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 예산을 갑자기 많이 줄이면 지방 경제가 무너질 위험이 있어요. 저희 같은 지방 건설사들은 일감이 떨어져 버티기가 어렵고요. 건설 현장에서 일해서 겨우 먹고사는 사람들 생계에도 치명타가 됩니다."(지방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

정부가 복지 예산 마련을 위해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을 의미하는 SOC 분야 예산을 대거 삭감하겠다고 밝히자, 부동산 경기가 경착륙하고 소비와 고용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건설·토목업계는 8·2부동산 대책으로 주택 시장이 얼어붙은 마당에 SOC 투자 축소로 악재가 겹쳤다고 아우성이다.

◇SOC 예산 20% 싹둑 자를 듯

21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SOC 예산을 올해(22조1000억원)보다 20%가량 적은 17~18조원 안팎으로 편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가 올해보다 15.5% 적은 18조5000억원을 요청했는데, 그보다 더 많이 깎아 삭감 폭이 역대 최고치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대신 복지 예산은 올해 129조5000억원에서 최소 141조원 이상으로 대거 늘릴 예정이다.

SOC 투자를 줄이려는 주된 근거로 정부는 그동안 건설한 도로·철도가 충분히 누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14년 기준으로 국토 면적 대비 길이 비율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 고속도로 5위, 철도 18위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일본이 1990년대 경기를 살린다고 SOC에 투자를 늘렸다가 효과는 얻지 못하고 재정 상태만 나빠졌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동산 경기 경착륙 우려

그러나 한꺼번에 SOC를 20% 안팎으로 삭감하는 것은 부동산 경기 경착륙 위험을 높이는 선택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GDP(국내총생산)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이른다. 특히 건설업이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산업이라 갑작스럽게 SOC가 줄어들면 193만명에 달하는 국내 건설업 종사자가 줄어들고, 그 결과 가계소득 감소와 소비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취업유발계수(10억원의 수요 창출 시 고용 인원)가 건설업이 13.8명으로 제조업(8.6명)보다 훨씬 많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SOC 투자가 1조원 줄어들 때마다 고용이 1만4000명씩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작년과 올해 상반기 경기 부양의 주역을 맡던 주택 경기 상승 효과가 8·2대책을 계기로 내년까지 사실상 사라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SOC를 너무 많이 줄이면 경기 경착륙을 가져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SOC 투자가 줄어 공사 건수나 공사비가 줄어들면 대형 건설사가 협력업체에 손실을 부담시키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특히 지방은 수도권보다 건설업 비중이 크기 때문에 지역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민자 사업이었던 서울-세종 고속도로를 재정 사업으로 전환시키겠다고 밝히는 등 민자 사업을 줄이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SOC 투자를 줄이겠다고 천명한 것은 건설업계 일감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선진국도 SOC 투자는 계속한다

SOC 투자를 구시대적인 경기 부양 방식으로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새 도로, 항만 등이 건설되면 물류비용이 줄어들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돼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입각해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SOC 투자를 약속하는 등 선진국이라고 해서 반드시 SOC 투자를 줄인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SOC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인 싱가포르, 스위스, 홍콩 등도 꾸준히 SOC 투자를 통해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말했다.

SOC 투자와 복지 확충을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태황 명지대 교수는 "SOC를 확충해 OECD 최장 수준인 출퇴근 시간을 줄여주는 것도 생활 편의를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엄연히 복지 정책"이라고 말했다. 김강수 KDI 국토·인프라연구부장은 "노후 상하수도를 개량해서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등 친환경적이고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SOC 투자는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다"며 "낡은 도로, 철도의 보수에 투자를 게을리하면 사고 위험이 높아질 뿐 아니라 미래에는 개량하기 위한 비용이 더 들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