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위 오작동과 모자이크 현상 극복한 첫 사례
"인간 배아 교정으로 유전 질환 대물림하지 않을 확률 22.4%포인트나 높여"

한미 공동연구진이 인간 배아에서 유전 질환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 교정, 유전자 가위의 유전질환 치료 가능성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정상인의 난자(왼쪽)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효소가 녹은 수용액과 정자를 함께 주입하는 모습.

이번 연구는 국내 유전자가위 기술 권위자인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체세포 복제 세계적인 권위자인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OHSU)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교수가 주도했다. 연구 논문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 2일자(현지시간)에 게재됐다.

유전자가위는 변이된 유전자를 잘라내고 정상 유전자를 붙이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특정 유전자에만 결합하는 효소를 이용해 원하는 유전자를 잘라낸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1세대(징크핑거), 2세대(탈렌), 3세대(크리스퍼)로 나뉘는데 3세대인 크리스퍼 Cas9 유전자가위는 기존 기술에 비해 간편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희귀 유전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는 연구가 전세계에서 진행중이다.

◆ 유전자가위로 유전 질환 정밀 치료 가능성 제시

김진수 단장 연구팀과 미탈리포프 교수 연구진은 인구 5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비후성 심근증을 일으키는 변이 유전자 ‘MYBPC3’를 교정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미탈리포프 교수가 직접 김진수 단장 연구팀에 연구를 제안해 연구가 진행됐다.

비후성 심근증은 MYBPC3 유전자가 망가지거나 변형되면 발생하는 유전질환으로 그림처럼 좌심실벽이 두꺼워져 심장이 제기능을 못한다.

비후성 심근증은 좌심실 벽이 두꺼워지는 대표적인 심장 질환으로 젊은 나이에 돌연사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평생 격한 운동을 삼가야 한다. 부모 중 한 명이 MYBPC3 변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 자녀는 50% 확률로 유전된다.

김진수 단장 연구팀은 비후성 심근증을 일으키는 변이 유전자인 ‘MYBPC3’만을 잘라낼 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제작, 미탈리포프 교수 연구팀에 전달했다. 미탈리포프 교수 연구진은 MYBPC3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환자에게 얻은 정자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정상인의 난자에 동시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유전자가위와 함께 주입한 환자의 정자와 수정한 배아에서 MYBPC3 변이 유전자가 생기지 않을 확률이 50%에서 72.4%로 늘어났다. 또 유전자가위를 주입한 배아와 주입하지 않은 배아의 발달을 비교한 결과 착상 직전 배아인 ‘배반포’ 단계까지 체외에서 정상적으로 발달됨을 확인했다.

김진수 단장(사진)은 "시험관 아기를 만들 때 유전질환이 없는 배아를 착상시킬 확률을 22.4%포인트 늘린 것으로 임상적으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유전자 변이로 인한 유전질환이 1만 개 이상으로 환자수는 수백만 명에 달하기 때문에 이번 연구의 파급 효과는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인간 배아에서 유전자 가위 오작동 극복한 첫 연구

연구진의 이번 연구는 인간 배아에서 유전자 교정을 할 때 유전자가위 오작동을 극복한 첫 연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중국 연구진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인간 배아에서 유전질환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교정하려는 연구를 시도했다. 하지만 정자와 난자가 이미 수정된 수정란에 유전자가위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 변이 유전자가 아닌 다른 유전자를 자르거나 교정된 유전자와 교정되지 않은 유전자가 섞이는 ‘모자이크’ 현상이 발생하는 한계가 있었다.

김진수 단장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유전자가위 오작동과 모자이크 현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절단 유전체 시퀀싱’ 기법을 활용했다. 이 기술은 배아의 전체 유전체에서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유전자 부위를 선별해 오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이다. 분석 결과 오작동이나 모자이크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인간 배아 유전자 교정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연구에 참여한 박상욱 IBS 연구위원(사진)은 "정상인 난자에 환자의 정자와 유전자가위를 동시에 주입하는 방식을 적용해 이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의 실제 실험은 미국 OHSU 연구진이 진행했다. 국내에서는 인간 배아를 이용한 유전자 교정 연구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국립과학원(NAS)과 국립의학원(NAM)이 2017년 2월 유전적 난치병 치료 목적 기초연구를 위한 인간 배아와 생식세포 변경 허용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실험이 진행됐다.

김진수 단장은 “다른 변이 유전자에 대한 유전자 교정을 같은 방식으로 시도했을 때 유전자 교정 성공률이 어느 정도일지는 후속 연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며 “이번 연구는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인간 배아에서 유전자 가위의 효과와 정확성을 입증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