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성장 뒤엔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논란 꼬리표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 높아 한계

직원 5명으로 시작한 지방 임대주택 사업자에서 자산 7조원의 대기업으로. 광주·전남 지역의 대표 건설사인 호반건설이 최근 준 대기업(자산총액 5조원 이상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포함되면서 고속 성장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89년 창립된 이 회사는 불과 30년도 안 돼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전국 시공능력평가 13위에 올랐고, 자산총액은 7조원으로 재계 서열 47위다.

호반건설은 임대주택 사업을 하며 현금을 마련했는데, 최근에는 금호산업 인수전에도 뛰어드는 등 인수·합병(M&A)에서도 우량회사를 호시탐탐 노리며 성장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한 이면에는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 외환위기·공공택지 발판 삼아 ‘전국구’ 건설사로 도약

호반건설은 김상열(사진·56) 회장이 28세 때인 1989년 자본금 1억원, 직원 5명으로 첫발을 뗐다. 가정 형편 탓에 고등학교를 6년 만에 졸업한 김 회장은 어렵게 자금을 끌어모아 건설사를 세웠다. 광주 외곽에서 140여가구의 임대아파트 사업을 시작으로 조금씩 외연을 넓혔다.

호반건설의 성장판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건 IMF 외환위기 때다. 이 시기 지역 건설업체들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헐값으로 내놓은 각종 부동산을 김 회장이 사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호반리젠시빌’이라는 임대아파트를 내놓으면서 회사 이름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여세를 몰아 호반건설은 수도권 신도시 등의 택지를 사들여 자체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렸다.

다수의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알짜 택지를 낙찰받는 방식을 택해, 시간과 비용을 아끼면서 시장에 적절한 분양가로 공급할 수 있었다. 기반은 광주였지만, 이때부터 전국구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이 고수한 ‘분양률 90% 원칙’과 ‘무차입 경영’은 회사가 건실하게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미 분양한 단지의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지 않으면 아예 신규 분양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미분양 위험을 피했고, 빚을 최소화하는 경영 방식으로 곳간 또한 두둑하게 쌓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그룹 주력사인 호반건설의 지난해 기준 현금성 자산은 4457억원,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도 1조1316억원에 달한다. 부채비율은 18.7%에 불과하며, 계열사를 다 합한 부채비율도 46.3% 수준에 그친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종합건설업체의 평균 부채비율은 132.5%에 이른다.

호반건설을 비롯한 중견 건설사의 성장 밑바탕이 돼 온 공공택지 공급이 사실상 끝물인 만큼 주택사업 이외 다른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일부의 지적이 있는 것은 사실. 그러나 호반건설은 이미 수년 전부터 M&A 시장의 단골로 꼽히는 만큼 사업 다각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15년에는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가했고, 올해 들어선 한국종합기술과 SK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등의 인수를 검토했다. 2011년에는 KBC광주방송의 최대주주가 됐다.

◆ 벌떼 입찰 ‘눈총’…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호반건설이 공급한 ‘시흥 은계 호반 써밋플레이스’ 모델하우스를 찾은 방문객들이 아파트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초고속 성장의 이면엔 그림자도 있다. 다수의 계열사 및 관계사가 1개 택지 입찰에 참여해 이를 낙찰받은 뒤 다른 계열사에 넘겨주는 호반건설의 주택사업 방식은 ‘벌떼 입찰’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15년 정성호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호반건설은 한 번에 최대 23개 계열사를 동원해 96개 필지에 신청, 15개 필지를 따냈다. 이 중 5개 필지는 다른 계열사에 넘겼고, 비계열사에도 5개 필지를 전매했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8월부터 공동주택용지를 공급할 때 최근 3년 간 300가구 이상 주택건설실적 등 일정 조건을 갖춰야 1순위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했다. 기존에는 주택건설사업 등록자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율이 높은 편이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호반건설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 이외에도 부인과 세 자녀가 각자 회사를 맡아왔고, 이들 간 내부거래를 통해 그룹 전체가 성장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면 비상장사의 경우 총수 일가 지분이 20%가 넘는 대기업 계열사의 매출 내부거래 비율이 12% 이상이면서 매출이 200억원이 넘으면 공정거래법상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호반건설의 경우 김상열 회장이 최대주주(29.1%)인데, 지난해 매출의 31.1%(3677억원)가 호반건설산업(453억원)과 호반건설주택(448억원) 등 계열사로부터 나왔다. 이 밖에 호반건설산업(내부거래 비율 44.2%), 호반베르디움(13.7%) 등이 대상 요건을 충족한다.

특히 최근 그룹 계열사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며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호반건설주택(옛 호반비오토)의 경우 김 회장의 장남인 김대헌 상무가 최대주주(지분 85.7%)로, 내부거래를 통해 꾸준히 성장해 왔다. 2010년에는 내부거래 비율이 99%를 기록했을 정도다. 매출이 늘면서 이 비율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난해만 해도 43.6%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