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해체로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등 미전실 주요 임원들이 물러난 데 이어 권오현 삼성전자(005930)부회장까지 내년 3월 임기를 끝으로 사퇴하기로 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시대가 본격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지성 전 부회장 등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임명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면서 이 부회장이 임명한 사람들의 입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부회장 구속 이후 삼성그룹을 사실상 대표했던 권 부회장의 전격적인 퇴진 선언으로 세대교체 등 삼성그룹에 인사태풍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이 심장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지면서 2014년부터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는 소폭에 그쳤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사장단 인사 자체를 건너뛰었다. 재계에서는 비록 이 부회장이 옥중에 있긴 하지만 올해 말 임원 인사 및 조직 개편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 색채와 철학이 두드러지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 점점 줄어드는 '이건희 사람'들
이재용 부회장은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사실상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지만, 부친의 뜻을 존중해 이 회장이 임명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크게 변화를 주지 않았다. 부친이 임명한 사람들을 교체하는 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고, 자칫 삼성그룹의 회장 역할을 하는 것으로 외부에 비칠 수 있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2014년과 2015년 임원 인사는 소폭에 그쳤다.
이 부회장이 부친이 만든 조직에 손을 댄건 지난 2월 미전실 해체가 사실상 처음이다. 미전실은 그룹의 대외 업무도 총괄했는데, 국정농단 사태와 연관됐다는 의혹이 일면서 사회적으로 부정적 여론이 강했다. 이 부회장은 미전실을 해체했고, 이 과정에서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이 물러났다.
최 전 부회장은 윤종용 전 부회장, 이윤우 전 부회장과 함께 삼성전자의 부흥을 이끌었던 인물로, 이건희 회장이 그룹의 2인자로 낙점할 만큼 신뢰했다. 장 전 사장도 이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기획력이 뛰어나 '삼성의 제갈량'으로 불리기도 했다.
권오현 부회장은 조직의 쇄신을 촉구하면서 스스로 물러났다. 이건희 회장은 2012년 6월 최지성 당시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미전실 최고책임자로 임명하면서 권 부회장을 최 부회장의 후임으로 앉혔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 사장이었다.
삼성 내에는 이건희 회장이 뽑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삼성전자의 신종균 IM(IT·모바일)부문장과 윤부근 CE(소비자가전)부문장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2013년 3월부터 각 부문을 이끌고 있으며 임기는 2019년 3월까지다.
◆ 이재용 색깔, 본격적으로 나타날까
재계에서는 당초 작년 또는 올해부터 이 부회장이 본인의 경영 철학을 구현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이 부회장이 작년 9월에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른 것도 경영 전면에 나서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이 부회장은 이사회 구성도 대폭 바꿔 이사회 중심의 시스템을 갖추려는 시도도 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이슈가 불거지면서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은 최소한으로 축소됐고 이 부회장이 올해 2월 구속되면서 자신의 색깔을 보여줄 기회를 놓쳤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작년 9월에 등기이사직에 오르면서 의욕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려고 했으나 국정농단 사태로 발목이 잡혔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아직 재판을 받고 있지만, 올해 단행될 인사부터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강하게 담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이른바 '이재용 사람'들이 주요 보직을 맡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인사 폭이 커질지도 관심이다. 당장 권오현 부회장의 사퇴로 후속 인사가 불가피해졌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 중이지만, 인사와 조직 개편이 늦어지면서 내부 활력이 떨어지고 긴장감이 느슨해졌다는 목소리가 크다.
권 부회장은 반도체 등 삼성전자 부품부문(DS) 부문장과 함께 이사회 의장,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현재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김기남 사장이 DS부문장을 맡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삼성은 지난 2008년 '비자금 특검' 때도 대규모 인사로 조직의 분위기를 쇄신한 바 있다. 당시 60대 임원들이 대거 물러나고 50대가 대거 사장으로 승진했다. 윤부근 부문장과 장충기 전 차장도 당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 관계자는 "미전실 해체 이후 계열사의 임원 인사는 계열사 이사회가 주도적으로 한다"며 "권 부회장이 사퇴를 선언했지만, 인사 시기나 규모 등은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