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만에 북미 대륙을 관통한 개기일식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미국은 다시 새로운 우주 이벤트에 빠져 있다. 무인(無人) 우주탐사선 보이저(Voyager) 1·2호의 발사 4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보이저 1·2호에 실렸던 금제(金製) 음반과 똑같은 한정판 제품이 나온다는 소식이다. NBC방송 등 미국 주요 매체들은 지난 20일 "금제 음반에 실린 각종 자연의 소리와 클래식 음악들을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음반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에 선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금제 음반은 만에 하나 우주에서 조우하게 될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와 인류를 알리기 위해 각종 그림과 클래식 음악, 한국어를 포함한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등이 담겨 있다. 미국 오즈마 레코드사는 발사 당시 보이저호에 실린 이 음반을 2장의 CD와 96페이지짜리 양장본 책으로 만들어 50달러 가격에 내놓았다. 이 제품은 선주문을 받기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수만 명이 구매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계를 벗어나는 우주 탐사선들

목성 중력으로 연료 소모 않고 가속

사람들이 개기일식 못지않게 보이저 1·2호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건 이 두 탐사선이 지난 40년 동안 우주 탐사의 역사를 새로 써왔기 때문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1977년 8월 20일 2호, 이어 9월 5일 보이저 1호를 발사했다. 당시 176년 만에 이뤄진 태양계 행성 직렬에 맞춰 정해졌다. 행성이 한 줄로 정렬될 경우 최소의 연료로 많은 태양계 행성들을 효율적으로 탐사할 수 있다. 원래 1·2호를 같이 발사하기로 했으나 1호에 기술적 문제가 생겨 2호를 먼저 발사했다.

보이저 1·2호는 다른 탐사선과 달리 태양계 바깥 탐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최신 기술이던 스윙바이(swing by·중력 도움) 항법을 사용했다. 이 항법은 행성의 중력이 당기는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가속했다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때만 엔진을 작동하는 방식이다. 보이저는 이 기법을 이용해 목성 중력에서 추가 연료 소모 없이 시속 6만km의 속도 증가 효과를 얻었다.

보이저 1호는 기술적 문제로 2호보다 늦게 발사됐지만 단축 경로를 거쳐 2호보다 먼저 목성 궤도에 도착했다. 1979년 보이저 1호는 당시만 해도 미지의 행성이었던 목성의 대적점(大赤點·거대 폭풍)과 대기를 처음으로 촬영했다. 이듬해에는 토성에서 12만㎞ 떨어진 지점에 접근해 토성의 고리가 1000개 이상의 띠로 이뤄졌고 고리 사이에는 큰 틈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보이저 1·2호는 시간차를 두고 나란히 목성, 토성을 지나간 이후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1호는 토성을 거쳐 태양계 밖으로 향했고, 2호는 천왕성과 혜왕성까지 탐사한 뒤 태양계 밖을 향했다.

원자력 전지로 2020년까지 통신 유지

보이저 1·2호는 지금껏 인류가 띄운 우주선 중 가장 먼 거리를 여행하고 있다. 2013년엔 태양계를 벗어나는 데 성공해 현재 태양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가 미치는 범위 밖에서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보이저 1호는 8월 현재 지구로부터 207억3000만㎞, 2호는 지구로부터 170억7000만㎞ 떨어져 있다. 시간당 6만㎞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보이저 1호가 점점 멀어지면서 태양계 밖에서 수집한 정보를 지구로 보내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현재 보이저가 지구까지 신호를 보내는 데에는 20시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이저가 다른 우주선과 달리 태양에너지가 약한 먼 우주에서도 작동하는 것은 태양전지가 아니라 3개의 원자력 전지로부터 전력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보이저 1호는 2020년까지는 지구와의 통신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2025년 이후에는 전력 부족으로 지구와의 통신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게 된다. 그래도 보이저의 항해는 그 후로도 계속된다.

보이저 탐사선의 신호 전달 시간이 하루 시간만큼이나 길어지면서 실시간으로 탐사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1·2호는 현재 어떤 풍경을 접하고 있을까. 미국 웨슬리언대 연구팀은 올해 1월 허블망원경을 이용해 보이저가 향후 날아갈 경로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보이저의 항로 주변에 보이는 별에서 나온 에너지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분석 결과 보이저 1호의 항로에는 별들 사이에 가스나 먼지가 밀집된 지역을 일컫는 성간구름이 한두 군데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호의 항로에는 최소 2군데 이상의 성간구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줄리아 제처리 웨슬리언대 연구원은 "보이저 1, 2호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복잡한 성간 환경으로 이동하는 중"이라며 "관측 결과를 분석해 보면 향후 태양계 밖 탐사 과정에서 직면할 문제들을 예측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계를 막 벗어난 보이저 1호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될 천체는 혜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오르트 구름(Oort cloud)으로 불리는 혜성의 기원지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도 300년 후에나 도달할 수 있다. NASA는 보이저가 이 오르트 구름 지역을 빠져나가는 데만도 약 3만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4만년 후에는 기린자리의 행성 'AC+79 3888'에서 1.6광년(약 15조1400억㎞) 떨어진 곳까지 비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때까지도 보이저 1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거의 텅 빈 우주를 나아갈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상한다. 과연 언제쯤 보이저에 실린 오리지널 음반을 들어볼 외계인이 나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