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신성장 동력
첨단 의료
대구첨단의료복합단지… 일본도 벤치마킹 위해 방문
비수도권 최초로 외국인 의료 관광객 2만명 넘어서

지난 5월, 일본 시즈오카현의 경제산업부 공무원들이 한국을 찾았다. 의료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한국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다. 시즈오카현은 2001년부터 ‘파르마밸리’라는 의료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는데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목적지는 서울이나 인천 같은 수도권이 아니었다. 시즈오카현 공무원들이 향한 곳은 대구 시내에서도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대구첨복단지)였다.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내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전자파 체임버에서 연구원들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대구첨복단지가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2013년 이후 민간 기술이전만 4건이 있습니다. 이렇게 단기간에 성과를 낸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시즈오카현에서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시즈오카현도 의료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는데 대구첨복단지를 벤치마킹하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대구첨복단지의 운영을 맡고 있는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DGMIF)의 송인 선임은 지난 9월 초 대구첨복단지를 방문한 기자를 안내하며 그간의 성과를 설명했다. 지난 2009년 정부는 대구와 오송을 첨복단지로 선정했고, 대구첨복단지는 2013년 주요 시설 공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갔다. 대구첨복단지는 신약개발지원센터, 첨단의료기기 개발지원센터, 실험동물센터, 의약생산센터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입주 기관이나 기업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민간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비하기 힘든 첨단 장비를 갖추고 있어 의료산업 분야의 중소, 벤처기업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설을 운영한 지 4년 만에 대구첨복단지에 입주한 연구기관이나 민간기업은 86곳에 이른다.

◆ 의료 벤처 지원 위해 첨단 연구장비 갖춰
대구첨복단지의 최대 성과는 민간 기술이전이다. 첫 기술이전은 2015년 12월에 이뤄졌다. 맥박이나 심전도· 혈압·체온 같은 생체정보를 측정해서 전송하는 시스템을 DGMIF의 연구진이 개발해 민간기업인 케이에스테크에 이전했다. 선급기술료 1000만원에 매출액 50억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6년 동안 3%를 받는 조건이었다. 대구첨복단지가 가동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일궈낸 성과였다. 이후 DGMIF는 난치성 미분화 갑상선암 치료 후보물질, 내성 급성 백혈병 표적 치료제 후보물질, 뇌암 줄기세포 표적치료제 등 모두 4건의 기술을 개발해 입주 연구기관이나 민간기업에 이전했다.

이외에도 DGMIF는 입주 기업들과 공동으로 다양한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악성 빈혈·치매·백혈병·신장암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신약 후보물질이 대구첨복단지에서 개발 중이다. 이제상 DGMIF 팀장은 “입주 기업이 신약이나 의료기기에 대한 아이디어만 가져오면 연구·개발, 임상 실험, 상용화까지 대구첨복단지 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며 “신약 개발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대구첨복단지가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대구시에 의료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구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14명으로 전국 평균(2.74명)을 웃돈다. 간호사 수는 전국 3위, 인구 10만명당 의료장비 수도 전국 3위다. 의료서비스 자체 충족률은 89.3%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대구에는 12개의 종합병원을 비롯해 3500여개의 의료기관이 모여 있다. 경상북도까지 경계선을 넓히면 5개의 의과대학과 2개의 한의과대학, 4개의 약학대학이 있다. 의료산업 육성에 필요한 전문인력이 지역 내에서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DGMIF에서 일하는 200여명 가운데 160여명이 연구 인력이고, 이 가운데 60% 정도는 박사급이다.

의과대학은 단순히 인력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대구첨복단지 입주 기관이나 기업과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DGMIF가 2016년 민간에 기술 이전한 미분화 갑상선암 치료용 신약 후보물질도 DGMIF 연구진과 경북대병원 선도형 신약개발사업단이 공동으로 연구해 개발한 결과물이었다.

대구는 오래전부터 섬유를 중심으로 한 기계 산업이 발달해 의료기기 산업을 육성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의료기기와 섬유기계는 고도의 정밀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다. 대구 지역의 의료기기 산업 연평균 성장률은 17.4%로 같은 기간(2000~2014년) 전국 평균인 9.3%의 두 배에 달한다.

◆ 카자흐스탄에서도 대구로 의료 관광
최근에는 의료 관광이나 연수를 위해 대구를 찾는 외국인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대구를 찾은 외국인 의료 관광객은 2만1100명으로 수도권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2만명을 넘었다. 2012년 7117명에서 4년 만에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외국인 의료 관광객의 국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카자흐스탄의 한 부부가 의료 관광을 위해 대구를 찾았다. 이들은 일주일간 대구에 머물면서 종합건강검진과 피부미용 시술 등을 받았다. 대구시와 카자흐스탄 은행인 알파뱅크가 업무협약을 통해 만든 ‘메디시티 대구 의료관광 제휴카드’를 사용해 대구를 찾은 첫 관광객이었다. 사드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대구시는 러시아·카자흐스탄 같은 국가들로 의료 관광객 유치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덕분에 2015년에 383명에 불과했던 러시아 및 CIS(독립국가연합) 지역 의료 관광객 수는 지난해 1862명으로 늘었다.

한국의 의료 기술을 배우러 대구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달 중순에는 바레인 국가보건최고위원회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 알칼리파 의장을 비롯한 바레인 의료정책 관계자들이 경북대병원을 찾았다. 이들은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 건강증진센터 등을 둘러보며 한국과 바레인의 의료 분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대구는 이런 수요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 보고 외국의 의료 인력을 교육할 수 있는 연수원인 ‘케이메디컬(K-Medical)’을 건립 중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올해는 대구첨복단지를 기초연구 중심에서 응용, 임상, 인력양성 등 사업화 중심으로 전환해 기업 지원 역량을 더 확대할 것”이라며 “의료관광객 2만5000명 유치 등을 위해 대구의 의료산업 역량을 계속해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플러스포인트
유니메딕스, 약물주입장치 오차 획기적 개선

유니메딕스와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이 공동으로 개발한 스마트 약물주입장치

의료기기 전문기업 유니메딕스는 지난 2012년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대구첨복단지)와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연구소를 대구로 옮겼다. 본사는 여전히 서울에 있지만 연구시설이 중요한 의료기기 전문기업의 입장에서 회사의 중추를 대구로 옮긴 셈이다.

2005년 회사 설립 이후 의료용 고정 밴드(Multifix)를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던 유니메딕스는 연구소 대구 이전을 계기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첫 성과는 지난해 나왔다. 유니메딕스는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DGMIF) 연구진과 공동으로 ‘스마트 약물주입장치’를 개발했다. 병원의 응급의료센터나 중환자실 등에서 사용하는 기존 약물주입장치는 약물 주입량의 오차가 5% 정도였다. 유니메딕스가 새로 개발한 장치는 오차를 3%로 줄였고, 약물 주입관이 막히는 위험도 더 빠르게 탐지할 수 있게 개선했다. DGMIF 관계자는 “국내 약물주입기 시장은 수입 제품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며 “이 제품이 약물주입기 시장 국산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