하는 기계를 파괴만 하면 종래의 좋은 노동조건이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 기계로 인해 숙련공의 가치가 급속하게 낮아지면서 일부 장인을 제외한 나머지 수공업자들은 대거 공장문을 닫고 노동자로 전락하며 몰락했다.

러다이트 운동 그림

미국 온라인매체 복스(VOX)의 딜런 매튜 기자는 기본소득을 ‘로봇 시대를 위한 (주류들의) 보험 정책’이라고 표현했다. IT 발달로 심화하는 기술적 실업과 이에 따른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을 막기 위해 실리콘밸리가 방어적이고 선제적으로 취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올트먼 Y콤비네이터 CEO도 이런 지적을 인정하며 “일자리가 사라지는 ‘변화의 시기’에는 (시민들이) 상당히 힘들 수 있기 때문에 기본 소득으로 변화의 시기를 순탄하게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소비자가 끊임없이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살 수 있게 하는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극소수의 엘리트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이 소득이 준다면, 실리콘밸리에서 만드는 최첨단의 제품에 대한 수요도 크게 감소하게 된다.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는 “실리콘밸리는 그들의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훼손하는 기본적인 계산을 마쳤다”며 “모든 업무를 자동화한다면 누가 서비스를 구매하며 돈 없는 소비자가 무슨 행동을 하겠나”고 진단했다. 이 신문은 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를 언급하며 “저커버그 최근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의 사업(페이스북)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죄책감이 아닌 경제적인 비전에 관한 결과”라고 말했다.

◆ “부정적으로만 보지마라”…‘여가 혁명’은 온다는 테크노 막시스트들

실리콘밸리에서는 AI와 로봇, 자동화로 인간은 놀고먹는 새 유토피아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과 논리를 가리켜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이하 화려한 공산주의)’ 또는 ‘테크노 막시스트(Techno-Marxist)’라고 지칭한다. 기술 발전에 따라 자본주의 생산력이 높아져 모두 고급스러운 생활을 모두 같이 유지할 수 있다는 뜻에서 ‘화려한(Luxury)’과 ‘테크노(Techno)’라는 단어가 붙었다.

화려한 공산주의자들은 생필품이나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노동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라지고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유토피아(이상향)’ 사회가 펼쳐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을 보는 입장은 크게 ①소득재분배와 ②복지제도 일원화, ③탈(脫) 임금노동으로 나눌 수 있는데, 화려한 공산주의자들은 ‘탈 임금노동’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다.

화려한 공산주의자는 자동화 수단을 가진 소수와 일자리를 잃게 된 다수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대신, 자동화를 받아들이고 ‘같은 돈’을 받아 같이 사치를 누리자고 주장한다. 기술 엘리트들은 기술 고도화에 따른 자동화를 완전히 수용하고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탈 임금노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나오는 화려한 공산주의가 성립하려면 AI와 로봇, 기계의 발전에 이어 임금노동을 벗어나 ‘극대화된 여가’가 사회에서 환영받아야 한다. 임금노동이 더 이상 신격화되지 않고 기계가 사람들의 노동을 대신하는 것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으로 탈 임금 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류가 임금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되지는 않더라도, 일주일에 50~60시간을 넘는 노동 시간을 자동화 덕에 10시간 내외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그린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옹호론자들은 ‘여가가 넘쳐나는 미래’에 대한 전망은 150여 년 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한다. 정치가이자 과학자, 저술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하면 충분하다”고 했으며,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케인스도 1930년쯤 미래를 “인류는 2030년이면 주 15시간만 일할 것이고 무한한 여가시간을 보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특히 고전적 자유주의의 아버지인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더욱 증가하는 부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식은 여가를 늘리는 것”이라며 “기술은 근로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용도로 쓰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러시아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 바실리 레온티예프는 1983년 “가장 중요하나 생산 요소로서 인간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농업 생산에서 말의 역할이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나중에 트랙터가 도입되면서 사라진 것과 같은 이치”라고 미래를 내다봤다.

1890년대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고대 그리스가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문명을 꽃피운 것처럼 “세계의 미래는 기계 노예제도에 의존한다”고 까지 이야기했다. 현재 실리콘밸리서 주장하는 화려한 공산주의와 가장 가까운 발언이다.

앞서 언급한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근로시간이 줄면, 그야말로 ‘유토피아’가 펼쳐진다고 주장한다. 업무에 시달리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기후변화와 불평등까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태발자국(한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자원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과 배출한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땅의 면적으로 환산한 것)이 적어져 21세기 동안 배출할 이산화탄소의 양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그는 “주당 근로시간이 가장 긴 나라일수록 빈부격차가 크다”면서 “조만간 기계가 모든 작업을 담당해 사람들은 예술과 드라마와 춤, 즉 상상이 만들어낸 삶에 몰입함으로써 여가를 풍부하게 즐길 기회가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