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를 벌써 잊으셨나요?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지난 7월 서울 돈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 공터에 붙었던 현수막 내용이다. '행복 기숙사 건립반대 추진위원회'라는 단체는 단지 앞에 대학 기숙사가 들어서면 주변 질서를 어지럽히고 아이들의 안전까지 위협하게 된다며 기숙사 건립을 반대했다.

아이들의 안전을 세월호 참사에 빗대면서 지탄 여론이 일자 추진위는 현수막을 결국 철거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은 여전히 기숙사 건립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청년 주거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와 학교가 기숙사를 짓겠다고 나섰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혀 기숙사 건립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곳이 많다.

기숙사 건립에 반대하는 이유로 주민들은 공원 부족과 안전 문제 등을 들고 있지만, 집값이나 임대료 하락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행복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었다. 행복 기숙사 건립을 세월호 참사에 빗대면서 지탄 여론이 일자 추진위가 현수막을 철거했다.

◆ 주민들 "학생들 위험한 존재"

대학생들이 기거할 기숙사는 태부족이다. 교육부 대학정보공시센터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교의 기숙사 평균 수용률은 지난해 10월 기준 11.8%에 그친다. 대학생 10명 중 1~2명 정도 밖에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일반 하숙집을 구하려면 비싼 월세 부담이 만만찮다. 스테이션3 다방에 따르면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평균 보증금은 1378만원, 월세는 49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9%, 2.52% 올랐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대학생 기숙사 5만실을 공급한다고 약속했지만, 기숙사가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밀려 진척이 더디다.

지난해와 올해 8월 서울 주요대학가 원룸 보증금·월세 평균가 비교.

고려대는 4년 전부터 안암캠퍼스 인근 개운산 자락에 기숙사 신축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대로 공사를 시작조차 못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기숙사가 들어오면 공원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고려대 인근에 사는 김명기(45·가명)씨는 "오랫동안 성북구민들이 공원으로 쓰던 개운산에 기숙사를 지으면 구민들은 공원을 잃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아무리 학생들 기숙사가 부족하다지만 주민 모두가 이용하는 공원까지 없애가며 기숙사를 지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북구 돈암동 일대에는 사학진흥재단이 연합행복기숙사를 지으려고 지난 2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역 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기숙사가 단지 아래 초등학교 등교길에 있어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역주민 박경진(53·가명)씨는 "술 마시고 연애하는 요즘 대학생들 모습을 어린 학생들이 봐서 좋을 게 없다"며 "아이들 안전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완공된 경희대 서울캠퍼스 '행복 기숙사'는 사용승인이 나지 않다가 가까스로 지난달 문을 열고 학생들을 받았다. 기숙사를 새로 지으려는 한양대와 총신대는 주민들의 반대로 진행이 쉽지 않은 상태다.

◆ 집값·임대료 떨어뜨리는 기숙사 "내 집 앞엔 안돼"

주민들은 지역 안전, 공원 녹지 훼손 등의 명분을 내세워 기숙사 건립에 반대하고 있지만, 기숙사를 꺼리는 속내는 집값과 임대료 하락 때문으로 보인다.

연합행복기숙사가 들어서는 돈암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부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질까봐 기숙사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인근 O공인 관계자도 "기숙사가 들어서면 주변 임대료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며 "기숙사가 지어진다는 얘기가 나온 뒤로 학교 주변 원룸 공실이 늘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주변 집값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청년 기숙사는 가구수도 많지 않아 주변 임대차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 연합행복기숙사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민들이 단체 행동을 통해 불안감을 표출하며 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우리 사회가 낯선 사람에게 맹목적으로 불신을 갖게 되면서 쓰레기장 같은 혐오시설 뿐 아니라 대학생 기숙사 같은 공동시설까지 꺼리는데, 이는 지나친 이기주의"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갈 데도 없는데 범죄자처럼 몰리는 것이 억울하다.

한양대에 재학 중인 이재웅(25)씨는 "대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기숙사 건립을 반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자식을 둔 부모라면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승준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지역 주민들의 지나친 이기심 때문에 학생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며 "대학생 기숙사 5만실 추가 확대가 대선 공약으로 나왔으니, 기숙사 건립이 조금 더 빨리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