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속기 등을 생산하는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ZF는 지난 2014년 자동차용 센서, 카메라 등에 특화된 미국 TRW를 인수했습니다. 전기차 등 미래차 시대에 변속기만 생산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예견하고 대비한 것입니다.”(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

“자동차 산업은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품업체 스스로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하는 것 뿐 아니라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하루 아침에 부품업체 스스로 종속적인 구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 다변화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하고, R&D에 집중 투자해야 합니다.특히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에서 차량 안에 어떤 IT 기술을 접목할 수 있을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야 합니다.”(김수욱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자동차업계와 학계, 증권업계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들은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특정 완성차 업체의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고 고객을 다변화해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선 연구·개발(R&D) 비중을 늘리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에 먹거리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EU R&D 스코어보드.

◆ “미래 먹거리 개발 위해 적극적으로 R&D 투자해야”

김수욱 서울대학교 교수는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제품 경쟁력에서 선진국에 밀리고 가격경쟁력은 신흥국에 밀리는 상황”이라며 “차량에 다양한 IT 서비스를 결합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R&D 투자가 필수”라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 부품기업인 덴소(Denso)는 기존 컴퓨터보다 수억배 빠른 양자 컴퓨터 기술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그동안 양자 컴퓨터 기술은 첨단 IT 기업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덴소가 양자 컴퓨터 기술 개발에 뛰어든 것은 도심 출퇴근 시간의 교통 흐름을 파악해 최적의 길을 실시간으로 찾아내는 시스템을 차량에 탑재하기 위해서다. 변속기로 유명한 아이신도 도쿄 도심에 인공지능(AI) 전용 개발 센터를 세웠다. 완성체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일방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부품 업체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R&D에 최우선적으로 투자해 차별화된 품질을 갖추는 것은 물론 부품 업체 스스로 특화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의 R&D 비용은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매년 12월 세계 2500대 R&D 투자 기업을 조사해 발표하는 'EU R&D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2015년 현대차는 15억8800만 유로로 83위, 기아차는 11억2000만 유로로 124위에 올랐다.

글로벌 부품업체인 보쉬와 덴소의 2015년 R&D 투자 금액은 각각 52억200만 유로, 30억4100만 유로로 현대차보다 많았다. 보쉬는 2500개 기업 중 23위, 덴소는 43위를 차지했다.

국내 부품업체 중에서는 현대모비스가 4억5500만 유로로 260위였으며 만도는 1043위(7900만 유로), 경신 1883위(3400만 유로) , 세종공업 2163위(2700만 유로), 화승 R&A 2200위(2600만 유로)였다. 만도는 제동장치, 조향장치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경신은 차량 각 부분에 전력과 신호를 공급하는 와이어 하네스, 세종공업은 머플러, 화승R&A는 브레이크 호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엔진 부품 등을 생산하는 ZF는 102위(13억5000만 유로), 변속기 등을 생산하는 아이신세이키는 110위(12억4000만 유로), 브레이크 등을 생산하는 델파이는 127위(11억200만유로)로 한국 부품업체들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현대모비스보다도 R&D 연간 투자 금액이 2배 이상 많다.

현대자동차 중국 베이징 2공장 생산라인.

◆ “납품가격 인하 폭 적정성 등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 필요”

전문가들은 부품업체가 여러 기업에 납품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이익 쥐어짜기’식의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부품업체들의 R&D 능력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그동안 '수직계열화'와 '전속거래'를 통해 성장해왔다.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자동차 강판부터 제조·판매, 운송·금융까지 전 과정에 계열사를 뒀고, 그 이외에 다른 부품업체들에는 현대·기아차와만 거래하도록 한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통해 현대·기아차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글로벌 업체들의 제품을 빠르고 값싸게 모방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품업체들도 안정된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비판이 나온다. 생산 효율성, 제품 기밀 보호 등을 이유로 수직 구조의 덫에 갇힌 중소 부품업체들은 R&D에 투자할 여력이 크지 않았고 고객 다변화에도 제약을 받아왔다. 그 결과 부품업체 대부분이 완성차 업체의 협력사 틀에 묶여 자생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단가 인하 요구는 물론이고, 신차가 나왔을 때에도 가격을 올려서 받기 힘들다. R&D는 커녕 공장 돌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자동차 산업의 수직적인 구조는 수평적인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을 위해서는 납품가격 인하 폭의 적정성, 적정 원가의 인정, 공동 비용절감으로 획득한 수익 공유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6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영업이익률 격차는 자동차 및 트레일러 산업이 제조업 평균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2015년 기준 자동차 및 트레일러 산업에서 대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79%, 중소기업은 3.32%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영업이익률 격차가 2.47%포인트에 달했다.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대기업이 5.4%, 중소기업이 4.38%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는 1.02%포인트였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업체도 부품업체와 동반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현대차로서는 중국에서 2, 3차벤더를 중국 로컬업체로 바꾸는 게 가장 쉬운 일일 수 있겠지만 그런 일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