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이 결국 대장주 셀트리온을 유가증권시장에 빼앗기게 됐다. 셀트리온은 29일 오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코스피 이전상장에 관한 안건을 결의했다. 셀트리온은 한국거래소 심사 등을 거쳐 내년 초 코스닥을 완전히 떠날 예정이다.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지 9년 만의 일이다.
코스닥 관계자들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라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 7월 시가총액 2위 카카오가 코스닥시장을 떠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총 1위 셀트리온마저 코스피 이전상장을 택했기 때문이다. 현재 셀트리온은 코스닥시장 전체 시총의 약 8%를 차지하고 있다.
◆ 코스닥 시총의 7.79% 차지…내년 초 코스피로
서정진 회장이 2002년 인천 송도에서 설립한 셀트리온(068270)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전문기업이다. 대표 제품으로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와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 유방암 치료제 '허쥬마' 등이 있다. 이중 램시마는 유럽시장에서 시장점유율 42%(올해 1분기 기준)를 기록 중이다.
셀트리온은 2008년 8월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 2017년 9월 29일 기준 이 회사 시총은 17조2425억원이다. 코스닥 전체 상장사 시총(221조2543억원)의 7.79%에 해당하는 규모다. 시총 2위 셀트리온헬스케어(6조9574억원)와 비교해도 2.5배가량 더 크다. 셀트리온이 빠져나가면 코스닥시장은 시총 200조원 문턱을 간신히 유지하게 된다.
이날 임시 주총에서는 의결권을 보유한 발행주식 총수의 44.7%가 코스피시장 이전에 찬성표를 던졌다. 셀트리온은 오는 10월 중 코스닥 상장폐지를 신청한 뒤 주관사를 선정해 연말쯤 유가증권시장 상장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김형기 셀트리온 사장은 "주관사를 선정하면 예비심사청구서 제출까지 보통 2개월이 걸리고 심사에는 45일이 걸린다"며 "코스피 이전상장 시기는 2018년 1~2월쯤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셀트리온은 SK이노베이션(096770)에 이어 시총 17위에 오를 전망이다.
앞서 거래소는 셀트리온의 이탈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코스피200 지수에 코스닥 대형주를 포함시키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거래소 내부 의견 차가 커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거래소는 코스피와 코스닥 우량주를 합친 새 통합지수를 연내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셀트리온 주주들은 끝내 코스피 이전상장 카드를 택했다.
이번 셀트리온 임시 주총을 지켜본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들은 대체로 "허망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코스닥이 갖고 있는 '2부 리그' 이미지가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국내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다른 기업 의사결정에 참견할 입장은 아니지만, 코스닥 대표주인 셀트리온이 떠난다고 하니 서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코스피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네이버·카카오도 코스닥 떠나…"2부리그 이미지 우려"
사실 코스닥 대형 상장사의 코스피 이전상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셀트리온이 증시에 입성했던 2008년에는 네이버(NAVER(035420))와 아시아나항공(020560), LG유플러스(032640)가 코스닥시장을 떠나 유가증권시장으로 둥지를 옮겼다.
이후로도 키움증권(039490)(2009년), 신세계푸드(031440)(2010년), 무학(033920)(2010년), 동양시스템즈(2010년), 하나투어(039130)(2011년), 동서(026960)(2016년), 한국토지신탁(034830)(2016년) 등이 코스닥시장을 떠났다.
가장 최근에는 코스닥 시총 2위 기업이었던 카카오(035720)가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상장했다. 코스피 이전을 공식화한 지난 5월 카카오 시총은 6조4000억원 수준이었는데, 현재는 9조7000억원으로 3조원 이상 불어났다.
코스피 이전상장 기업들은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 중심의 유가증권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고 수급을 확대하려는 공통된 의도를 갖고 코스닥시장을 떠났다. 코스닥시장은 개인 투자자 비중이 커 수급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대표주의 잦은 이탈이 코스닥시장에 대한 대외 이미지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참고 모델인 미국 나스닥처럼 '기술주 중심 시장' 이미지를 얻어야 하는데 반대로 '마이너리그', '2류 시장' 등 부정적인 꼬리표가 따라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코스닥시장 대표주의 이전상장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제도 보완을 통한 이탈 방지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황 실장은 "하지만 시장을 옮겼어도 해당 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사라진 건 아니므로 너무 코스피와 코스닥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갈 필요는 없다"며 "그보다는 새로운 대장주를 키워내기 용이하게끔 코스닥시장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