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가 많아져 아주 바쁘다. 아무래도 시장이 회복되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해운업종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 같다.”

국내 최대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올해 2월 결국 파산했다. ‘한진해운의 역사가 곧 한국 해운업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만큼 업계에서 한진해운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관련 업체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을 여의도 신영증권 별관 리서치센터에서 만났다.

그러나 최근 국내 해운업이 부활하고 있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요즘 세미나를 가면 해운주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설명해달라고 한다”며 “오랫동안 해운 업황이 나빠지면서 대부분 이 업종을 외면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엄 연구원은 지난달 24일 ‘해운, 다른 차원으로 진입 중’ 리포트를 통해 해운사들이 운임 상승, 수송 물량의 증가 등 호재로 2분기 예상수준을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해운주의 상승세도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하반기에도 원자재 수요 증가에 따른 ‘운임’, 즉 수송비 상승을 기반으로 해운 업황의 회복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이런 상황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최선호주로 대한해운(005880)팬오션(028670)을 추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들어 해운주가 상승세를 지속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상승했나.

“유가증권시장 전체가 조정을 받기 시작했던 7~8월 해운업종 중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이 대한해운이었는데, 올해 들어 100% 정도 올랐다. 올해 초 1만원대서 시작해 최고 3만9000원 가까이까지 올랐다. 지금은 3만5000원 정도지만, 이 가격도 연초 대비로는 크게 오른 수준이다. 팬오션의 경우 연초 3000원대 후반에 머물렀는데 최근 6000원대까지 올랐다.”

-한진해운의 파산에 대한 반사이익을 봤다고 해석할 수 있나.

“실제 세계 1∼3위 해운사인 머스크라인(덴마크), MSC(스위스), CMA CGM(프랑스) 등은 컨테이너선사 중 상당한 경쟁력을 보유했던 한진해운이 사라지면서 상대적인 이익을 얻었지만, 국내 업체들은 그렇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국내 최초이자 최대 해운사였다. 긴 업력을 이어온 업체가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이 국내 컨테이너선사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 것 같다.

실제 한진해운 사태와 무관하게 상승세를 보인 업체들은 앞서 언급한 대한해운, 팬오션 등 벌크선사였다. 두 업체 모두 호실적을 기록했다. 실례로 대한해운은 확정계약을 맺은 선박이 4건 늘었다. 확정계약이란 해당 계약을 위해서만 배를 운행하는 계약으로, 운임도 시세와 상관 없이 고정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해운사는 확정계약을 캐시카우로 두고 부정기선 영업을 한다. 부정기선 영업이란 배를 운임 시세에 따라 흥정을 해서 배를 빌려주는 것인데, 대한해운도 2분기부터 부정기선 영업의 매출을 본격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대한해운의 매출액이 증가했지만, 이익이 감소한 것은 회생절차 졸업 이후 처음 시작한 부정기선 영업에서 원가경쟁력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팬오션은 벌크사업부문의 운임상승과 컨테이너 사업부문의 운임상승이 전체 실적 개선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벌크사업부문의 경우 총 수송량은 오히려 1분기보다 감소해 화물량이 벌크사업부문 수익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해운사 실적에 가장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운임’을 꼽았다. 글로벌 운임 시황은 어떤가.

“주요 업체들의 종합적인 실적을 보았을 때 가격지표와 물량지표가 모두 실적개선에 영향을 줬다. 하지만 향후 실적개선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가격지표인 운임이 중요하다고 본다. 실제 물동량의 증가로 실적이 개선된 경우는 시장운임과 관계없는 확정계약물량이 증가한 업체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운임이 중요한 요인이다.

벌크운임지수인 BDI(Baltic Dry Index)는 지난 1985년 1월 1일부터 발표됐는데, 1000을 기본 포인트로 두고 움직인다. 연평균 1000을 밑돌았던 적이 세번 있었는데 1986년, 그리고 2015년과 2016년이다. 그만큼 수급이 완전히 꼬이고 업황이 안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9월 1일 기준으로 BDI는 1183정도까지 올라왔다. 시황이 좋지 않을때는 시장이 혼돈을 겪기도 하지만, 그만큼 수급의 불균형이 해소되기도 한다. 최악의 기간을 이겨내기만 하면 운임이 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보통 벌크선사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계약의 장단기 여부를 결정하는데, 지난해까지 모든 계약이 단기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 장기 계약건이 늘고 있다. 시장의 성격 자체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 됐다는 의미다.”

