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기업들이 지금보다 최대 5조원가량 전기요금을 더 부담해야 할 전망이다. 정부가 '탈(脫)원전, 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개편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과 통상임금 압박 등 경영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 시기에 전기요금 부담까지 늘어나면 원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12일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국전력에서 받은 산업용 전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 할인 폭을 축소할 경우 기업들이 더 부담해야 할 전기요금은 9494억~4조919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산업용 전기는 심야나 주말처럼 상대적으로 전력 소비가 적은 시간대에는 할인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할인 폭을 줄이면 기업들은 타격을 입는다. 특히 전기를 많이 쓰는 철강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철강 업계는 2015년에만 전기료로 3조5068억원을 썼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연 1조1605억원의 전기요금을 낸 현대제철은 최대 1900억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중소 제조업체들도 납품 단가 인하와 인건비 상승, 대기업 해외 공장 이전 등으로 일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전기료까지 올라가면 사업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주요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면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7월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으로 전력 다소비형 산업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에너지 정책 목표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경(輕)부하 요금’ 개편 작업부터 시작하겠다는 로드맵도 공개했다. 탈원전 정책에 따라 전력 생산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싼 신재생 에너지와 LNG(액화천연가스) 비중을 늘리려면 전기요금 개편이 불가피한데, 우선 산업용 전기요금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정 의원실에 따르면 심야 시간대 요금 할인 폭을 줄이면 축소율에 따라 기업들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은 4962억~4조4660억원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용 전기는 시간대에 따라 경부하, 중간 부하, 최대 부하로 나뉜다. 전력 수요가 적은 시간대(오후 11시~오전 9시)의 경부하 요금은 할인율이 가장 크다. 전체 산업용 전기 사용량 가운데 48.1%가 이 시간대에 소비된다. 최대 부하(오전 10~12시, 오후 1~5시)는 전력 수요가 많아 요금이 가장 비싸다. 나머지는 중간 부하 요금이 적용된다. 이 중에서 경부하 요금을 올려 중간 부하 요금과 차이를 줄이는 방법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실에 따르면 경부하 요금 외에도 토요일 낮에 쓰는 전기요금 할인 요금제 폐지도 검토 대상이며 기업이 추가로 내야 하는 요금은 4532억원에 이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산업용 전기료 할인율 조정에 따른 기업들의 추가 부담액은 최대 5조원에 육박한다. 다만 할인 폭을 조정하더라도 내년에 한꺼번에 줄이기보다 단계적으로 줄일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은 산업용 전기에 대한 오해가 많다는 입장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보다 싼 것과 관련해서는 대형 공장의 경우 별도 변압 설비를 설치해 고압 전기를 직접 받기 때문에 주택용보다 공급 원가가 낮아 요금이 싸다고 주장한다. 2015년 기준 한전의 산업용 전기 원가 회수율은 110%. 한전이 원가보다 전기요금을 더 받은 것으로 그 규모는 2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국내 산업용 전기료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84.2% 올라 주택용보다 5배 이상 상승했다. 지난해 기준 주택용 대비 산업용 전기요금 비율은 87.1%로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에 이은 2위다. 정유섭 의원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하면서도 가뜩이나 각종 반기업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