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학회 '소득주도성장론의 이론적, 정책적 쟁점' 토론회
주상영 건국대 교수 "임금주도 대 이윤주도 양극화 빠지면 안돼"

주상영 건국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론의 거시경제적 정합성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에서 비판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3~5년 정도 시간 내에서 정책적 대안을 내놓는 방법론 정도로 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지나치게 임금 상승과 재분배에 매몰될 경우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도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 기조로 삼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대표적인 진보경제학회인 사회경제학회 토론회에서 “재분배와 소득주도성장에 매몰될 경우 성공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는 24일 사회경제학회가 서울 필동 동국대에서 개최한 ‘소득주도성장론의 이론적, 정책적 쟁점’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 논문에서 이 같이 말했다. 주 교수는 “기업구조조정이나 공공부문 개혁, 증세 논의 등 경제 효율성 향상 정책이 없을 경우 금융위기 발생, 불평등 심화, 수요 부족의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는 ‘직격탄’ 수준의 지적까지 제기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경제성장은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으로 여전히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주 교수는 설명했다. 결국 무리하게 임금 상승과 재분배에만 매몰될 경우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해칠 여지가 높다는 얘기다.

주 교수는 금융 및 거시경제학이 전문 분야인 진보 성향 학자다. 민주당이 개최한 소득주도성장 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석하기도 했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진보경제학계 내부에서 비판적인 분석이 제기된 것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가 된 2015년부터 경제 관련 당론이 됐다. 당시 부경대 교수였던 홍장표 교수가 관련 논문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민주당에 이를 소개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그는 여기서 중소기업 위주의 성장 모델과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제고를 정책의 양 대 축으로 제시했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가 제시한 소득주도성장의 기본 방향.

소득주도성장론은 조앤 로빈슨, 미하우 칼레츠키 등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포스트케인지언 학파의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를 기반으로 한다. 포스트케인지언으로 분류되는 경제학자들은 스펙트럼이 넓지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경제는 수요결정적(demand-determined)이기 때문에 ‘유효수요’를 늘리는 게 경제성장의 관건이다. ▲장기에서는 생산성 등 공급요인이 중요하다고 보는 일반적인 케인즈주의와 달리 유효수요는 장기 경제 성과를 좌우한다. ▲기업 투자는 경제 내의 저축 규모와 독립적으로, 경영자나 기업의 의사결정에 의해 이뤄진다.

한마디로 경제가 수요주도적(demand-led)이기 때문에 실질임금이 상승하면 소비가 증가하고, 그 결과 노동수요가 증가해 실업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또 포스트케인지언들은 ‘시장 메커니즘’이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아가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바람직한 임금 및 투자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 개입은 바람직하다. 홍 경제수석은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노동 소득이 유효수요와 생산성을 증진시키는 거시경제적 이득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화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소득분배 개선이 큰 폭의 소비 증가를 유발하며, 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며 “자본친화적 분배정책에서 노동친화적 분배정책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가 정리한 경제성장론에 대한 각 진영별 논리. 주 교수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임금 상승과 소득 재분배 뿐만 아니라 생산성 제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교수의 논문은 홍장표 수석으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론의 논리적 맹점을 여러 각도에서 비판했다. 먼저 ‘임금’을 정책의 궁극적 목적이자, 핵심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 교수는 주장했다. “기존 경제학의 성장이론은 무수히 많은 실증분석에 의해 검증을 받은 반면, 임금주도성장론을 지지하는 실증적 근거는 약한 편”이라는 지적이다.

또 그는 이론적인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임금주도 경제’와 ‘이윤주도 경제’를 나누어 임금주도 경제의 경우 소득 제고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임금주도성장론에 논리적 맹점이 많다는 것이다. 먼저 “임금 상승이 소비를 제고하더라도 투자와 순수출에 대한 부정적 효과가 소비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압도하면 이윤주도형 경제체제가 된다”며 “수출비중이 높은 개방경제일수록 그러하다”고 근거를 들었다. 또 임금와 다른 경제 변수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주 교수는 지적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임금 몫을 외생적(다른 경제 변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외부에서 충격을 가해 다른 경제 변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임금 주도 성장을 할 경우 경제 주체들의 행동이 바뀌기 때문에 결국 경제 모형의 가정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 교수의 비판은 2017년 3월 ‘리뷰오브케인지언이코노믹스(Review of Keynesian Economics)’에서 피터 스콧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교수가 발표한 ‘임금주도 성장론의 약점(Weakness of ‘wage-led growth’)’ 논문과 궤를 같이 한다. 이 논문에서 스콧 교수는 “임금주도형 경제와 이윤주도형 경제를 나누고 임금을 조절해 이윤몫을 조절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력이 떨어져 생산적(helpful)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스콧 교수는 “임금 변화와 총수요 변화의 인과관계를 예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과 상품시장의 연관관계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경제 정책의 기반으로 삼기에는 이론적인 정합성이 떨어지고 실증 분석을 통해 검증되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이 시각에서 주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2020년 최저임금 시급 1만원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정책 방향은 옳지만 2020년 최저임금 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의 준수 여부는 향후 2~3년간 시장의 반응을 보면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동시간 축소와 실업 증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최저임금만 앞서 나가는 것은 조화롭지 않다”고 덧붙였다. 고용증대세제가 기업에 대한 지원에 편중돼 있어 어떻게 효과를 낼지 불확실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과잉 보호 우려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주 교수는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구호에 매몰되지 말고 여러 정책 변수를 감안하면서 노동 소득 제고 및 재분배 기능 강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장기침체 예방을 위한 구조적 총수요 확대 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할 때 ‘수요주도의 중기성장’ 개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본다”는 얘기다. 인구 고령화, 출산율 감소, 총요소생산성(TFP) 저하 등으로 구조적 장기침체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정책을 통해 구조 개혁을 돕는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은 어디까지나 내수성장전략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며, 한국 같이 시장규모가 작은 국가에서 수출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