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로 움직이는 1인용 이동수단을 뜻하는 '퍼스널 모빌리티(Personal Mobility)' 시장의 선도 기업 중국 '나인봇' 이야기다. 톈진(天津)에 본사를 둔 나인봇은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가오루펑(高祿峰)을 비롯한 이공계 명문 베이항대 출신들이 모여 2013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지금은 업계 선도 기업으로 불리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나인봇'이란 이름 앞에는 언제나 '짝퉁 세그웨이'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세그웨이'는 2001년 미국 발명가 딘 카멘이 개발해 출시한 원조 1인용 전동휠이다. 두 바퀴와 손잡이로 이뤄졌으며, 자동 균형 제어장치인 자이로스코프 센서가 탑재되어 전후좌우 방향을 바꿔도 오뚝이처럼 균형을 유지한다.

나인봇 세그웨이에 올라탄 중국 공안요원들이 텐안먼(天安門) 광장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몸을 앞으로 숙이면 앞으로, 뒤로 젖히면 후진해 운전이랄 것도 없다. 자이로스코프는 요즘 스마트폰에 들어가 있어 대중적인 기술이 됐지만, 당시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한참 전이었다.

이 때문에 출시 당시 개인용 컴퓨터(PC)에 비견되는 획기적인 제품으로 주목받으면서 찬사가 쏟아졌다. 카멘이 머지않아 빌 게이츠를 넘어서는 억만장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투자금도 몰려들었다. 투자자 중에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도 있었다. 카멘은 "세그웨이는 역사상 매출 10억달러(약 1조1280억원)를 가장 빨리 달성하는 회사가 될 것이며 출시 1년 만에 연 50만 대 판매를 달성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대중화는 쉽지 않았다. 크기가 커서 이동 중 세워둘 곳을 찾기 쉽지 않았고 차에 실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1000만원이 넘는 비싼 가격이 부담이었다.

안전 문제도 있었다. 배터리가 약해지면 쉽게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2003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세그웨이를 타다가 넘어지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회사는 결국 2009년 영국의 사업가 지미 헤셀든에게 매각됐는데, 이듬해 헤셀든이 세그웨이를 타다가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나인봇-C(Comfort) 화이트 제품.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 1인용 전동휠 시장에 뛰어든 가오루펑은 창업과 동시에 세그웨이와 비슷한 제품을 200만원대에 선보이면서 매년 400%가 넘는 매출 성장을 이어갔다.

위기감을 느낀 세그웨이는 2014년 10월 나인봇이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미국 수입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나인봇의 대응은 '카피캣'의 오명을 쓴 기업답지 않게 독창적이고 화끈했다. 소송을 건 '원조' 세그웨이를 이듬해 아예 인수해버린 것. 인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나인봇은 인수 후에도 세그웨이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다. 세그웨이는 고가, 나인봇은 중저가 브랜드다.

인수 당시 설립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던 신생 기업 나인봇이 세그웨이를 인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 스마트기기 제조사 샤오미(小米)의 도움이 컸다. 샤오미는 나인봇의 최대 전략적 투자자다.

레이쥔(雷軍) 샤오미 회장은 일찌감치 나인봇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2014년 10월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차이나와 함께 나인봇에 8000만달러(약 902억원)를 투자했다. 이후 나인봇은 샤오미의 유통망과 마케팅 인프라를 활용하며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인봇은 샤오미와 함께 대당 1999위안(약 34만원)에 불과한 '나인봇 미니'를 출시해 화제가 됐다. 앞서 출시된 '나인봇-E'가 1만4900위안(약 252만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나인봇 미니의 최대 속도는 시속 16㎞이며 무게가 12.8㎏으로 차량 트렁크에 넣고 다닐 수 있다. 또한 한 번 충전으로 22㎞까지 주행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원격 조종도 가능하다. 나인봇은 국내 수입사들을 통해 한 바퀴 또는 두 바퀴형 전동휠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최고 인기 모델은 나인봇 미니의 고급 모델인 '나인봇 미니 프로'다. 한 번 충전으로 30㎞를 주행할 수 있다. 무게는 약 8㎏, 최고 속도는 시속 20㎞다. 가격은 60만~70만원대다.

나인봇 외에도 자이로드론과 인벤티스트, 아이오호크 등이 유사한 제품을 선보이면서 2015년 4000억원 규모였던 퍼스널 모빌리티 시장은 현재 2조원대 규모로 성장했다. 그중 80%를 중국 제품이 장악하고 있다.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는 환경 규제와 1~2인 가구의 확대 등으로 2030년에는 관련 시장이 26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자이로드론은 2년 전 인기 예능프로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정준하가 타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무게 10㎏의 손잡이가 없는 전동보드 형태로 양발에 있는 자이로센서가 자세에 따라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에 양손에 물건을 든 상태로도 주행할 수 있다. 작동 방법도 간단하다. 발끝을 살짝 굽이면 앞으로 나아가고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울여 방향을 잡는다. 미국 킥보드 전문회사인 인벤티스트는 2014년 스케이트보드 형태로 휴대가 간편한 '호버트랙스'를 출시했다.

나인봇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가오루펑.

나인봇 창업자 가오루펑(38)은 2011년 유럽 여행 도중 세그웨이를 보고 감명받아 동료들과 나인봇을 창업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자동화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IT기업에 입사해 모바일 인터넷, 미디어 광고, 핀테크 등 다양한 인터넷 기반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가오루펑은 2011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 동창들을 모아 스마트 퍼스널 모빌리티 제품 개발에 나섰다. 2012년 딩리롄허과학기술유한공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회사를 설립한 후 2013년 나인봇이라는 회사를 정식 출범시켰다.

그의 다음 목표는 퍼스널 모빌리티 관련 기술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해 로봇 사업을 키우는 것이다. 나인봇은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 전시회 CES에서 인텔과 합작으로 만든 '루모(Lumo)'라는 이름의 로봇을 선보였다. 세그웨이와 로봇을 결합한 루모는 행사 동안 무인주차 안내원 역할을 담당했다.

루모는 아직 개발 단계에 있다. 나인봇은 여러 기업과 협업을 통해 기술 향상을 촉진하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보급하기 위해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을 개방적인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