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시장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바람이 투자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중소벤처기업부가 신설됐고, 로봇·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떠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자산운용사들은 앞다퉈 '4차 산업혁명'을 키워드로 내세운 펀드를 출시하고 있다. 과거엔 IT(정보기술) 산업 전반에 투자하는 상품 일색이었다면, 올 들어선 4차 산업혁명 각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 4차 산업 관련주(株)뿐만 아니라 채권 등에 투자하는 펀드도 출시돼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빅데이터, 3D 프린팅, 로봇, 드론 등 관련 기업 주가가 상승세를 타면서 이런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 수익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연초 이후 5000억원… 펀드 수익률 20% 훌쩍 넘어

4차 산업혁명 투자의 기본은 주식 직접 투자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반 기술을 대부분 미국 기업이 선점하고 있는 만큼 4차 산업혁명 대표주(株)도 미국 증시에 많다. 해외 직접 투자를 망설이는 다수의 국내 투자자들은 이런 글로벌 유망 기업에 투자하는 국내 펀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직접 투자는 위험 부담이 큰 편이지만, 펀드로 분산 투자하면 개별 종목이 아닌 산업·기술 자체에 투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관련 펀드로 분류되는 국내 14개 펀드에 올 들어 5200억원 넘는 돈이 순유입됐다. 연초 이후 국내 공모형 주식 펀드에서 5조2000원 넘게 빠져나간 것과 비교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미국의 애플,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 등 전 세계 IT 기업에 투자하는 피델리티자산운용의 '피델리티 글로벌 테크놀로지'에 2000억원이 몰렸다. 글로벌 로봇 관련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삼성자산운용의 '삼성 픽테 로보틱스'도 올 들어 850억원 이상 몸집을 불렸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최근 출시된 신생 펀드들의 인기다. 지난 5월 KTB자산운용이 출시한 'KTB글로벌4차산업1등주'는 출시 석 달 만에 400억원 넘는 자금이 몰렸다. 미국과 홍콩, 중국 본토에서 4차 산업혁명 각 분야 선두 기업 주식에 주로 투자해 분산 투자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강점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펀드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동부 글로벌 자율주행'의 경우, 글로벌 자율주행차 관련주에 집중 투자한다. 또 'NH-Amundi 4차산업혁명30'은 자산의 30% 이하를 4차 산업혁명 관련 종목에 투자하고 50% 이상은 국공채 등 우량 채권에 투자해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추구하는 채권혼합형 펀드다.

수익률 성적표는 우수한 편이다. 피델리티글로벌테크놀로지와 삼성픽테로보틱스는 물론 '미래에셋글로벌그로스'도 최근 1년 수익률이 20%가 넘는다. 이 펀드는 전 세계 IT 기업 1만5000여 개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35개 기준으로 분류하고, 실적과 재무지표를 바탕으로 포트폴리오 편입 여부를 결정한다. 이 밖에 작년 12월 출시된 '미래에셋G2이노베이터'도 G2(미국·중국)의 혁신 기업에 투자하면서 연초 이후 수익률 34%를 달성했다.

수수료 싸고 거래 간편한 ETF 상장, 랩 상품도 인기

증시에 상장돼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는 ETF(상장지수펀드)의 출시도 눈에 띈다. ETF는 소액으로 간편하게 글로벌 기업에 분산 투자하면서도 보수가 연 0.3~0.4%로 일반 펀드의 5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자산운용사 간 경쟁이 매우 치열해 이달에만 4차 산업혁명 관련 ETF 상품 4개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됐다. 지난 1일 '미래에셋 TIGER 글로벌 4차산업 혁신기술 ETF'를 시작으로 'KBSTAR 글로벌 4차산업 IT ETF', '삼성 KODEX 글로벌 4차산업 로보틱스 ETF', '킨덱스 S&P 아시아 TOP50'이 차례로 상장됐다.

주식과 채권,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계좌에 넣어 운용할 수 있는 증권사 랩(Wrap) 상품도 인기다.

하나금융투자는 작년 6월 글로벌 4차 산업혁명 수혜주에 집중 투자하는 '4차산업혁명1등주' 랩을 출시했다. 누적 수익률 40%를 넘어섰고, 연초 이후 수익률도 30%가 넘는다. 한국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도 4차 산업혁명에 투자하는 랩 상품을 선보였다.

"자신만의 투자 기준 정하고 꼼꼼히 살펴야"

4차 산업혁명에 투자하는 상품이 워낙 다양해진 만큼 전문가들은 "자신만의 기준을 정해 투자 상품을 선별하라"고 조언한다. 테마에 현혹되지 말고 어떤 업종, 어떤 종목에 투자 비중을 두고 있는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투자 종목에 확신이 있고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이 있다면 글로벌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좋지만, 시장 평균 수익률 정도 추구하는 안전한 분산 투자를 원한다면 ETF가 유리하다. 다만 ETF를 고를 때는 ETF가 추종하는 기초지수의 정보를 먼저 파악해야 하고, 환(換)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글로벌 증시에 상장된 ETF는 해외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배당소득세와 종합소득세 대신 양도소득세(22%)만 내면 되는 만큼 거액을 투자하려는 자산가에게 유리하다. 반면 소액 투자자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해외주식형펀드계좌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을 통해 국내 상장 ETF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적당한 수준의 투자 비용을 감수할 여력이 있다면 랩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랩은 대개 최소 가입 금액 5000만원 수준에 계약 기간은 기본 1년인데, 선취수수료가 계약 금액 기준 1%, 후취수수료가 연 1.5% 수준으로 높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의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승자 기업과 패자 기업 간 격차가 극명하게 벌어질 수 있는 만큼 투자 상품의 위험도도 높다. "4차 산업혁명의 개념 자체가 모호한데, 사실상 주로 글로벌 대형 IT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들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윤주영 미래에셋자산운용 ETF운용본부장은 "트렌드 때문에 상품이 급증하고 있는데, 결국 자신의 투자 철학에 맞는 상품을 고르는 것이 제1원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