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이론 'DSGE'에 직격탄
영란은행, "경제학 모델보다 AI 머신러닝이 예측력 더 높아"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현재 거시경제학의 핵심 이론인 동적확률일반균형(DSGE) 모형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폴 로머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에 이어 또다시 경제학 거물이 거시경제학계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로머도 매년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정상급 경제학자다. DSGE는 현재 전 세계 중앙은행과 국제기구가 거시경제 분석 및 경기 예측에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는 이론이다. 시카고대, 미네소타대 등 인간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강조하는 새고전파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15일 전미경제연구소(NBER)를 통해 발간한 '현대 거시경제학이 잘못 갔던 곳(Where Modern Macroeconomics Went Wrong)'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DSGE 모형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먼저 그는 "거시경제학 이론의 분석 능력과 예측력이 중요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경제가 취약해졌을 때"라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감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책 처방(policy guidence)을 내놓지 못하는 DSGE는 실패한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심각한 경기 침체 상황에서 DSGE는 똑같이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금융위기 예측 못하고 정책 처방도 못내린 실패한 이론"
DSGE는 1970년대 로버트 루카스, 토마스 사전트 등 이른바 '시카고 학파'가 당시 케인스 경제학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대두된 개별 경제 주체들의 합리적 기대와 그에 기반한 의사 결정을 강조한다. 여기에 1980년대 초 에드워드 프레스콧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 핀 키들랜드 카네기멜론대 교수 등이 주창한 실물경기변동(RBC· Real Business Cycle) 이론의 영향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프레스콧과 키들랜드는 기술 발전과 인구 증가 같은 요인이 거시경제 균형에 '충격'으로 작용하는데 그 작용 방식이 개별 경제 주체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형태이기 때문에 정교한 모형을 통해 장기적으로 관찰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새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공세에 대항해 신케인지언 학파 경제학자들은 산업 조직의 독과점적 형태나 가격 조정의 불연속성 등을 강조해 독자적인 DSGE 모형을 개발한다.
DSGE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RB)를 시작으로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각각 2006~2008년 DSGE에 기반한 경제 예측 모형을 개발해 공식 채택했다. 한국은행도 2007년부터 'BOKDSGE'라는 명칭으로 채택해 사용한다. 실제로 중앙은행이 사용하는 DSGE 모형은 신케인지언 이론에 가깝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기술발전, 금리 및 물가 변동, 인구 변화 등 노동공급 변화가 개개의 '충격(shock)'으로 작용하고, 여기에 개별 가계 및 기업이 '합리적'으로 반응해 경제가 자동조정된다는 DSGE의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DSGE가 실패한 것은 근본적인 결함 때문"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경제 주체의 이질성(heterogeneity)이나 가격 마찰 등을 도입해 DSGE를 개량하려는 시도가 "모형 자체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지엽적인 부분만 보완하면 될 것처럼 주장한 옛 천동설(天動說) 보완론자(Ptolemic attempt) 같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DSGE 모형 및 RBC 이론이 가계 및 기업의 합리적 의사 결정을 강조하지만 정작 거시경제 상황의 변화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외생성(exogeneity)'은 눈감아버렸다고 서술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 같은 대규모 '체계적 위험'이 DSGE 모형에서 도출될 수 없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자산 버블 붕괴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차대조표 불황(자산 매입에 동원됐던 금융 부채가 버블 붕괴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소비 및 투자 여력을 잠식하는 것)이나 중앙은행 정책 결정 및 금융당국의 신용 배분 결정 등 중요한 요인도 간과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금융 부문이 이전과 다르게 움직이고, 비전통적인 경제 정책 수단이 집행되는 상황에서 DSGE는 눈 뜬 장님이나 다름 없다고 스티글리츠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박사를 받고 현재 존스홉킨스대 교수로 있는 안톤 코리넥의 연구를 인용해 DSGE 모형이 경제 예측 도구로 삼고 있는 이론들을 싸잡아 공격했다. HP(호들리-프레스콧)필터 등 새고전파 경제학자들이 경기순환의 변동성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한 방법론이 제대로 경기 상황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의 과학적 엄밀성은 여러 측면에서 의문시된다"고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적했다.
◆로머 "경제학 이론 1970년대 수준에서 발전 없어"
스티글리츠 교수의 이 같은 비판은 지난해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의 DSGE 모형 비판과 궤를 같이 한다.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DSGE나 RBC가 중요하게 간주하는 '충격'이 현실에서 관찰되기 어렵다고 먼저 지적했었다. 그는 단위 생산요소당 소비재 및 자본재 생산량 변화, 임금과 가격의 무작위적 변화, 투자자의 선호 정도, 사람들이 근로 시간 대신 여가를 선호하는 정도 등 현실에서 측정할 수 없는 변수들을 다루기 때문에 과학적 엄밀성을 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개별 '충격' 요인들에 대해 플로지스톤, 에테르(진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19세기 이전 사람들이 에너지 전달 매개라고 생각한 가상의 물질), 트롤(가상의 생명체), 그렘린(기계에 몰래 붙어 있는 난쟁이 요정)이나 마찬가지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가상의 변수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두 번째 문제는 이론을 실제 자료에 맞춰 검증하는 판별(identification)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알려지지 않은 진짜 값'을 가지고는 가장 단순한 수요-공급 곡선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통계적 기법들을 사용하지만 결함이 많고, 모호한 결과를 내기 일쑤라는게 그의 논리다.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새고전파 거시경제학의 주요 인물인 루카스, 프레스콧, 사전트의 '자기 식구 챙기기'식 행태도 신랄하게 공격했다. 경제학계 내부에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이들 새고전파 인물들은 서로를 지지하면서 약점을 감싸주기 바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쌓은 명성과 권위를 맹종하는 다른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오류를 비판하지 않았다고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목소리를 높였다.
새고전파 경제학이 거시경제학계를 잠식한 결과에 대해서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30년 이상 경제학이 퇴보하게 됐다"고까지 말했다.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이론적 가설을 판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스태그플레이션 문제가 대두된) 1970년대 수준의 신뢰성만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이론적인 모호함을 활용해 도망칠 뿐이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영란은행 "AI가 물가예측 사람보다 더 잘한다"
두 거물의 거시경제학 비판은 현재 거시경제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데 학계 안팎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 경제 주간지 는 로머 수석이코노미스트의 비판에 대해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고, 배가 튀어나왔다는 걸 이야기한 격"이라며 우호적인 논조로 보도했다. 올리비에 블랑샤 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지난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보고서에서 "DSGE는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지만 거시경제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델"이라고 점잖은 어조로 문제를 제기했었다.
이런 가운데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아예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계학습(머신러닝)을 사용해 경제 현상을 분석, 예측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AI에게 경제 현상에 대한 자료를 주고, 알아서 학습하도록 한 뒤에 그 결과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마치 알파고(AlphaGo)가 둔 바둑을 해석해 이를 바탕으로 바둑 이론을 발전 시키자는 얘기와 비슷하다.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지난 1일 발간한 '중앙은행에서의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at central banks)' 보고서에서 기계학습 기법을 이용한 AI의 예측 능력이 기존 경제학 모형의 예측보다 뛰어났다는 결과를 내놨다. 영란은행은 ▲은행 재무제표를 이용해 은행 건전성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과거 거시경제 변수들을 가지고 소비자물가지수 변화를 예측하며 ▲금융산업에서 IT 기술에 바탕을 둔 초대형 벤처기업(유니콘)이 등장하는 패턴을 파악하는 데 각각 머신러닝을 활용한 결과 이런 결론이 나왔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