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성 전 강릉영동대 총장·경영학 박사

경영학자로서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인간의 창의적 행동 능력은 수없이 다양한 경험이 누적되어야 형성될 수 있다고 했다. 광개토대왕에게 들어맞는 표현이다. 광개토대왕은 태자가 된 12세 때부터 백제 및 중국 후연과 벌인 전투에 몸소 여러 번 참가해 뛰어난 용병술과 전투 지휘 능력을 보이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소년 시절부터 영웅적 전쟁 수행 능력으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실전 경험과 위기 대처 능력이 전혀 없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도망만 다니던 초라한 선조, 인조와는 완전히 달랐다. 왕이 된 광개토대왕은 고구려의 번영을 위하여 압록강과 두만강 북쪽 나라들을 평정하여 영토를 넓히고 정복지 백성을 포용하면서 불모지를 개간하여 농토로 바꾸고 경제를 진흥해 백성이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게 했다. CEO 광개토대왕의 성공 전략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통해 전쟁 승리는 핵심 전략 무기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현대전에서 대표적 핵심 전략 무기는 핵무기이다. 광개토대왕의 핵심 전략 무기는 말과 철갑 무장이었다. 광개토대왕의 모든 장병은 철을 물고기 비늘같이 얇고 작게 만들어 단 철갑옷으로 무장했다. 현대의 방탄복이다. 비늘 철갑옷은 강도가 높고 유연성이 있어 화살이 뚫기 어렵고 가볍기 때문에 행동하기 자유로워 방어는 물론 공격에 탁월했다. 당시 세계 어디에도 그런 철갑 무장은 없었다. 약 500년 후 중세 유럽 기사들은 무거운 철갑을 통째로 착용하여 매우 둔해 광개토대왕의 철갑 기병보다 전투력이 약했다. 광개토대왕의 기병들은 말 위에서 고삐를 잡지 않고 두 손으로 활과 창을 잡고 앞뒤로 공격해 적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말도 같은 철갑옷으로 무장시켜 철갑 기병이라 했다.

핵심 전략 무기가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는 능력은 국가 통치자나 기업 경영자에게 사활이 달린 핵심 능력이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 기관은 영국 면직물 산업의 새로운 핵심 전략 무기가 되어 세계 최대인 인도 면직물 산업을 붕괴시키고 1차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1995년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조스는 종류는 많지만 배달이 쉬운 책을 핵심 전략 무기인 인터넷을 이용해 팔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이제 거의 모든 상품과 콘텐츠를 유통하며, 막대한 인터넷 경제 영토를 확보했다. 1974년 반도체 제조 기술이 모든 산업의 미래 핵심 전략 무기라는 것을 통찰하고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은 반도체 제조에 무모하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도전 14년 후 삼성 반도체는 흑자 경영에 성공했고,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1위를 점하고 있다.

광개토대왕은 기병을 철갑 기병과 가볍게 무장한 경기병으로 나누고 보병은 환도수(칼 쓰는 부대), 창수(창 부대), 부월수(도끼 부대)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활 쏘는 궁수를 따로 편성하였다. 즉 현대 군대 편제와 같이 여러 전문 기능의 병과(兵科) 부대로 나누어 운용했다. 적의 공격 형태에 따라 여러 기능의 부대가 각각 다르게 작전하면서도 모든 부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동시에 전투에 참여하는 동시 병렬 작전을 구사했다. 광개토대왕은 환도수, 창수들이 방패를 들고 선두에 서게 하고 창수들 사이사이에 부월수를 배치했다. 같은 선상에 궁수를, 뒤에는 경기병과 철갑 기병을 배치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뒤에 있던 기동력이 빠른 경기병들이 앞으로 나아가 선제공격하여 적을 혼란에 빠뜨리면 곧 보병인 창수와 환도수도 동시에 나아가 적을 집중 공격했다. 이때 부월수도 함께 보병을 지원 공격했다. 그와 동시에 궁수는 적 후방에 활을 쏘아 무력화하는데 적들도 화살로 맞서면 철갑 기병이 나아가 적의 화살 공격을 막아내어 궁수와 보병이 계속 전투를 하도록 엄호해 주었다. 광개토대왕 군대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백제의 관미성을 육군과 해군의 동시 병렬로 20일간 공격해 함락했다.

