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 강도(强度) 규제로 꼽히는 8·2 부동산 대책은 '펄펄 끓는 부동산 시장에 끼얹어진 찬물'에 비유된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서울 강남 재건축 가격이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단박에 하락 반전했고, 대책 이후 1개월간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대책 직전 1개월간 거래량의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거래 절벽' 아래에서는 강한 상승 에너지가 꿈틀대는 모습도 감지됐다. 지난주 강남권 모델하우스에는 수만명이 몰렸고, 서울 주요 지역 역세권 소형 아파트는 조용히 가격이 오르는 중이다.

부동산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은 향후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전망할까. 조선일보 주최로 9월 15~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리는 '2017 대한민국 부동산 트렌드쇼'에 참가 신청한 2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달 15~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리는 ‘2017 대한민국 부동산 트렌드쇼’는 국내 최대 규모 부동산 박람회다. 부동산과 연관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준비한 다양하고 유용한 부동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은 작년 부동산 트렌드쇼를 방문한 관람객들의 모습

67% "보합이나 상승 전망"

설문 참여자 다수는 '8·2 대책의 여파가 더는 확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하반기 집값 전망' 질문에 "지금보다 더 내릴 것"이라는 응답이 25%에 그쳤다. 응답자 셋 중 둘은 '보합 또는 상승'을 예상했다. 구체적으로는 '보합' 전망이 35%, '상승' 전망이 29%, '대폭 상승' 전망이 3%였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의지에 비춰봤을 때 긍정적 전망이 높게 나왔다는 평가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적어도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시장의 힘이 정부를 이길 것으로 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투자 심리도 위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1년 내 아파트 등 부동산을 살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64%가 "그럴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작년 조사(66%)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적극적으로 구입할 생각"이라고 답한 비율은 작년(28%)보다 오히려 늘어난 31%를 기록했다.

투자하고 싶은 부동산 상품으로는 최근 서울 강남권에서 '로또 아파트'라는 말까지 나오는 '신규 분양 아파트'가 40%로 가장 많았다. 분양가상한제 등이 도입되면 입지가 좋은 지역의 신규 분양 아파트에서 시세 차익이 클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중복 응답을 허용한 이 설문에서 2위는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차지했다. 이들 정비 사업 아파트는 8·2 대책의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응답자 38%의 선택을 받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부자들은 과거 경험을 통해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당장 내리더라도 5년, 10년 뒤에는 결국 오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신규 분양과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1·2위를 차지한 것은 결국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아파트는 3위(17%)였다.

실질적인 예금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월세가 나오는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상가나 소형 빌딩'이 16%, 오피스텔이 14%의 선택을 받아 4~5위를 차지했다.

저금리에 여전히 매력적인 부동산 투자

지속적인 저(低)금리는 투자 수요의 확대를 불러온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목적'을 묻는 질문에 '실제 거주 목적'이란 응답은 28%에 그쳤다. 투자자들의 목적은 '시세 차익'과 '고정적 현금 수입' 사이에서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자산 가치 상승효과를 얻기 위해”라는 응답이 34%, “임대 소득을 얻기 위해”라는 응답이 33%였다. 박원갑 위원은 “2~3년 전까지는 실수요자가 70%였는데, 낮은 예금금리가 시장 상황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투자 유망 지역을 묻는 질문(중복 응답 허용)에는 ‘강북의 약진(躍進)’이 두드러졌다. ‘서울 강남 4구(강남·강동·서초·송파구)’가 56%의 선택을 받았지만 ‘용산·성동·마포구 등 도심권 강북’도 46%를 기록했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이사는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로 강남권 ‘확실한 한 채’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와 함께 최근 강북 주요 지역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수요자들은 주택 구매의 걸림돌로 ‘거품 낀 집값’(34%)을 첫손에 꼽았다. 구매 의향과 무관하게 현재의 집값은 비싸다고 보는 것이다. 이어 ‘주택 구매 자금 마련’(32%)과 ‘정부의 과도한 규제’(22%), ‘불투명한 국내외 경제 상황’(10%) 등의 순이었다. 주택 구입 때 가장 고려하는 요소는 압도적인 1위가 ‘교통’(65%)이었고, 2위는 ‘가격’(14%)이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최근 규제에도 역세권 소형 아파트 값이 잘 떨어지지 않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자연환경’(12%), ‘학군’(7%)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과 금리, 공급 과잉 우려 등이 앞으로 부동산 경기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정부의 규제 의지가 강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힘이 이길 것”이라며 “다만 지방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의 공급 과잉에 따른 하락 추세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선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