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적 통화정책 기조 부작용 누증"
"비관적 성장전망에 소비 위축·물가상승 압력 낮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현재 통화정책을 계속 유지했을 때 최대 위험으로 가계부채 증가를 꼽았다.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되더라도 거시건전성 확보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 회복 속도는 더딘 것으로 평가됐고, 물가는 일본식 장기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도 나왔다.

한은이 1일 공개한 2017년 제13차 금통위 의사록(7월 13일 개최)에 따르면 여러 금통위원들이 연 1.25%의 기준금리를 계속 유지했을 때 예상되는 위험요인으로 가계부채를 꼽았다. 현재 기준금리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마이너스다. 올해 물가상승률 예상치 1.9%를 감안하면 -0.65%. 한은이 실질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놓는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년만이다. 경기가 회복 국면인데도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이면, 대출 금리도 그만큼 낮아져 자산 가격 앙등과 가계부채 급증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록에 따르면 실제로 여러 금통위원들이 이 점에 대한 우려를 내놓았다. A 금통위원은 “자금배분은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생산설비 확충을 넘어 레버리지를 통해 자사가격 평가차익 추구에 집중돼 금융불안 우려를 낳고 있다”며 “가계소비도 부채상환에 대한 소비위축 효과가 이미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금통위원은 “완화적 기조의 부작용이 계속 누증되고 있다”며 “통화정책의 완화적 기조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B 금통위원도 “가계부채의 지속적인 상승세가 완화적 통화기조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경기회복이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거시건전성정책의 강화를 통해 가계부채 관련 위험을 안정화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간절한 과제”라고 말했다.

C 금통위원도 “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할 때 부담이 되는 최대 위험요인은 주지하듯이 가계부채”라며 “가계부채 누증이 금융 부문의 위기적 상황으로 연결될 위험은 낮아보이나 그로 인한 거시적인 위험의 상승은 작지 않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 금통위원은 “가계부채의 소득위험과 주택가격 위험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져 경기침체, 주택가격 하락 등 부정적 충격이 경제에 도래할 경우 상당수 가계가 장기간의 소비감축 및 부채 감축 압력에 처하면서, 그에 다른 실물경제상의 부정적 파급효과가 확대될 위험이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들은 현재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낮더라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논리와 연결된다. 금통위원들은 현재 2% 밑을 유지하고 있는 근원물가상승률의 원인과 그 전망에 대해서 논의하고 한은 관련 부서의 의견을 청취했다.

한편 현재 경기회복세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수출이나 건설투자, 설비투자가 늘어서 경기가 좋아졌지만, 가계 소비가 큰 폭으로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한 금통위원은 “금년 (국내총생산) 전망치 달성은 무난해 보이지만 내년에는 건설 및 설비 투자가 조정되는 가운데 민간 소비의 회복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건설 경기가 조정되면서 고용 여건이 예상만큼 개선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 금통위원은 “소비성향 하락, 가계부채의 상환부담 증대 등을 감안하면 소비심리의 개선이 과거만큼 실제 소비의 증가로 가시화될 수 있을 지 불확실하다”도 진단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현재 소비심리 개선에는 신정부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는 데,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실제 소비 증가로 실현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련 부서에서는 “현재 소비 증가세가 예년에 비해서 그리 높은 것이 아니다”고 답했다.

아예 장기 디플레이션 압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B 금통위원은 “2012년 이후 저축률 상승을 동반한 소비 정체, 물가의 하향 안정화는 가계의 장기 미래 전망이 어떤 이유로 잠재 성장률에 비해 다소 과하게 하향조정되면서 나타난 결과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 금통위원은 “우리 경제의 현존 위험은 물가상승률의 가속보다는 물가상승률의 하향가능성 상존”이라고 덧붙였다. 가계가 소비 및 저축과 관련된 의사 결정을 내릴 때 미래 경제 전망을 비관적으로 하면서, 그 결과 소비가 줄고 기대인플레이션도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