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네덜란드 원자력 연구기관인 NRG는 유럽위원회(EC)의 지원을 받아 45년 만에 토륨 원자로 실험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토륨은 우라늄과 마찬가지로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발생할 수 있는 방사성 물질이지만, 핵분열 성능이 약해 1970년대 이후 원전에서 우라늄에 밀려났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핵분열 성능이 낮은 점이 오히려 원전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으로 부각되면서 토륨 원자로가 미래 원전 기술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원전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가 당장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각국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높아진 안전 잣대에 맞추기 위해 방사성 폐기물이 적게 나오고 사고가 나도 즉시 원자로 냉각이 가능한 신형 원전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신기술 개발이 위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다양한 미래 원전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토륨 원전, 45년 만에 부활

토륨은 우라늄보다 매장량이 4배나 많아 1970년대부터 원자로 연료로 주목받았다. 토륨 원자로는 우라늄 원자로와 마찬가지로 소립자인 중성자가 원자핵을 분열시키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내는 원리이다. 하지만 토륨에서는 우라늄보다 중성자가 덜 나와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려면 외부에서 중성자를 추가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불쏘시개를 계속 넣어줘야 타는 아궁이와 같다.

45년만에 다시 가동된 네덜란드의 토륨 원자로 실험시설. 파란 물 곳에 토륨 핵련료가 들어있다.

토륨이 다시 각광을 받는 것은 안전성 때문이다. 토륨은 원전이 정지하면 중성자를 공급받지 못해 바로 핵분열을 멈춘다. 덕분에 냉각수가 떨어져도 토륨에서 나오는 열로 원자로가 녹아내릴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또 토륨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의 83%는 10년 내 방사능이 안전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나머지도 500년 이내 석탄 탄광 수준으로 낮아진다. 토륨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에는 무기를 만들 플루토늄이 나오지 않아 핵확산 우려도 없다.

인도는 한 걸음 나아가 올해 말부터 토륨 원자로에서 실제 전기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중국은 당초 2030년대에 토륨 원전을 가동하려 했으나 후쿠시마 사고 후 2024년 가동으로 앞당겼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미국 테라파워사가 토륨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고, 유타주(州)도 토륨 원전 개발업체인 알파 테크 리서치 코퍼레이션을 지원하고 있다.

기존 원전도 바다로 옮겨 안전도 높여

기존 우라늄 원자로를 바다로 옮겨 안전성과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원전을 바다 위 바지선이나 수중에 건설하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부른 쓰나미(지진해일)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쓰나미는 육지에 와서 엄청난 물을 쏟아 내지만 바다에서는 보통 수준의 물결에 그친다. 바다 원전은 주변이 온통 바닷물이라 사고가 났을 때 냉각수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미국 MIT의 자콥 부온지오르노 교수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지 인터뷰에서 "해상 원전으로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전기 생산 단가도 육지 생산의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라는 해상 원전을 짓고 있다. 35㎿(메가와트)급 원자로 두 기를 선박 위에 설치한 형태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 발전회사는 2019년부터 시베리아의 자치구 추코트카에서 해상 원전을 가동할 계획이다. 중국 국영 원전 회사인 중국광핵집단도 러시아와 같은 선박형 해상 원전 20척을 2020년대에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착공에 들어간다. 중국은 해상 원전으로 영토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에서 자국 인공섬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략적 목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러시아가 건조 중인 해상 원전. 선박에 소형 원자로 2기가 들어있는 형태로 2019년부터 가동할 계획이다.

해상 원전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태풍이다. 해상 원전 개발자들은 선박이 늘 바람의 방향으로 뱃머리를 잡게 돌려 파도가 선박 옆을 강타하지 않도록 설계하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 방식을 통해 1만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규모의 태풍까지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 원자력위원회는 아예 태풍의 위험마저도 피할 수 있게 육지에서 15㎞ 떨어진 바다 밑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50㎿급 원자로에서 생산한 전기는 수중 케이블로 육지로 전송한다.

육지에서도 원자로를 물속에 통째로 넣는 '소형 모듈 원전(SMR·Small Modular Reactor)'이 주목받고 있다. 모든 장비가 원자로 안에 다 들어가고 사고가 나도 원자로 주변의 물로 열을 식힐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최근 누스케일사의 SMR에 대한 설계 심사에 들어갔다. 유타주는 2026년부터 누스케일의 SMR로 전력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SMR 12기를 한 세트로 해서 600㎿급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건설비는 30억달러(3조3900억원) 정도로, 기존 1200㎿급 육상 원전의 200억달러 정도에 비하면 3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 원전 신기술 연구는 미래 불투명

해외에서는 신형 원전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전 신기술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연구가 재검토 대상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개발한 SMR인 스마트 원자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까지 했지만 국내에서는 건설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러시아와 토륨 원전 연구를 같이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나라가 원전 강국이었기 때문"이라며 "탈원전이 현실화되면 미래 원전 연구에서도 한국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