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제공

“헬스케어 분야에서의 디지털 혁신은 시작됐고 한국도 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수준이 높아서 가상 병원 프로젝트에서도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비자 혼카넨(Visa Honkanen·사진) 핀란드 헬싱키대학병원 전략개발본부장(소아과 의사)은 최근 조선비즈와 단독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핀란드는 새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잘 하지만 실행 능력은 부족하다"면서 한국에서의 '가상 병원(virtual hospital)'이라는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의 도입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가상 병원이라는 용어보다 원격 의료이나 원격 진료라는 말을 쓴다.

혼카넨 본부장이 말하는 가상 병원이란 환자가 자신의 집에서 스마트폰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깐 뒤 가상으로 해당 병원 진료과 의사로부터 진료와 진찰을 받을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을 말한다. 환자가 앱을 통해 스스로 진단한 증상을 입력하면 해당 증상과 관련한 진료과 담당 의사와 실시간으로 연결돼 환자가 직접 병원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의사로부터 의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의사 진료 후 대면 진료가 필요하다면 그 때 병원을 방문하면 되기 때문에 환자의 진료 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가상 병원은 5년 전인 2012년 정신건강의학과 상담 진료에서부터 태동한 국가 주도의 e-헬스 사업이다. 2년 뒤인 2014년부터 올해까지 부인과, 소아과, 심장내과, 종양내과 등 진료과(科)가 20개까지 늘어난 데다 서비스 지역도 전국으로 확대됐다. 가상 병원 태동기가 1.0 버전이었다면, 지금은 2.0 버전이 실행 중이다.

혼카넨 본부장은 헬싱키대학병원에서 가상 병원 2.0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핀란드 가상 병원 2.0 사업은 헬싱키대학병원을 포함한 핀란드 내 다섯 곳의 대학병원과 함께 정부 주도로 진행 중이다.

혼카넨 본부장은 “가상 병원 2.0 첫 론칭 후 8개월 동안 가상 병원 방문자 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제외하고 280여만명이었으며, 이 중 실제 서비스 이용자 수는 약 25만명으로 이는 핀란드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한국을 두 번째로 방문한 혼카넨 본부장은 소아과(소아 류머티즘) 전문의로 핀란드 소아과협회장 등을 비롯해 지난 25년동안 핀란드의 영리 및 비영리 단체에서 공공 헬스케어 분야를 연구했다. 그는 벨기에 제약사 UCB에서 북유럽 의학업무 책임자를 역임한 바 있다. 다음은 혼카넨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제공

― 가상 병원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가상 병원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고 확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먼 곳에 있는 환자들도 가상 병원을 이용하면 쉽고 빠르게 의료 서비스를 접할 수 있게 됩니다. 가상 병원은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을 향상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의료 서비스의 질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가상 병원의 활용 예를 들어달라.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있을 경우 과거에는 두 달 후의 수술 날짜와 입원 시간 정도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안내하는 편지를 보내는 데에만 그쳤습니다. 하지만 가상병원을 이용하면 두 달 전부터 이미 진료에 들어가는 셈입니다. 병원에 가지 않고서도 집 안에서 모바일 기기를 활용해 자신이 수술을 받게 될 신체 부위와 수술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에 대한 설명, 그리고 수술 전에 준비해야 할 의학적인 조언들을 의사로부터 받게 됩니다. 즉 최고의 컨디션(몸 상태)으로 수술을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수술 전에 미리 퇴원 후 유의해야 할 사항들도 알게 돼 수술 예후 관리 준비도 할 수 있습니다.”

― 세계 최초로 핀란드에서 가상 병원을 도입했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핀란드 인구는 올해 7월 기준으로 552만명에 달합니다. 규모로는 세계 117위에 해당하는데, 인구수가 많은 국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핀란드 국가 면적은 남한의 세 배에 달합니다. 즉 핀란드의 인구는 남한 인구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면적은 세 배나 클 정도로 인구 밀집도가 낮습니다. 핀란드의 경우 인구 규모에 비해 땅덩어리가 큰 만큼 국민의 의료 접근성(병원의 수나 병원까지의 거리)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상 병원과 같은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의 등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가상 병원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가상 병원을 현실화할 수 있었던 것은 핀란드가 국가 차원에서 지난 50년간 환자 진료 데이터를 구축해온 덕분입니다. 이 데이터를 빅데이터 분석함으로써 대면 진료 전에 자가 진단을 통한 가상 진료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핀란드는 1950~60년대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암 정보를 보관하는 기록소는 1970년대에 설립됐습니다. 이러한 정부 주도의 환자 의무 기록 통합 관리 시스템 덕분에 현재 핀란드인의 환자 진료 기록 중 98%가 전자 문서화돼 있습니다. 의료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의 경우 환자의 의무 기록 중 전자화된 비중은 76% 수준입니다.”

