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아파트 재건축 사업 수주에 뛰어든 대형 건설사들이 조합원들에게 "먼저 공사부터 시작하고, 분양 시기를 늦추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최근 분양 보증을 하면서 분양가를 낮추도록 하자, 건설사들이 우선 자체 자금으로 공사하다가 시장 상황을 봐가며 분양하겠다는 전략을 짠 것이다. 정부가 지난 5일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업성이 좋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공사 중 분양'은 더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들, '조합이 원할 때 분양' 제안

공사비만 2조6000억원이 넘어 올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住區) 수주에 나선 현대건설과 GS건설 모두 공사 중 분양을 제안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4일 "조합 이익이 극대화되는 최적의 시기에 맞춰 분양 일정을 정하겠다"고 입찰 신청서에 써 냈다. GS건설도 "조합이 공사 중 분양을 원한다면 따르겠다"고 했다. 두 회사 모두 착공과 동시에 아파트를 분양해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차례로 받아 공사하는 대신 '일정 기간 공사 후 분양'을 제안한 것이다. 앞서 대우건설도 지난달 말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 사업 입찰에 참여하면서 공사 중 분양 카드를 꺼냈다. 대우와 수주전을 벌이는 롯데건설도 "우리도 공사 중 분양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조합에 전달했다. 건설사들이 공사비 조달 부담을 안으면서도 수주 의지를 보인 것이다.

입주 1년 전 분양하면 HUG 규제 피해

건설사들이 분양 시기를 늦추겠다고 조합에 제안한 것은 최근 서울 강남권에 분양하는 아파트들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분양이 진행 중인 GS건설의 '신반포센트럴자이' 평균 분양가는 3.3㎡당 4250만원으로, 인근 아파트 시세보다 3.3㎡당 1000만원 정도 싸다.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시세 차익이 3억원이나 된다. 분양가가 낮아진 것은 분양 보증을 하는 HUG가 서울 강남·서초구 등을 고분양가 관리 지역으로 지정, 인근 아파트 평균 분양가를 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법에 따르면 골조 공사를 3분의 2 이상 진행하면 HUG로부터 분양 보증을 받지 않고 분양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일정 조건을 갖춘 건설사 두 곳 이상의 연대보증을 받아야 하고, HUG의 분양가 조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

입주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분양하면 공사 전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해 조합의 이익을 더 늘릴 수 있다. 보통 골조 공사가 3분의 2 이상 진행된 시기는 입주 1년 전쯤이 된다. 반포주공1단지 인근 아크로리버파크는 2013년 11월 분양 당시 분양가가 3.3㎡당 3800만원이었지만, 입주 1년 전 분양권 시세는 3.3㎡당 4400만원이었다. 이 아파트를 입주 1년 전인 2015년 8월에 분양했다면 시세를 반영해 분양가가 수백만원 더 올라갔을 것이다.

사업성 확실한 재건축 단지는 공사 중 분양 늘 것

내달 말부터 분양가 상한제가 강화돼 시행되면 공사 중 분양을 선택하는 재건축 단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분양 시기를 늦출수록 일반 분양가를 올릴 수 있고, 조합원 부담이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강남은 신규 토지 공급이 어려운 데다 수요는 많아 땅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며 "분양가 상한제는 분양가를 택지비와 건축비를 더한 것보다 낮게 책정한다는 것인데, 건축비에 물가 상승률이 반영되는 공사 중 분양을 하면 분양가는 높아진다"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조합원 수가 많고, 사업성이 확실한 재건축 단지에선 공사 중 분양을 선택하는 흐름이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