-한진해운이 사라진 뒤 부산항에서 국내 컨테이너 선사의 물동량이 외국적 선사와 크게 차이나게 시작했다는데.

“그렇다. 한진해운이 글로벌 7위 정도 규모였는데 이들의 물동량이 대부분 외국 선사로 흡수됐다. 특히 부산항은 원양업체들이 거래를 많이 하는 곳인데, 국내 독보적이었던 한진해운이 사라지면서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렇다면 국내 해운업체가 신뢰 회복을 하기 위해 선결돼야 할 가장 필요한 조치는 무엇인가.

“일단 기존 계약을 잘 수행해야 한다. 한진해운이 사라지면서 ‘한국 선사들이 언제 화물을 갖고 튈지 모른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즉, 더 이상 서비스의 질이 악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계약을 불이행하는 상황이 없어야 한다.”

-리포트에서 원자재, 특히 철광석 가격이 상승해 선박 운임도 상승하고 있다고 했다. 원자재 가격이 운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모든 운송은 화물의 가격이 낮은 것보다는 높은 것이 좋다.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시장에서 수요가 있다는 것이고 수송 수요도 계속 늘어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수송 수요가 늘면 당연히 운임도 늘어난다. 항상 양적 지표가 먼저 움직이고 후발로 운임 상승도 후행적으로 따른다. 하반기 중국이 철강 자재 생산을 줄일 가능성도 큰 상태다. 이 경우 국가 대 국가의 철강 수요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최근 원자재가격의 리레이팅이 시작된 5월 이후 국내외 해운업체들의 밸류에이션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까지 상승했다. 운임 상승에 따른 가격레버리지 효과를 반영한 결과라고 판단한다. 단적인 예로 팬오션의 경우 1분기 대비 2분기 1달 평균운임이 22% 상승할 때 벌크부문 영업이익은 20% 늘어났다.”

-선박 관련 환경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이런 점도 해운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종국에는 영향을 주겠지만, 당분간 지켜봐야 한다. 우선 국제 항해 선박에 평형수 처리장치(BWMS)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기한이 2년 늦춰졌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선박평형수 관리협약’ 발효에 따른 BWMS 의무 설치 기한을 2022년에서 2024년까지로 유예하기로 했다.

선박평형수란 선박 운항 때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아래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넣는 바닷물인데, 이 물에 포함된 유해 수상생물과 병원균을 제거하거나 무해화 또는 그 유입이나 배출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나 설비를 BWMS라고 한다.

이것이 유예된 것은 선사들이 이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배를 새로 만들거나 고쳐야 하는데 드는 비용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황이 좋아지고 선사들이 실제 돈을 벌게 되면 설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이는데, 내년 하반기 정도가 그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시황이 회복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괜히 배에 돈을 들여서 운임을 높여 경쟁력에서 뒤처질 필요가 없다. 또 부품은 초기에 값이 비싸다가 시간이 지나면 성능이 더 좋은 것이 나오고 값도 저렴해진다. 그래서 다들 선조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규제가 확실히 시행되는 때는 결국 먼저 경쟁력을 갖는 업체가 선점 효과를 얻을 것이다.”

-하반기 해운주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가장 주목하는 종목은?

“앞서 말했듯이 완전히 단기적으로는 하반기 원자재 가격 상승 효과를 볼 것이다. 철강 생산이 30%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기 때문에 3분기에 선제적인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10월에는 곡물 수요 시즌도 있다. 운임의 저점 자체가 상향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연평균 운임을 1000포인트에서 1200포인트로 20% 상향 조정할 경우 대한해운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기존 9.4%에서 11.2%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며, 팬오션의 ROE는 기존 가정 5.7%에서 7.2%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

운임변동에 따른 2018년 추정실적 변동범위를 고려하여 벌크선사들의 목표주가를 높여잡았다. 운임 등락에 따른 실적변동 폭은 비용이 고정된 사선(자체 보유선박) 벌크선이 더 많은 팬오션이 대한해운보다 더 클 것이므로 이를 반영했다. 대한해운의 목표주가는 기존 4만5000원에서 4만7000원으로 상향조정하고, 팬오션은 기존 7000원에서 7500원으로 상향 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