헬싱키대학병원 제공

― 가상 병원에서의 환자 진료나 모니터링은 어떻게 진행되나. 가상 병원 플랫폼은 누가 개발한 건가.

“앞서 언급한대로 환자 개인이 자신의 스마트폰, 태블릿 PC 또는 PC에 가상 병원 관련 앱을 설치하고 직접 자신의 증상을 입력한 뒤 전문의와 디지털로 실시간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가상 병원 플랫폼 개발은 핀란드의 소프트웨어 기업 ‘이노팩터(Innofactor)’가 담당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플랫폼 애저(Azure)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노팩터는 작년에 가상 병원에 응용한 기술력으로 현지 언론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 가상 병원은 정부 주도의 e-헬스 사업으로 알고 있는데, 담당 부서는 어디인가. 헬싱키대학병원을 포함한 5개 대학병원이 함께 이 사업을 진행 중인데 헬싱키대학병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5개 대학병원 모두 각자의 가상 병원 사업 운영팀이 있습니다만, 헬싱키대학병원을 주축으로 가상 병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상 병원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에는 50여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는 가상 병원 사업을 관리·감독만 할 뿐, 사업 운영은 민간인 병원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달에 한번씩 정부 부처에 가상 병원 사업 현황을 보고하고 피드백을 받아 서비스를 개선하고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상 병원 사업은 IT(정보기술)를 활용할 뿐이지 IT 프로젝트가 아닌 헬스케어 프로젝트입니다. 따라서 보건사회부(사업 분야)와 재무부(예산 분야)가 각각 가상 병원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가상 병원은 정부와 민간의 협력 모델인가.

“그렇습니다. 해당 정부 부처와 5개 민간 대학병원이 50대 50으로 자금을 투자했습니다. 정부가 관리 감독 역할을 수행하지만, 가상 병원 사업 핵심에는 의료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수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상 병원 사업이 정부의 지시로 움직여야 하고, 이 프로젝트가 정부 프로젝트라고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은 중단될 것이기 때문에 자율적인 방식은 유지돼야 합니다. 가상 병원 사업은 환자 개개인(핀란드 국민)을 위한 것이지 (핀란드) 정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제공

― 가상 병원을 이용하는 비용 부담은 누가하나.

“가상 병원은 아까 언급한대로 자신의 모바일 기기를 통해 디지털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상 병원 사업에서는 디바이스(기기)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가상 병원 진료 비용은 현재는 정부가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가상 병원의 활성화로 환자들의 대면 진료가 줄어들 경우 직접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 역시 감소하게 돼 병원의 수익도 줄어들게 됩니다. 이 부분(가상 병원을 통한 수익화)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 핀란드 정부는 가상 병원의 진료 비용을 계속 지원할 것인가.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가상 병원 진료 비용은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것이고 세제 지원 혜택도 있기 때문에 환자 개인이 지불해야 할 금액은 없습니다. 다만 가상 병원을 통한 진료 후 대면 진료를 받을 경우 이는 진료 비용을 청구하게 됩니다.”

― 오늘날 ICT 기술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미래에 이러한 기술이 헬스케어 분야에 어떻게 접목될 것이라 생각하나.

“사물인터넷(IoT) 그리고 이를 통한 셀프 모니터링은 만성질환 환자나 심장병 환자 등처럼 스스로 컨디션을 체크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들 환자뿐 아니라 개개인 모두가 바이오리듬이나 혈압 등 모든 것을 측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센서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몸에 센서를 부착해 측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하는 행동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장 가까운 미래에는 손가락을 디바이스(기기)에 터치해 자신의 증상을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음성 인식을 통해 가상 병원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