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설치기사 정모씨는 무더웠던 올해 여름 에어컨 알루미늄 배관 수리에 진땀을 뺐다. 에어컨에서 냉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냉매가스가 새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 알루미늄 배관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수리기사들은 알루미늄 배관이 용접하기가 까다로운데다 수은 등 몸에 좋지 않은 물질까지 나온다며 기피한다.
무엇보다 알루미늄 배관은 수명이 짧아 에어컨 고장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에어컨 고장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소비자들도 덩달아 피해를 입고 있다. 정씨는 "4~5년 전 에어컨 제조업체들이 단가를 낮추겠다며 에어컨 배관을 구리에서 알루미늄으로 바꾼 뒤 고장 신고 접수가 많아졌다"고 했다.
25일 비철금속업계와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2008년 1톤당 2770달러로 최저치를 기록했던 구리 가격은 2011년 1톤당 1만148달러로 266%나 올랐다.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등 국내 에어컨 제조업체들은 구리 가격이 이처럼 비싸지자 2010~2011년 무렵부터 제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알루미늄 배관을 쓰기 시작했다. 구리 가격이 급등하기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 배관으로는 열전도성, 내구성, 부식성 등이 좋은 구리 소재를 사용했다. 알루미늄 가격은 구리 가격의 30% 수준이다.
알루미늄 배관을 사용하면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이유는 현재의 에어컨 구조상 실외기 연결 등을 위해 성질이 다른 구리와 용접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배관에 알루미늄만 사용할 경우 실외기 등 기계와 연결하기 위해 플레어 너트(flare nut)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배관 끝을 살짝 벌려야 하는데, 이 때 두께가 얇은 알루미늄은 쉽게 찢어진다. 알루미늄은 용접도 쉽지 않기 때문에 배관 길이를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그래서 에어컨에 사용하는 대부분 알루미늄 배관은 양쪽 끝부분만 30cm정도 구리를 결합해 사용한다. 구리는 플레어 너트 결합 과정에서 손상이 없을 뿐 아니라 용접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알루미늄과 구리의 접합 부분이 녹슬거나 새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 다른 소재를 연결하면 전위(물질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면서 전위차 부식이 발생하는데, 특히 구리와 알루미늄의 전위차는 큰 편이다.
비철금속업계 관계자는 "알루미늄과 구리를 접합해 쓰면 시간이 지나면서 용접부에서 부식이 발생해 누수가 생길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두 가지 다른 소재를 연결해서 쓰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사용방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게다가 알루미늄 배관은 외관을 구리 빛깔로 코팅하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육안으로 구리 배관과 구분하기 어렵다. 일부 에어컨 설치기사들은 이를 악용해 구리 배관 설치비를 받고, 값싼 알루미늄 배관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에어컨이 고장 나도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수리기사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에어컨 제조업체들도 알루미늄 배관의 내구성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장에 있는 에어컨 수리기사들에 알루미늄 배관을 자주 구부렸다가 펴지 말라고 조언할 정도다. 실제로 알루미늄 배관은 몇 번 구부렸다가 펴면 바로 금이 생긴다. 이 때문에 LG전자는 올해부터 출시한 에어컨에 알루미늄 배관 대신 구리 배관을 사용하고 있다. 동부대우전자나 중국 에어컨 제조업체들은 경쟁사와 달리 구리 배관을 쓴다는 것을 광고 문구로 활용할 정도다.
삼성전자는 최근 출시한 제품의 배관 전체를 알루미늄으로만 만든 뒤 '스마트링크'라고 부르는 접합재를 쓰게 한다. 알루미늄과 구리의 결합으로 인한 부식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캐리어와 대유위니아도 아직 알루미늄 배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