현대 기업들은 1980년대에야 제품 구상 단계부터 설계, 생산, 마케팅을 동시에 진행하는 동시 병렬(concurrent engineering) 개념을 개발했다. 애덤 스미스의 분업 이론에 따라 발달된 직렬 업무 처리의 문제점을 인식한 것이다. 크라이슬러 자동차는 부품 공급업자도 참여시킨 동시 병렬 방법으로 신차를 개발해 31개월 만에 1만달러 이하의 자동차 네온(Neon)을 개발, 1993년에 출시했다. 당시 자동차 업계의 신기록이었다. 1990년에 와서야 인터넷 기술 등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직렬 업무 처리를 동시 병렬 업무 처리로 전환하면서 조직의 모든 불필요한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혁신적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 개념이 개발됐고, 지금도 많은 기업이 활용하고 있다. 광개토대왕은 1600년 전에 동시 병렬 개념으로 전투 시스템을 갖춰 소수 정예 병력으로 세계 최고 전투력의 중국과 북아시아 유목민 기마 부대들을 격파했다.

조직 경영의 궁극적 목적은 조직을 영원히 존속시키는 것이다. 경영자 사망 후에도 조직이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사망하는 경영자가 가장 위대한 경영자다. 412년 39세에 사망한 광개토대왕은 백성이 부유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강력하고 안정된 대제국을 건설해 아들 장수왕에게 물려주었다. 그 뒤 고구려는 256년 동안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자 백성이 편안하게 살게 되었고, 나라는 부강하고 풍족하며 온갖 곡식이 가득 익었다(號爲永樂大王. 恩澤洽于皇天 武威振被四海. 掃除○○ 庶寧其業國富民殷 五穀豊熟)”고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대왕의 정벌 사업은 백성들의 평안과 부유한 생업을 위해 백성을 괴롭히는 인접 국가들을 제압하기 위함이었지, 정복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다. 광개토대왕은 적군 포로도 포용했다. 정복지 백성도 자유롭게 개간하도록 해 농업을 왕성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경제 부흥이 일어나 정복지 백성들의 삶의 질도 향상되는 동반 성장의 영토 M&A(인수 합병)를 성공시켰다. 이러한 M&A는 현대 기업 경영에도 매우 중요하다.

180곳이 넘는 기업을 적극적으로 흡수한 구글은 2005년 5000만달러로 안드로이드라는 작은 소프트웨어 기업을 M&A했다. 그 뒤 휴대전화용 개방형 운영 시스템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개발, 2007년 11월 공개했다. 그 후 구글은 안드로이드로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운영 시스템을 장악하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PC 운영 시스템 윈도를 누르고 있다. 현재 운영 시스템 시장점유율 약 40%로 1위가 되었다. 광개토대왕식의 동반 성장 M&A의 대표적 사례이다.

기업들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하려면 신속한 신기술 개발이 필수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원하는 모든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요한 신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제값을 주고 M&A하여 빨리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동반 성장 M&A가 아니면 핵심 인력은 떠난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황제 이외에는 독자 연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연호는 황제의 통치 시기를 나타내 황제의 통치 철학을 의미한다. 광개토대왕은 우리 조상의 국가에서 처음으로 독자 연호 영락(永樂)을 사용하였다. 영락은 백성들과 영원한 영화를 누리는 고구려라는 광개토대왕의 통치 철학을 반영한다. 광개토대왕은 즉위 18년에 왕자 거련을 태자로 삼은 지 4년 후 사망했다. 왕위를 계승한 장수왕은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사후 256년간 세계 최강 대국 중국의 30만 대군을 여러 번 격파하며 자웅을 겨루었던 초강국이었다. 정복 제왕으로 알려졌던 광개토대왕은 21세기 기업 경영 관점에서도 위대한 경영자였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