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연구자들과 법학·윤리학자들의 견해 차만 느낀 답답한 자리였습니다. 그동안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치고는 논의 수준도 초보적이었습니다.”

30일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이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생명윤리 정책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한 연구자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 걸음만 한 공청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 날 공청회는 올해 3월 구성된 ‘4차 산업혁명과 생명윤리’ 민관 협의체가 유전체 기술,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 관련 정책적 이슈에 대한 사회·윤리적 문제를 검토하고 대응방안을 발표하는 한편,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지난 30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생명윤리법 관련 공청회 현장.

공청회에 참석한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은 공청회 내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공청회를 듣던 한 청중은 “무언가가 결정돼서 발표하고 시민들하고 토론하는 자리인 줄 알고 왔는데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솔직히 민관협의체에서 8차례나 논의를 했다는데 무엇을 논의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첨단 생명과학기술 연구 추진방향 및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진행된 오전 세션의 결론은 ‘좀 더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유전체 교정이나 배아 연구, 미토콘드리아 치환술 등 첨단 생명과학 기술에 대한 과학성을 입증하고 윤리적인 문제도 담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마무리됐습니다.

생명윤리법 개정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등장하고 있지만, 규제로 인해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연구 역량과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 날 패널로 참석한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8월 초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인간 배아에서 유전성 심장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연구 성과를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또다른 연구자인 강은주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작년 말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돌연변이를 막는 ‘미토콘드리아 치환술’과 관련된 연구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연구와 임상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내 생명윤리법이 진보하는 과학기술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 교정의 경우 치료법이 없거나 기존 치료법에 비해 현저히 치료효과가 높을 것으로 예측될 때만 연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은 면밀한 분석과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연구만큼은 허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국내 생명윤리법 정책 논의가 공회전하는 것과 달리 영국에서는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작년 2월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체 교정 연구를 허용했습니다. 중국은 특별한 규제 없이 인간배아 유전체 교정 연구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보수적인 일본도 최근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체 교정 불허 입장을 바꿔 기초연구에 한해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연구와 임상 허용에 따르는 윤리적 문제와 책임 범위 등에 대한 밀도 있는 논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추세에 따라가지는 못할지언정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논의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은 분명 아쉬운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