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말 한 중견기업이 실시한 경력단절여성 채용 면접에 지원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는 결혼 5년차 부부 A씨와 B씨는 최근 둘째를 포기하기로 했다. 결혼 3년 만에 첫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둘째였다. 중견기업에 다니다 퇴사한 아내 B씨가 지난해 재취업 과정에서 급여가 확 깎인 게 둘째를 포기하게 된 직접 원인이었다. 게다가 눈높이를 낮출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취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주택 마련이나 아이 교육비로 돈이 한두푼 들어가는 게 아닐 텐데 아이를 한 명 더 낳다가 수입이 줄거나 취업을 못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확 쪼들리게 될 것 같았다.

결혼, 출산 및 육아 등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고 있지 않다. 2016년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 기혼여성 333만명 가운데 경력단절을 경험한 사람은 117만명으로 전체의 35.2%에 달했다. 2014~2015년에는 각각 37.1%였으므로 거의 감소하지 않은 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결혼·출산 행태 변화와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한 여성 가운데 43.4%가 휴직 제도를 사용한 지 1년 안에 퇴사했다. 육아 부담에다 복귀 과정이 순탄하지 못하면서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 여성 근로자, 출산 후 34.9% 회사 그만 둔다

여기에는 출산휴가만 쓰고 퇴사를 선택한 사람은 빠져있다. 출산 휴가 직후 퇴사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20%였다. 그리고 출산휴가를 쓴 사람 가운데 육아휴직까지 쓴 비율은 63.8%였다. 이를 모두 감안하면 출산휴가를 낸 여성 근로자 가운데 34.9%(출산휴가 이후 7.2%, 육아휴직 이후 27.7%)가 결국 퇴사하게 된단 얘기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3년 이상 경력단절이 계속되는 비율도 높았다. 한국고용정보원이 3월 발간한 ‘한국 여성의 고용 및 경력단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3년 이상 경력이 끊겼던 여성 가운데 가장 비율이 높은 것은 30대였다. 정한나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전체 경력단절자(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 이후 재취득까지 3년 이상 시간이 걸린 사람) 가운데 여성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력단절 여성이 얻은 새 일자리는 급여도 낮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현재 경력단절여성이 재취업하면 이전(평균 월 189만원)보다 20% 가량 낮은 급여(평균 월 153만원)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성 근로자들이 출산을 포기하면서 회사를 다닐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삼식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 입장에서 일(커리어)과 출산 가운데 양자택일 하도록 강요 받고 있는 셈”이라며 “이렇다 보니 여성 고용률과 합계출산율 모두 상대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령화 문제, 유일한 출구는 여성 인력 활용

인구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지 않고서는 생산 인구 감소를 막을 방법이 없다. 한국은행이 7월 발간한 ‘인구고령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5년까지 연 평균 1.9%였던 경제성장률은 2026~2035년 0.4%로 뚝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안병권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인구고령화 속도가 매우 가파른 데다 은퇴 후 근로소득 감소와 함께 곧바로 소비가 위축되는 신흥국형 소득-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생까지 대거 은퇴하고, 그 빈자리를 크게 줄어든 청년들이 다 메우지 못하면서 경제 전반에 활력이 급속도로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후 2036~2045년에는 연 평균 0.0%, 2046~2055년에는 연 평균 -0.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한은은 내다봤다.

한은은 이에 대한 대응 시나리오로 ▲여성 경제활동 활성화 ▲은퇴시기 5년 연장 ▲외국인 노동자 대폭 유입의 세 가지를 잡고, 각각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여성 경제활동 활성화가 인구 고령화 문제를 완화시켜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으로 올라갈 경우, 10년 뒤 경제성장률(0.8%)은 0.4%포인트 정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유럽 수준으로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가할 경우 성장률 상승폭은 0.7%포인트에 달했다. 안병권 실장은 “인적자본 수준이 높은 여성 유휴인력이 많은 상황이라, 그들이 경제활동에 참가하면 산출 수준을 상당 폭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은퇴시기를 5년 늦춰 노령인구의 생산활동을 연장할 경우 10년 뒤 경제성장률 상승 폭은 0.2%포인트로 추정됐다. 하지만 이후에는 기존 전망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 연장으로 고령층이 노동시장에 더 머무른다 해도, 그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은퇴할 수 밖에 없어 성장률 제고 효과가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외국인 노동력이 200만명 가량 대폭 늘어나는 경우, 10년 뒤 0.14%포인트 정도의 생산성 제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10%포인트 증가와 같은 수준이다.

◆ “장시간 근로 당연시하는 업무 문화 바뀌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 안으로 ‘여성일자리종합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여성 일자리만을 타깃으로 한 종합 계획이 수립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력단절 예방, 재취업 지원 확대 등이 핵심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경력 단절 예방을 위해 2019년 성평등 임금 공시제 등을 도입해 여성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겠다는 계획이다. 육아휴직 첫 3개월 간 급여를 대폭 인상하고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강화한다. 또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지원을 위해 계획수립·직업훈련·취업연계·직장적응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새 일 찾기 패키지’ 사업을 실시한다.

전문가들은 육아 휴직 제도 등을 강화하거나 남녀간 임금 격차를 시정하는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아예 일하는 방식을 바꿔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16년 보고서에서 여성에게 불리한 노동시장 관행과 함께 장시간 근로 관행을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은 원인으로 지목했다. 2015년 ‘사회연구’에 게재된 ‘기업조직 특성이 여성관리자의 일-삶 균형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여성 관리자의 일-삶 균형에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무 자율성이나 업무 및 성과 평가의 공식화 등 조직문화도 여성 관리자의 일-삶 균형에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이 넘어가면 영향력이 급감했다. 논문을 쓴 고려대 신동은씨는 “장시간 근로와 집단적 조직문화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여성정책연구원의 ‘여성관리자패널’ 2012년 조사 자료를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